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2021. 11. 15. 10:55정치와 사회

오징어게임에는 한강의 기적이 없다

  • 기자명 송현석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
  •  입력 2021.11.14 09:39
  •  댓글 2
AD FREE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SNS 기사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

[스피치 인사이트]

‘스피치 인사이트’는 국내 언론이 인용하는 인플루언서들의 발언과 국내 대중 여론의 SNS를 분석하여 그들의 발언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는지 데이터로 분석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통해 현재 사회의 이슈가 왜 화제가 되었는지를 분석하며 대중 여론이 해당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해당 이슈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한 주간 “청년” 이슈가 화제였다. 국민의힘에서는 2030 당원들의 탈당 인증이 화제가 되었고,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청년 정책을 언급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가장 이슈가 된 유권자층은 ‘이대남’들이었다. 표심을 이야기할 때 청년층을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뉴스와 여론 빅데이터 전문조사기관 <스피치로그>를 활용하여 최근 3개월 사이 “청년” 키워드로 주요발언분석을 확인해봤다. 그중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발언은 지난 10월21일 문재인 대통령의 “청년층의 재기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청년 다중채무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통합 채무조정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라”와 11월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였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월5일 오후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청년이 묻고 이재명이 답하다. 경북대학생들과의 대화'에 참석해 참석한 대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키워드 분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년”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활기와 희망보다는 어둡고 힘겨운 이미지가 떠올리는 것이며, 사회와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봐야할 지점이 청년문제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청년들이 직면하는 기성세대와의 관계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요즘 것들은 끈기가 없어”로 종종 끝을 맺는다.

정말 지금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헝그리정신” 부족으로 치환시켜도 되는 것일까?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 지금도 유효한가?

뉴스 1. 아버지를 굶어 죽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22살 청년. 2심에서도 징역 4년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패륜 범죄로만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사회현실을 담고 있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 22세의 대학생 A씨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학업을 중단하고 고된 간병과 함께 수천만원이 넘는 수술비와 병원비 마련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로 8개월을 버텼다. 그러나 A씨가 직면한 결과는 월세는 물론 전기와 도시가사, 휴대전화까지 끊기는 극심한 생활고뿐이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방문을 잠근 채 스스로 생을 정리했고 아들은 비극의 모든 책임을 떠안고 구속됐다. 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인가? A씨의 아버지를 누가 죽인 것일까?

뉴스 2. 충남지역의 한 특성화고 식품가공과를 졸업한 B씨. 8년 전 특성화고 학생과 중견기업을 연결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기업 계열사 취업에 성공했다. 어린동생을 돌봐야 했던 그는 병역의무를 마치고 오면 승진시켜준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2년간 고된 노동과 저임금을 묵묵히 감내했다. 그러나 전역 후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B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B씨의 특성화고 동기들은 졸업 후에 전공을 찾아서 취직을 한 사람이 드물다. B씨는 성실하지 못해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뉴스 3.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며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C군의 1년 학비는 3300만원 정도 든다. 이 외국인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진학한다. C군의 1년 학비 3300만원은 A씨가 패륜아가 되지 않았을 비용이고, B씨가 거의 3년 동안 월급을 십원 한 푼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C군과 유사한 조건의 사람들은 남다른 유아기를 보낸다.  공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 3구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학원의 1년 학원비는 약 3000만원에 이르는 곳이 있다고 한다. 3000만원은 대학 4년 등록금과 맞먹는 비용이다. C군이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전적으로 C군의 뛰어난 능력덕분일까?

이 뉴스들을 “능력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매우 간단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A씨나 B씨의 현실은 개인 능력의 열등함과 열악한 개인의 인적자본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이 불편한건 왜일까?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오늘을 “능력주의”로만 보는 것이 정당하고 공정할까?

“한강의 기적”과 “오징어게임”

“한강의 기적”.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폐허 위에 산업화 성공신화의 상징적 표현이다. 여기에 민주화가 더해지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독립국가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뤘다는 찬사가 덧붙는다. 사회적으로 논의를 더 거쳐야 하지만 신화를 추가해야 한다. 한국은 IMF 구제금융과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후발산업국으로는 유일하게 선도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여기에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K-문화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가히 “K-culture Invasion”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 뒤에 전태일 열사로 상징되었던 서민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 또한 존재한다. 선진국을 추격하면 그 성과를 나누겠다던 낙수효과는 허구로 드러났고, 가구소득의 격차는 교육의 격차로 이어져 사회양극화와 위계적 사회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삼척동자는 아는 상식이 되었다.

헌법(제11조)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국민의 권리를 말하고 있지만,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서민들의 현실 속에 국가는 아직 멀다.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지표는 세계 속에서 군계일학이고 세수는 확대되었지만 서민의 삶은 점점 더 힘겹고 고통스럽다.

“오징어게임”은 한국의 두 얼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세계 최고의 흥행작 오징어게임은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볼 수 있다. 반면 오징어게임은 기훈, 상훈, 새벽 등 극중 인물을 통해 절박한 생존 현실로 내몰린 사람들의 군상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 불타오른 욕망에 포획된 한국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조직화된 공공성으로의 국가”

현재 세계는 다중적인 대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식경제와 지식사회의 다른 이름이요, 혁신경제는 세계 경제이론의 주류를 바꾸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확산은 기후위기와 미래에너지를 세계적 화두로 만들었다.

이런 대전환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개인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자연 등 복잡한 연결망과 관계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연결망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과 역할은 국가가 담당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듀이에 따르면 사회구조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낳고, 이는 관습과 제도의 변화를 결과로 가져온다. 이런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목적과 역할이다. 국가는 소수가 양극화의 이권을 독점적으로 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가는 주권자들이 소통하고 참여하는 “조직화된 공공성”의 공간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수가 절대적 노동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노동과 생산에 종속된 현실을 소통과 정치(행위)로 극복하며 주체성을 강화하는 인간의 공간, 인간의 기본조건이 국가이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중층적이다. 한축으로는 당면한 코로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정파와 이해관계를 넘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재난지원금과 방역지원금, 소상공인을 위한 손실보상금 등을 보편적으로 과감하게 지원하는 한편 사각지대와 취약층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손길을 두텁게 더해야 한다.

기재부는 예산만 탓하며 정권의 민생정책을 방해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서서 예산 효율화를 추진하고 부자와 대기업에 집중된 각종 조세감면을 축소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과 부유층은 공동체의 안정을 위한 방안을 스스로 모색함으로써 "K-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한축으로는 한국의 중장기 지향점을 수립하고 대전환기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 전략의 중심엔 청년이 있어야 한다. 청년의 미래를 기성세대가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주고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미래를 결정하고 만들어갈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청년에게 사유할 조건을 제공해야

청년이 주체적으로 미래를 결정할 수 있게 하려면 청년기본소득, 대학등록금 무상화, 청년주거수당 등 현재의 삶을 지원하는 정책을 과감하게 펼쳐야 한다. 이런 청년지원정책은 당장의 삶에 숨 쉴 여유를 줌으로써 청년들이 생각하고 소통할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정책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지향점으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이 말한 “획득권한(Entitlement)”과 “역량중심접근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마티아 센은 그의 저서 <빈곤과 기아(Poverty and Famines: An Essay on Entitlement and Deprivation>에서 기아와 빈곤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빈자들이 식량에 접근하고 획득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한국 청년에게 획득권한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청년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가 하는 측면이다. 기성세대가 결정하는 미래가 아니라 청년들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역량으로의 획득권한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최선을 다해 개인의 “자유로서의 발전” 측면에서의 역량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비전은 청년의 미래에 있으며, 청년의 역량과 획득권한을 중심에 둔 국가 공공성이 그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2030세대의 절박함과 분노, 어려움을 한순간에 풀 수 없다. 청년 몇 명을 간판으로 세운다고 청년의 답답한 마음과 정치에 대한 실망을 되돌리는 것은 아니다. 내년은 대선과 지방선가 있는 해이다. 여야의 대통령 후보와 정당 지도부는 청년들의 분노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의 말을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

청년이 조직화된 공공성으로의 국가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항모  (0) 2021.12.05
한중 남북종전선언 지지  (0) 2021.12.05
개고기 논쟁  (0) 2021.10.05
기후변화  (0) 2021.09.22
조지 오글 목사  (0) 202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