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 김홍섭 시인
2023. 1. 30. 12:02ㆍ시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이 분다
바다 끝에서 바다 끝으로
하늘 끝에서 하늘 끝으로
가을 바람이 불고 있다
가을 바람이 피부를 파고든다
한없이 패이는
나의 살갗
나의 팔
나의 심장
나뭇잎을 흔들면서
낙엽을 흔들면서
바람이 부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흩날리는
나의 머리칼은
어디를 향해 이토록
나부끼는 것일까
나의 옷까지
나의 팔까지
나의 목까지
날려보내는 바람
가을 바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는
영원한 방황이여
어디에도 짐풀지 못하는
영원한 도정(途程)이여
사하라에서 아라비아까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막을 가로질러 비단길을
대양을 넘어 희망봉을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이 불고 있다
내 영혼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돌풍
내 마음의 화산(火山)까지 잠재우는 선율(旋律)
속삭임 울음소리
가녀린 여인의 곡소리
흰옷 입고 황톳길을 가던
선인의 노래 소리
피리소리
가을 달밤에 들리던
가야금 소리
가을 바람 소리
저 바람은 어디로 가는걸까
나는 어디를 지향하는 것일까
나의 머리칼은 어디로 이토록 가고픈 것일까
나의 옷깃, 나의 팔다리
나의 영혼은
어디로 이토록
떠나고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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