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논쟁
2021. 10. 5. 10:02ㆍ정치와 사회
文대통령 "개고기 금지" 발언에 '뜨끔'? 일본인들이 훈수 놓는 이유
[한중일 톺아보기-72]
- 신윤재 기자
- 입력 : 2021.10.02 06:01:01 수정 : 2021.10.03 21: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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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연재코너입니다."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지난달 27일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이 발언에 한동안 가라앉아 있던 개고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그동안 동물애호단체를 중심으로 한 개고기 금지 주장과 전통 식문화의 일부라는 주장이 장기간 대립해왔다. 해묵은 이 논란이 복날도 한참 지난 시점에 느닷없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한국의 글로벌화와 반려견 인구 급증으로 개고기는 혐오 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비 인구뿐 아니라 개 사육 농가와 시장 규모도 급격히 축소돼 왔다. 모란, 구포 등 대규모 개고기 시장 여러 곳이 이미 폐쇄된 상태이기도 하다. 아직 국내에서 사육·유통되고 있는 개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한 민간 동물보호단체가 2017년 기준 환경부의 개농장 자료를 기초로 연간 약 100만마리가 식용 유통되고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한국이 해외에서 개고기로 제법 악명(?)이 높기 때문인지 이번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CNN, 로이터, BBC 등 세계 주요 외신들의 보도도 잇따랐다. 특히 아사히,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전한 소식에는 일본 네티즌들이 수천 개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였다. 한국 뉴스라면 무조건 악플 일색인 일본 최대 포털 야후 재팬인 만큼 노골적 비아냥이 예상 됐지만 의외로 비교적 정상적인 댓글도 다수 눈에 띄었다. 예컨대 "시대 변화에 따라 식문화도 바뀌는 건 순리겠지만, 법률로 금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등이다. 일본도 오래전 개고기를 먹었던 관습이 존재했기에 이를 아는 이들은 무턱대고 한국을 비난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대량의 고래 포획과 소비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도 존재했던 개고기 식용
16세기 일본에 도착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모습이 담긴 남만병풍(南蛮屏風)과 `일구문화비교`의 현대판 번역본 표지.▶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일본 역사민속박물관 니시모토 도요히로(西本豊弘)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죠몬(繩文)시대까지는 개를 주로 사냥용으로 길러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야요이(彌生)시대에 접어들며 반도로부터 벼농사 등 선진 기술이 들어오면서 개고기를 먹는 관습도 전해졌다.
이후 일본의 개고기 식용은 7세기 중반(675년) 덴무 덴노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육식금지령'을 내리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을 찾았던 원중거(元重擧)는 견문록 '화국지(和國志)'에 "그들은 여섯 가지 가축(소, 돼지, 닭, 말, 양, 개)을 먹지 않으며 죽으면 모두 땅에 묻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개고기 섭취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전국시대 일본을 여행했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그의 저서 '일구문화비교(日歐文化比較)'에 "일본인은 소는 먹지 않지만 약으로 개를 잡아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이묘, 사무라이 등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드물게 식량이 아닌 약용으로 돼지고기를 섭취하는 경우가 있었다는데 개고기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에도시대 초기 대표적 요리 책 료리모노가타리(1643) 1권. [사진=도쿄도립박물관 홈페이지]에도시대에도 표면적으론 육식에 대한 금기가 지켜졌지만 현재의 효고, 오카야마, 가고시마현 등지에서 육류, 특히 개 식용과 관련된 기록들이 나온다. 1643년 간행된 '료리모노가타리(料理物語)'는 개를 재료로 한 국물요리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전쟁과 전후 식량난으로 개를 식용했다는 증언이나 보도도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의 개고기 식용은 식량사정이 개선되면서 지금은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수입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수입과 소비 자체를 금하고 있지는 않다. 주로 일본 내 외국인들에 의해 소비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계속 감소 추세이기는 하나 2016년 기준 일본 전역에 개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100여 곳, 수입 규모는 8t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최근에도 일본 국회에서 개고기 유통 금지에 관한 질의가 오간 바 있다.
"고래잡이는 유구한 전통" 일본 고래포획 세계 1위
지난 2017년 포획된 밍크고래가 일본 홋카이도 쿠시로항에 내려지는 모습.[사진=연합뉴스]한국도 국내 유일의 고래 문화 특구로 알려진 울산 장생포를 중심으로 고래 고기가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비견될 규모는 아니다. 한국에서 현재 고래잡이는 불법으로 오직 혼획(混獲), 즉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에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 고래 혼획이 횡행하는데다 불법으로 포획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일본은 2014년 국제사법재판소(ICJ)로부터 상업 포경 중단 판결을 받았지만 2019년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고 상업 포경을 재개한 바 있다. 주된 명분은 고래잡이가 유구한 전통문화의 일부라는 것이다. 일본은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에서 개체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종에 한해 포획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이 탈퇴한 IWC는 원래 포경 활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다. 때문에 고래 고기 섭취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많은 고래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으니 개체수를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관리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조업 중단 협정을 맺고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고래포획수 1,2위를 다툰다. [그래픽=조보라]현재 일본의 고래 포획수는 수십 년 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여전히 일본은 고래를 가장 많이 포획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는 동해에서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귀신고래의 씨가 마르기도 했다.
사실 일본에서 고래고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질 때 반론이라고 자주 들먹이는 게 한국의 개고기다. 그러나 개고기와 고래고기는 유사해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개는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고래는 상당수가 멸종위기 상태라는 점이다. 개체수가 충분해 일본이 포획 중이라는 밍크고래 개체수는 약 20만마리로 현재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관심필요종으로 분류된다. IWC는 일본과 한국 근해에 서식하는 밍크고래 개체군은 오랜 포경과 혼획으로 사실상 멸종위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개고기 유통 이미 위법이나 관련법 모순에 현실적 문제 있어
당국은 개고기 금지에 찬반이 갈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진=연합뉴스]한국의 현행 동물보호법은 모든 동물에 대해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 돼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도축 방법이 잔인한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이 되지만 개만 특정해서 식용 소비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개고기 유통은 엄밀히 말해 이미 식품위생법에 저촉되는 사항이다. 섭취 가능한 식품에 대한 식약처의 행정고시에 따르면 개고기는 식품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품 원료가 아닌 재료인 개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건 식품위생법 위반이 된다. 개고기 유통이 위법임에도 관할부처인 식약처는 오랜 관습인데다 찬반이 갈리는 등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법 집행을 보류해 왔다는 입장이다.
한편으로 개는 축산법 상 '가축'으로 분류되지만 축산물 위생관리법에서는 제외돼 법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다. 이에 육견협회 등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측은 "법적으로 관리 못하게 돼 있는 게 문제"라며 제도권 편입을 주장해 왔다. 유통 전반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와 국내외 여론 등을 고려하면 개고기 합법화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며 실익보다 손해가 더 커 보인다. 그렇다고 개고기 유통을 전면 금지할 경우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요소다. 결국 관련법 간 모순에 현실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어 골치아픈 논쟁이 반복돼 왔다고 볼 수 있다.
국민 대다수 개고기 소비 거부하나 "법적 금지보다 개인 결정에 맡겨야"
[그래픽=조보라]▶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개고기 금지에 대한 여론은 어떨까. 지난해 동물보호단체 HSI가 닐슨코리아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개고기를 소비한 적이 없거나 향후에도 소비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개고기 섭취에 대해 "개인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곧 국민 대다수가 개고기 소비 의향이 없으면서도, 식용 여부는 개인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지 법으로 금지하는 데 대해선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견이 있는 사안에 대해 공권력을 앞세우는 건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것으로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죽어나가는 등 다른 시급한 사안이 산적한 시점에 터져나온 개고기 논란에 대해 많은 국민은 공감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잔인한 도살과 비위생적 관리문제를 빼면 개고기 식용 자체를 금지하라는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감정론에 기대지 않고 동물들 중 개만 특별대우 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요새 가장 선호된다는 닭고기 역시 수많은 수평아리가 태어나자마자 기계로 갈려나가는 것처럼 유사한 문제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개고기 금지문제는 개뿐만 아니라 동물권 전체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빠르고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뉴스 제보나 의견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소중히 검토후 차후 꼭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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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관저에서 반려견들과 시간을 보내며 공개한 모습. [사진제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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