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이른 아침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앨커트래즈 감옥(Alcatraz Island)으로 향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입장료는 없으나, 배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1인당 22달러 가격의 표를 사야했다. 생각보다 앨커트래즈로 가는 사람이 많아 아침에 도착했는 데도 오후표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앨커트래즈는 다른 교도소에서 ‘교화 불능’ 판정을 받은 중범죄자들의 집합 장소였다. 알 카포네부터 마지막 열차강도 로이 가드너, 로젠버그 간첩사건 주모자 모턴 소벨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감자들로 넘쳐났다.
특히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직범죄단을 이끌었던 유명한 갱단 두목 알카포네는 다른 감옥에서 호화로운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34년 초 앨커트래즈 감옥으로 이송된 후 “나는 앨커트래즈한테 당했다”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앨커트래즈에서는 그의 돈도 명성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땅을 파고 걸레질을 해야 했다. 4년 후 다른 감옥으로 옮긴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뒀다.
혹독한 수감생활에 지쳐 36명의 죄수가 탈옥을 시도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섬의 별명 ‘더 록(The Rock·요새)’처럼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1963년 앨커트래즈는 드라마틱한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섬인 탓에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징벌’보다 ‘갱생’을 중시하는 시대 분위기가 작용했다.
▼도착하기전 배에서 보이는 Alcatraz Island 선착장.
▼선입견일까? 처음으로 보는 건물조차 갑갑함을 느끼게 한다.
▼Alcatraz Island 를 알리는 간판을 보며 배에서 내렸다.
▼감시대 왼편으로 올라가면 헤드폰을 끼고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불행히도 일어까지는 있으나 한국어는 없었다.
▼올라가는 길에 볼수 있었던 Free라고 빨간 페인트로 적혀있는 물통. 언제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헤드폰을 끼고 들어가면 처음에 볼수있는 물품 지급장소. 신발과 양말이 보인다. 그래도 다 가죽신발이다.
▼옷들과 침구류 보관소의 모습이다.
▼세면도구 및 개인 지급품이 보인다.
▼브로드웨이(Broadway)라고 불리는 중앙 복도.
▼예전의 물건들을 볼 수 있게 해 놓은 수용실도 있었다.
▼앨커트래즈에는 맨 왼쪽에 보이는 'ScarFace' 알 카포네를 비롯, 익히 들어본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빛 하나 없는 독방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 10초 정도 5-6명의 사람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앨커트래즈의 면회 장소이다.
▼수용실 복도 한 켠에 있는 창으로 본 샌프란시스코. 코 앞에 저렇게 도시가 보이는 것이 더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산속에 있으면 나을듯.
▼앨커트래즈 죄수들이 유일하게 운동을 할수 있었던 운동장.
▼운동장을 내려가는 계단의 오른편에서는 이처럼 금문교가 보인다.
▼운동장을 내려가는 계단의 옆에 있는 등대.
▼운동장 내려가는 계단 왼편에서 본 센프란시스코 전경. 이런 좋은 풍경이 죄수들에게 과연 득이 될 지 의문이다.
▼간수들이 있었던 사무실.
▼한 죄수의 수용실. 그림으로 유명한 죄수의 것으로 보인다.
▼아래 보이는 건물들은 Lower Military Prison. 원래 요새였다가 남북전쟁 때부터 감옥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아래에서 본 등대.
▼떠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안내 아저씨.
▼Alcatraz Island를 떠나면서 배에서 한 컷.
샌프란시스코 = DKB 독자리포터 초보늑대 출처 : http://blog.naver.com/texasatm/15001370834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