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는 마을'이 들려주는 폭포와 기암의 전설

2006. 9. 28. 11:07건강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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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마을'이 들려주는 폭포와 기암의 전설
청송 주왕산 단풍
입력 : 2006.09.27 11:28 51'

수십 척 높이의 갈라진 바위 틈으로 폭포 소리가 휘감기며 우람한 바위벽에 단풍이 농염하게 번지는 곳, 전기없는 마을 내원마을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주왕산이다.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한국 최고의 비경지대를 한 곳만 꼽으라면 경북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이 단영 1순위다. 수십 척 높이의 갈라진 바위 틈으로 폭포 소리가 휘감기면 우람한 바위벽에 단풍이 농염하게 번지는 곳, 전기없는 마을 '내원마을'을 품고 있는 주왕산은 먼 오지인 까닭에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주왕산은 국립공원의 하나이며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암 명산을 꼽힌다. 옛날에는 병품처럼 두르고 있다 해서 '석병산' 이라고도 했다. 이 산에는 태행산(933m), 대둔산(905m), 금은광이(910m), 두수람(923m) 등 해발 900m 이상의 봉우리가 많지만 그보다 낮은 주왕산(720m)이 주봉이다. 중국 주나라 왕족의 후예가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패하고 쫓겨와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비참히 죽고 말았다는 전설이 주왕산에 전해지고 있다. 주왕암 등 주왕의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매표소를 지나면 천년고찰 대전사와 기암이 반긴다. 기암은 약 30억 년 동안 풍화를 겪은 탓에 매끄럽게 잘 생겼다. 주왕산의 얼굴 마담격이다. 신라군이 주왕을 무찌르고 깃발을 꽂은 바위라 해서 깃발 기(旗)자를 쓴다.


당단풍이 물든던 가을 아침, 기암은 중국의 계림처럼 몽환적이었다. 비단 구름을 허리에 두른 듯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 신비로웠다. 절마당의 은행나무까지 샛노랗게 물들어 단풍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5분쯤 걸어가자 수달래로 유명한 주방천 계곡이 펼쳐진다. 제3폭포까지 약 5km 이어져 있는 계곡이다. 편안한 트레킹 코스가 주방천을 따라 나 있다. 길은 정비가 잘 돼 있고, 경사가 거의 없어 편안히 걸을 수 있다.

중방천의 수달래는 해마다 4월에 피어 독특한 절경을 연출한다. 흐르는 물에 닿을 듯 말듯 아롱지며 투영되는 모습이 곱고도 처연하다. 태풍으로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복구 노력으로 서서히 옜 정취를 회복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1.3km쯤 가면 큰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이 주왕암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여기서 약 1km를 오던 길로 계속 가면 주왕계곡의 최고 비경인 학소대에 이른다. 도중에는 높이가 60m는 되어 보이는 급수대가 있다. 신라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이 바위 꼭대기에 집을 짓고 은둔하며 물을 길어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계곡으로 넘어질듯한 생김새 때문에 지나는 사람마다 경탄을 한다.

학소대는 백학과 청학에 얽힌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으며 기암괴석의 결정판이다. 파스텔톤의 단풍이 들면 선경이 된다. 학소대 너머는 원시음폭포 지대다. 무릉도원 같은 분지에 시린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내원마을 사람들은 옛날에 이 계류 위에 철판이나 나무를 얹어 놓고 소달구지와 경운기 등을 이용해 곡식을 외부로 날랐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제1폭포와 선녀탕을 지나 1km 쯤 가면 2단으로 떨어지는 제2폭포가 나온다. 제 3폭포는 약 600m 더 가면 나온다. 제 3폭포의 위용은 대단하다. 반S자 형태의 유려한 물줄기가 맑은 하늘에 걸려 있는 형국이다. 아이스크림 숟갈로 퍼낸듯한 기묘한 바위 웅덩이에서 물이 풍성하게 떨어진다.


이제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고 15분쯤 걸리는 전기 없는 마을로 향할 차례다. 한국전쟁 이후 한때 70여 가국에 500여 명이 나물 뜯고 농사지으며 살던 무공해 마을이다. 그러나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집들의 상혼이 지나친 나머지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져 모두가 조만간 국립공원 밖으로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이 마을 예천할매댁 며느리들과 저녁 달밤에 숲길을 걸어 나온 적이 있다. 그들은 매표소 밖에 살며 낮에 할머니 일을 거들고 있는데, 늘 달빛이 비치는 저녁을 기다렸다가 단풍 든 밤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들은 계곡 물소리에 팔을 벌리고, 달빛에 비치는 하얀 단풍잎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제3폭포 위에 서서는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를 불러 젖혔다.

"설경도 얼마나 멋진데요." 그 말을 듣고 결국 그 해 겨울 내원마을의 흙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달이 휘영청 뜬 밤. 방문을 열어보니 흙벽에 시래기단이 매달려 있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보았던 별밭이 가메봉 위에, 바스락거리는 억새숲 위에 활짝 열려 있었다. 아! 말할 수 없는 그 기쁨이란, 내원마을이 더 존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7가구 남은 마을 사람들도 세태에 밀려 한국전력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내원마을의 군불 땐 방에서 촛불 켜고 자던 일은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추거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 교통 - 자가용 : 영동고속도로 원주 만종부닉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방향을 튼다. 서안동 IC에서 빠져나가 34번 국도를 따라 안동시내를 지나 안동대학교 부근 포진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청송 방면으로 좌회전해 가다 길안에서 좌회전해 가면 청송이 나온다.

● 대중교통 : 동서울터미널~주왕산 시외버스 하루 4회. 청량리역~안동역 열차 하루 8회. 안동~청송, 청송~주왕산 구간에는 버스가 많다.

● 음식&숙박 - 음식 : 상의리 상가에 산채백반집 즐비. 국산콩으로 두부와 청국장을 만드는 집이 여럿 있다. 천마식당 (054)873-9933. 수달래식당 (054)874-3728. 반찬이 매우 짜므로 주문시 유의. 청송사과는 맛이 전국 최고다. 단풍철에 가면 곳곳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숙박 : 상의리 상가에 여관이 다수 있다. 천마식당 민박의 방은 매우 청결하다.

● 여행정보 - 주변 명소 : 숭소고택은 청송읍 인근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만석꾼의 99칸 집. 전통가옥 체험과 식사 가능. (054)873-0234~5.

주왕산국립공원 (054)873-0014. www.npa.or.kr/chuwang
청송군청 (054)870-6230 www.cs.go.kr 청송5일장 : 끝자리가 4, 9일인 날

● 주왕산 주산지


주산지는 약 300년 전에 만들어진 저수지로서, 물 속에서 자란 30여 그루의 왕버들과 안개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아침마다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 특히 단풍 든 주왕산이 물속에 드리워질 때의 풍경은 넋을 잃게 한다. 만추가 되어 150년 된 버드나무가 밑둥치를 드러내면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같은 쓸쓸함이 호수를 감싼다. 이곳은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유명해졌다. 워낙 한갓져서 조용하다. 연중 늘 아름답고 봄철 농번기 때 저수지의 물을 빼는 것만 유념하면 된다. 다시 채우는 데 약 2주 걸린다.

주왕산에는 골짜기가 4개 있다. 주산지는 그 중 하나인 절골에 있다. 상의리에서 영덕 방향으로 5분 쯤 가다 이전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