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은 우리에게 뭘 남겼나
2009. 12. 27. 07:32ㆍ정치와 사회
[커버스토리]김대중·노무현은 우리에게 뭘 남겼나 | ||||
2009 12/29 위클리경향 856호 | ||||
ㆍWEEKLY경향 선정 2009년 올해의 인물
<Weekly경향>이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데는 그리 긴 토론이 필요치 않았다. 두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가 완결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상징하는 가치나 이들 집권 기간 10년의 성격은 아직 다 규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 서거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일까. 후대의 역사는 두 사람의 삶과 행적을 어떤 관점에서 기록할까. <편집자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노무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김대중)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후 널리 인용된 말이다. 5월과 8월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수십만의 인파. 외형적으로는 잠잠해 보인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두 분의 서거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난 여름 광화문에는 못 갔지만 동네에 만들어진 분향소에서 분향했다. 박정희 시절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자라온 지난 10년과 비교했을 때 우리사회가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지난 12월 17일 서강대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태준(17)·우재하(18)·최민재(18)군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올해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이다. 자원봉사자로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성례씨(전업주부·43)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끊이지 않는 두 전직 대통령 추모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끝난 11월 28일 새벽. 인터넷 게시판에는 또 다른 ‘국민과의 대화’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또 다른 ‘국민과의 대화’ 주인공은 노 전 대통령이다. 누리꾼들은 “지우지 말아 달라” “스크랩해 놓고 울적할 때마다 다시 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하다. 포털이 개설한 추모사이트도 마찬가지다. 포털 메인페이지에서 이들 추모게시판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누리꾼의 추모 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다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그 핵심은 이들이 삶 속에서 보여 준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변호사로서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을 포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내던졌다. 공통점은 또 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반세기 동안 굳건하게 버텨 온 주류사회와 기득권의 카르텔을 깼다는 것”을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지역주의 극복’을 화두로 삼았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신이 지역주의의 피해자였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그가 대통령이 됐다는 것 자체가 지역적 소수파인 호남에 대한 지역주의 해소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영남의 정치적 다수파인 김영삼에 의해 발탁됐지만 3당 합당을 반대하고 영남 지역의 정치적 소수파를 자임하며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고 박사는 “지금 논란이 되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단지 정략적인 선택이 아닌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지역담합 구조를 돌파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정권 규정 정당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집권 시기 노선과 정책에 대한 성격 규명은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록 IMF 환란이라는 한계 때문에 원래 생각했던 개혁을 다 펼 수는 없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비교적 준비된 정부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 극복이나 남북 화해 공존, 국가인권위원회로 대표되는 사회민주화뿐만 아니라 국민생활기초보장법과 같은 복지 기틀은 이미 국민의 정부 시절에 마련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탈 권위주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업적이지만 실질민주주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를테면 ‘비전2030’과 같은 사회복지 정책을 정권 후반기가 아닌 인수위 시절부터 정립해 일관되게 추진했다면 나중의 결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2004년에 탄핵 사태를 겪고 복귀했을 때 4대개혁 입법도 중요했지만 복지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집권 후반기에 제기한 개헌 문제나 2차 남북정상회담도 더 일찍 했더라면 지금처럼 사문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신자유주의 논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진보 진영의 일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노선과 정책에서 핵심이 신자유주의였다고 주장한다. 두 정권 시절 기틀이 형성된 사회 양극화나 준비 없는 시장 개방이 오늘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 위기를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현 집권 세력이 규정한 ‘잃어버린 10년’이 서민들에게 먹힐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현실의 반영이라는 설명이다. 고성국 박사는 “신자유주의라는 척도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IMF 환란 시기에 IMF가 요구하는 경제개혁 조치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경향성을 가하게 보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지만 김대중 자신이 신자유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기본 입장으로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미래성장 사업에 대한 국가의 적극 개입을 정책 기조로 한 국민의 정부의 노선과 정책을 과연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신자유주의 좌파” 등의 발언이 있었지만 ‘2030비전’ 등 핵심 정책은 신자유주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케인스주의적 성격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여러 척도 가운데 신자유주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진보 개념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진보도 시장경제나 효율성·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특히 보수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보수의 주제를 가지고 논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정권에 참여한 인사들은 더욱 적극적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지도자였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210년의 역사에서 유례없던 10년”이라고 규정했다. 개혁을 부르짖던 정조대왕이 1800년 사망한 이후 210년의 대한민국 역사 가운데 두 정권 10년 만이 유일하게 진보개혁이 집권한 예외적 시기라는 것이다. 나머지 200년은 수구기득권 세력이나 외세, 독재가 지배한 시기라는 주장이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좀 더 적극적으로 두 대통령의 노선과 정책이 ‘새로운 진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시대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햇볕정책, 중기재정계획, 인권위 설립 등 정책이 참여정부의 동반성장,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지역균형발전전략, 비전2030, 과거사위원회 정책을 낳았다.” 김종배씨는 두 전직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가치는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 이후 평가와 대안을 모색하는 진중한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연달아 터진 촛불시위와 서거 정국으로 본격적인 평가 작업이 미뤄져 왔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식에 참석한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남긴 개념 가운데 ‘지구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다”면서 “한반도에서 민주화의 경험이 세계를 향해 보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대중·노무현은 진보였나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영향력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호기 교수는 “광복 이후 돌이켜봤을 때 1987년 이후를 민주화 1단계로 꼽을 수 있다. 이 국면을 주도한 민주화세력의 리더를 꼽는다면 당연히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서거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현재 민주화세력 가운데 이들을 잇는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에 더욱이 두 사람이 자신의 삶과 재임 당시 보여준 가치나 의미가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통해 자신의 삶과 지난 두 정부를 돌이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것인가’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보수·진보란 무엇인가’ ‘김대중과 노무현은 진보인가’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 ‘보편적 세계시민은 가능한가’ ‘우리의 삶은 지속 가능한가’ ‘역사를 이끄는 주체는 영웅인가 시민인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해야 할 사람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겨준 묵직한 화두이자 숙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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