일본 철도
2021. 7. 19. 10:39ㆍ물류와 유통
일본은 ‘철도 경쟁체제’를 선택하지 않았다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입력 : 2021.07.19 03:00 수정 : 2021.07.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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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하기지난 6월28일 ‘철도의날’에 고속철도 경쟁체제, 다시 말해 KTX-SRT 분리를 옹호하는 기고문이 경향신문에 실렸다. 그 글에서 철도 경쟁체제의 예시로 언급된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과 독일이었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사실과 다른 이런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연 정말로 일본의 철도는 ‘경쟁체제’를 도입했다고 볼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일본의 민간 철도 기업, 사철(私鐵)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일본의 주요 사철 회사들은 ‘철도 수송’만으로 수익을 올리지 않는다. 부대사업이 극도로 제한된 한국의 철도 사업자와 놓인 환경이 애초에 다른 것이다. 그들의 사업 영역은 백화점을 비롯하여 부동산, 레저, 교육, 상조 서비스까지도 포괄한다. 그러다 보니 사철 각 사의 전체 매출에서 철도 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내외, 순수익으로 치더라도 30~40%대에 불과하다. 도쿄와 오사카의 교외에서는 사철 회사들이 분양한 집에서 살고, 사철로 통근하며, 사철의 백화점에서 장을 보는 생활 패턴을 흔히 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업 모델은 어느덧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사철 회사 간에 상호 직통 운전을 실시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교외의 인구가 격감하는 상황에서 사철 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었다. 실제로 도쿄에서는 도심의 지하철을 매개체로 여러 사철 회사가 마치 하나의 노선처럼 직통 운전을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일부 구간에서 회사 간 속도나 운임 격차가 발생하기는 하나 이는 ‘경쟁체제’라는 산업 구조가 아닌 이용객들의 ‘수단 선택(mode choice)’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서울 수도권 거주자가 강남과 분당을 오고갈 때 신분당선과 광역버스 중에서 무엇을 탈지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이를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하겠는가?
분명 한국 철도는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혁신은 수송 원가 이하로 강제되는 철도 운임의 상승, 정치인들의 아전인‘철’(我田引鐵) 행태 혁파, 글로벌 철도 수송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정부의 의지에 기반한 것이어야지, 왜곡에 기반한 ‘경쟁체제’ 도입으로는 절대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경쟁체제’라는 근거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정말로 ‘세계 철도강국’의 현실을 명확히 알아야 할 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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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190300105#csidxa88c1584783f11cae76c6bd7f2f857a -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인 고속철도(신칸센)에 대해서 일본은 단 한 번도 옛 일본국유철도의 후신인 ‘JR’ 주도의 운영 원칙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일부 구간에서 JR의 지역별 회사가 공동 운행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 회사들은 차량 개발 단계에서부터 협력하며, 각 사의 관할을 넘나드는 직통 운전 시에는 반드시 수익을 분배하는 등 전혀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같은 선로 위에서 다른 운임 체계를 갖고 별도로 수익을 징수하는 KTX-SRT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JR 각 사는 신칸센의 막대한 수익을 기반으로 교통 오지의 노선을 겨우 유지한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코로나19의 직격을 맞아 신칸센 수요가 격감한 2020년, 그동안 수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던 JR 각 사가 역으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낸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공공복지로서의 철도망 유지를 위해서라도 JR 주도의 신칸센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 이렇게 교외 생활 전반을 사철이 지탱하는 과정에서, 각 사철 회사는 ‘빠르고 효율적인 철도 수송’보다 연선(沿線)의 ‘생활권’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구축할지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각 사철 회사들은 매년 막대한 금액을 철도 시설 개량에 투자하지만 이는 편리한 출퇴근길을 마련함으로써 자기들의 연선에 더 많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한 수단이지 수송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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