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경제위기, 복지 아닌 통일비용탓

2006. 8. 23. 15:44정치와 사회

독일경제위기, 복지 아닌 통일비용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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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되살리고 연금 불합리 해소할 제도개선 처방일뿐

    최근 일부 국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독일은 지나친 사회보장 정책 등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실패사례로 꼽혀왔다. 지난 3월 슈뢰더 총리가 경제사회개혁안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면서 “분배적 사회정책은 균등한 기회의 제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우위에 놓는 독일 경제모델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나친 사회보장정책으로 경제위기에 몰린 독일이 복지정책을 포기했다”는 식의 국내언론 보도내용을 전했을 때, 독일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경제연구소 게르트 바그너 박사는 “독일이 사회보장 정책을 포기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젠다 2010’의 마련에 직접 참여했던 그는 “사회보장정책의 근본 틀에서 바뀐 것은 없다”며 “연금을 받는 노령층은 늘어나는 반면, 젊은 세대는 갈수록 주는 변화에 맞춰 세대(世代)간에 부담과 혜택의 균형을 맞추려는 작은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재정적자를 3% 이내로 낮추라는 유럽연합의 기준을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베를린 사회과학원 귄터 스미트(사회보장) 교수도 “‘어젠다 2010’이 일부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기는 하지만 사회보장 원칙의 포기라기 보다는 경기활성화를 통해 연금구조 등에서 나타난 문제를 바로잡는 개혁이라고 봐야한다”며 “경제가 회복되면 사회복지 혜택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 경제노동부 게르트 헤이어 노동시장정책국장은 “분배적 사회정책에서 균등한 기회의 제공으로 나간다고 말한 것을 사회보장 정책의 포기로 봐서는 안된다”며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취업교육의 기회를 주는 등 경기 활성화를 통해 모자라는 연금 납부자를 늘리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올해 들어 3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독일 경제위기의 원인이 지나친 사회복지 혜택에 있으며, 그 책임은 무리한 사회보장 정책을 요구해온 노조에 있는 것일까

    “넌센스”.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대신 그들은 현 경제위기의 원인을 과다한 통일비용에서 찾았다. 베를린 사회과학원 귄터 스미트 박사는 “정부가 해마다 약 900억 유로(약 120조원)를 옛 동독지역에 지원하는 등 동독을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독은 노동생산성에서 40% 밖에 안되는 옛 동독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나눠가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통일(90년 10월 기준) 뒤 국가경쟁력이 세계 2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 또 경제성장률은 91~95년 그나마 2.5%를 기록하며 버텼으나, 2001~2002년 0.5%로 낮아졌고, 실업률은 통일전 6.4% 대에서 11%대로 치솟았다. 넓은 개념의 통일비용은 91~2000년까지 10년간 1조8천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 간즈만(사회학) 교수는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서독의 두배가 넘으면서 예산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며 “92년 당시 동독의 GDP(국내총생산)는 독일 전체의 8% 수준밖에 안되는 등 통일은 동독의 발전보다는 서독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의 고임금에서 찾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91~2002년 사이에 GDP가 15% 성장하고 노동생산성은 21%나 올라갔지만, 노동자들의 평균실질소득은 2.6%가 오히려 줄었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수석연구원은 “독일 경제침체의 책임을 따진다면 3분의2는 동서독간의 경제격차 및 통일비용, 나머지 3분의1은 경제시스템에 왔다는 게 유럽연합의 공식적 분석”이라며 “독일은 동독지역의 복지혜택 등을 끌어오리느라 경기를 부양할 예산이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자들에게 현 경제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한 지적은 또 있었다. 헤이어 국장은 “노동자들은 수많은 로비그룹처럼 정부에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며, 실제로 정부가 받아들이은 것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자쪽은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독일 노총 디터 피엔키 정책위원은 “한 사회에는 경쟁에서 지는 패자는 있기 마련이며, 이들을 돌보는 것이 사회적 정의이자 정부의 몫”라고 강조하고, “노동자들의 연금 등 각종 혜택은 이들은 일하는 기간동안 낸 것을 돌려받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현 경제위기 속에서 복지제도에 대한 불만과 개선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었다. 택시기사 아치미크는 “월급의 40% 넘게 세금으로 내면 그 돈은 노는 사람들한테 수당을 주는 데 간다”며 투덜거렸다. 대학 연구원이라는 히처는 “연금을 낼 젊은 사람들은 줄어드는데도 현재와 똑같은 복지혜택이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귄터 스미트 박사는 “재취업의 기회가 거의 없는 57세 이상인 사람이 최고 32개월까지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조기퇴직 수당처럼 이용되기도 했다”며 “무엇보다 인구변화에 맞추고, 납세자를 늘려 정부 재정부담을 줄이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베를린/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