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칼럼]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집단

2009. 12. 28. 04:43정치와 사회

[강준만칼럼]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집단
한겨레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휴가를 앞두고 읽은 책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고 한다. 1932년에 출간된 책을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읽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한 어느 신문기사 내용이 흥미롭다.

“니버가 이 책을 쓴 것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내 갈등이 극심했던 때다. 사상 초유의 세계적 금융위기를 거치며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 이 대통령도 이런 점에 착안한 듯하다. 최근 이념과 지역 간 고질적 갈등을 지적하며 ‘근원적 처방’을 찾겠다고 공언했던 이 대통령으로선 니버의 대안에 귀 기울일 만하다.”

그럴까? 영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니버가 이 책을 쓴 주요 목적은 도덕주의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드는 개혁·진보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인 타성을 질책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 사람들은 주로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니버의 주장에 대해 냉소주의, 비관주의, 패배주의 등의 딱지를 붙이며 맹공했다.

이젠 상식이 되었지만, 아무리 도덕적인 개인들이라도 그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권한과 책임의 분산’ 때문에 전혀 다른 특성이 나타난다. 집단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논리와 생리를 갖게 된다. 그 집단은 나라일 수도 있고 거대 조직일 수도 있다. 느슨하게 조직된 연고집단도 마찬가지다. 대단히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로 구성된 연고집단일지라도 탐욕과 후안무치의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것이다.

재벌이건 공기업이건 언론사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거대 조직들의 구성원들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매우 예의 바르고 선량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소속된 집단에 대한 평소 생각이 옳은 것인가 하고 회의하기도 한다. 이게 참 딜레마다.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평가할 때에 주요 기준으로 삼는 건 명분이나 강령 따위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대인관계 태도나 인성이기 때문이다. 이게 시원찮으면 아무리 숭고하고 고상한 명분을 위해 일하는 집단이라도 증오와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이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 대중이 ‘도덕적 우월감’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도덕적 인간’의 함정도 있다. 니버는 “개인이 하나의 명분이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는 경우에도 권력의지(혹은 힘에의 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공적인 명분과 사적인 출세욕(명예욕)은 뒤섞이기 마련인데, 사적인 출세욕이 공적 명분의 성공을 압도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이 책이 개혁·진보주의자들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늘 조직과 자기 자신을 의심하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념과 지역 간 고질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 처방’을 찾는다는 건 아무래도 번지수가 안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해석의 자유는 있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진보니 보수니 하고 나눌 것 없이, 어떤 집단의 지도자나 구성원 개개인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집단이 몹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이기주의와 부패는 모든 조직과 집단의 속성이다. 이 속성을 없앨 수는 없지만 완화할 수 있는 길은 있다. 그건 바로 문호 개방이다. 잡다한 것을 뒤섞는 비빔밥 정신의 실천이다. 일사불란한 효율성은 좀 떨어질망정 집단이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는 건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