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포네도 탈출못한 '철옹성' 앨커트래즈 르포

2007. 1. 24. 17:23건강과 여행

알카포네도 탈출못한 '철옹성' 앨커트래즈 르포
2007-01-24 12:17 | VIEW : 1,415

1월 2일 이른 아침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앨커트래즈 감옥(Alcatraz Island)으로 향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입장료는 없으나, 배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1인당 22달러 가격의 표를 사야했다. 생각보다 앨커트래즈로 가는 사람이 많아 아침에 도착했는 데도 오후표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앨커트래즈는 다른 교도소에서 ‘교화 불능’ 판정을 받은 중범죄자들의 집합 장소였다. 알 카포네부터 마지막 열차강도 로이 가드너, 로젠버그 간첩사건 주모자 모턴 소벨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감자들로 넘쳐났다.

특히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직범죄단을 이끌었던 유명한 갱단 두목 알카포네는 다른 감옥에서 호화로운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34년 초 앨커트래즈 감옥으로 이송된 후 “나는 앨커트래즈한테 당했다”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앨커트래즈에서는 그의 돈도 명성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땅을 파고 걸레질을 해야 했다. 4년 후 다른 감옥으로 옮긴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뒀다.

혹독한 수감생활에 지쳐 36명의 죄수가 탈옥을 시도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섬의 별명 ‘더 록(The Rock·요새)’처럼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1963년 앨커트래즈는 드라마틱한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섬인 탓에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징벌’보다 ‘갱생’을 중시하는 시대 분위기가 작용했다.

▼도착하기전 배에서 보이는 Alcatraz Island 선착장.


▼선입견일까? 처음으로 보는 건물조차 갑갑함을 느끼게 한다.


▼Alcatraz Island 를 알리는 간판을 보며 배에서 내렸다.


▼감시대 왼편으로 올라가면 헤드폰을 끼고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불행히도 일어까지는 있으나 한국어는 없었다.


▼올라가는 길에 볼수 있었던 Free라고 빨간 페인트로 적혀있는 물통. 언제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헤드폰을 끼고 들어가면 처음에 볼수있는 물품 지급장소. 신발과 양말이 보인다. 그래도 다 가죽신발이다.


▼옷들과 침구류 보관소의 모습이다.


▼세면도구 및 개인 지급품이 보인다.


▼브로드웨이(Broadway)라고 불리는 중앙 복도.


▼예전의 물건들을 볼 수 있게 해 놓은 수용실도 있었다.


▼앨커트래즈에는 맨 왼쪽에 보이는 'ScarFace' 알 카포네를 비롯, 익히 들어본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빛 하나 없는 독방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 10초 정도 5-6명의 사람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앨커트래즈의 면회 장소이다.


▼수용실 복도 한 켠에 있는 창으로 본 샌프란시스코. 코 앞에 저렇게 도시가 보이는 것이 더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산속에 있으면 나을듯.


▼앨커트래즈 죄수들이 유일하게 운동을 할수 있었던 운동장.


▼운동장을 내려가는 계단의 오른편에서는 이처럼 금문교가 보인다.


▼운동장을 내려가는 계단의 옆에 있는 등대.


▼운동장 내려가는 계단 왼편에서 본 센프란시스코 전경. 이런 좋은 풍경이 죄수들에게 과연 득이 될 지 의문이다.


▼간수들이 있었던 사무실.


▼한 죄수의 수용실. 그림으로 유명한 죄수의 것으로 보인다.


▼아래 보이는 건물들은 Lower Military Prison. 원래 요새였다가 남북전쟁 때부터 감옥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아래에서 본 등대.


▼떠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안내 아저씨.


▼Alcatraz Island를 떠나면서 배에서 한 컷.

샌프란시스코 = DKB 독자리포터 초보늑대
출처 : http://blog.naver.com/texasatm/15001370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