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패러다임 2

2012. 9. 26. 17:02경영과 경제

제 2 장.
마르크스, 절반의 성공


□ 괴테의 시, 칸트의 철학, 그리고 고전 경제학

제가 젊은 날 숨어서 본 글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 『공산당 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이었습니다.

▲ 왼쪽 위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 1848년 당시 영국 런던의 정치 모임, 오른쪽은 공산당 선언(1848) 표지

이 글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문(名文)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선언문(宣言文)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詩)였습니다. 그리고 마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유려하고 화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이 묘사해내면서도 철학적 깊이가 심오한 문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마르크스에 열광하는지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그런 명문을 남길 수가 있기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요즘은 여러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새삼 번역해드린다는 것이 별 의미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당시 제 가슴을 땅땅 때렸던 문장들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부르조아(bourgeois)는 자신들이 힘을 가진 어떤 곳에서든지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인 관계를 파괴하였다. 부르조아는 생득적(生得的) 지배자들에게 묶여있던 온갖 봉건적 질곡(桎梏)을 가차 없이 잘라 버림으로써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오직 노골적인 자기 이해관계만이 남게 되었다. 부르조아들은 속물적인 감상주의와 기사도적 열광 및 종교적인 열정의 가장 신성한 환희를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가운 물에 익사시켰다."

이 구절만을 본다면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구시대의 기사적 낭만적인 열정과 그 순수성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현대의 부르조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지옥의 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할 수가 없는 마법사와 같다(Modern bourgeoisie society is like the sorcerer who is no longer able to control the power of the nether world whom he has called up by his spell.)."

바로 이 구절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한 부분입니다. 패러다임의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자본가들의 사회이라는 의미이죠? 자본(capital)이라는 것은 종자돈을 말하는데 그 종자돈을 가진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마치 조선시대를 사대부의 나라라고 하듯이 세계는 자본가들의 나라인 셈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본주의라는 사회는 매우 부도덕(不道德)하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온갖 비리들이 횡행하고 돈이 없어 고급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은 대접받기가 어렵습니다. 반면에 돈만 있으면 과거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생활과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나아가 돈만 되면 불륜(不倫)도 상품화할 수 있는 것도 자본주의입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라틴아메리카 할 것 없이 납치와 인신매매도 산업화된 지 오래입니다. 유럽과 미국,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욕망(desire)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서 클라크(W. Clark)는 말합니다.

"현실과 이상은 이미 가까이 있지 않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지저분한 임무를 맡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위험한 명분을 옹호하든가 하는 양자택일의 결정에 직면하여 근대 경제학자 다수는 이 문제를 회피하기로 결정하였다."

1980년대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자본주의가 반드시 멸망한다는 이야기가 상식에 가까웠던 때가 있습니다. 당시에 들은 이야기로 유명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벨기에의 한 교수가 수업 시간마다 늘 "자본주의는 내일 망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학생이 와서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았잖아요?" 라고 따지면, 그 교수의 말이 걸작이었답니다. "내일 망한다고 했잖아."

그나저나 그 교수가 옹호하던 사회주의는 다 몰락해 버리고 자본주의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이 교수는 후일 범죄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됩니다. 이 교수의 이름은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Ezra Mandel, 1923~1995)입니다.

만델은 범죄는 개인에서 조직으로 조직에서 사회 국가로 확대되며 구체적으로는 단순 범죄에서 익명화된 범죄로, 다시 살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한 살인(살인 자체를 즐기는 형식)이라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주목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범죄에 몰두한 사회라고 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그 시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이 보다 발전(?)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델은 1940년대 제국주의적 독점 자본주의에서 다국적 자본주의로 이행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요즘의 범죄를 보면 상상을 초월합니다. 제가 어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요. 문제는 자본주의는 범죄를 끊임없이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 자극함으로써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범죄는 끝없는 욕망(desire)과 탐욕(covet)이 원인입니다. 개인의 행복추구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전체의 행복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그래서 투철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본주의 범죄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빈익빈부익부로 양극화될수록 범죄는 더욱더 산업화되어갈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본다면 공산주의(Communism)는 자본주의의 부도덕성과 타락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문제는 사유재산(private ownership)에 있으며 그 사유재산으로 인하여 사회적 비효율이 증가하므로 사유재산을 없애고 생산력(production force)을 해방시켜 고도의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해야한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핵심적인 생각입니다. 이 내용은 매우 어렵고 많은 설명을 해야 하니 일단 이 정도로 넘어갑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지식인(知識人) 대접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철학자나 학자들은 대부분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물론 미국의 풍토는 많이 달랐습니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무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철학이나 형이상학이 빈곤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복잡한 동양사상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유럽은 오히려 사상이 과잉된 상태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공산주의는 그 이념이 애초에 가졌던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락한 자본주의보다도 더욱 타락한데다 생산력의 해방은 고사하고 생산력의 질곡 상태에 깊이 빠져 있다가 결국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죠.

잘 알려진 미국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최종승리를 선언하면서 이를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히 해석한 것이지요. 물론 사회주의를 표방한 물리적 형태의 국가는 사라졌겠지요. 그러나 꽃잎이 졌다고 그 씨[種]가 사라집니까? 환경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유토피어니즘(Utopianism)을 요구하는데 약발이 떨어진 마르크스주의가 사라졌다고 해서 유토피어니즘 자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요. 제가 보기엔 새로운 형태의 유토피어니즘의 패러다임이 자라나고 있을 뿐이지요. 이제 그 싹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what it is) 그리고 그 싹은 어떻게 자라야(what it ought to be) 하는지를 추적해가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대개 미국에서 나온 이론들은 이렇게 단선적이고 깊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건국 이래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논리나 철학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깊이 있게 이해 못하고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만 치우쳐 분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정체되어가고 있으며 그 부도덕성 또한 과거와 비해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아랍과 미국의 대립이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의 지적처럼 '문명간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입니까? 만약 그것을 문명 간의 충돌로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교수라면 모를까 지식인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과 서유럽 문명권을 제외하고 전 세계가 그들의 중상주의(mercantilism)와 제국주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이 파괴되고 사라져갔습니까? 모든 갈등의 원인은 그 내부를 침잠해 보면 결국은 경제적ㆍ정치적 불평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치ㆍ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된다면 문명 간의 갈등, 민족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은 약화될 수밖에 없지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말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학문을 하는 자세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도록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어쨌든 이제 공식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천적(天敵)이 사라졌습니다. 자본주의는 마치 아무런 장애도 없는 번영의 꿈을 꾸는 듯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스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지요. 세상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들에게 다가온 디지털 사회는 빈곤한 나라들에게는 따라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환경이 되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상황은 더욱 심각하리라고 봅니다. 다행스럽게 한국은 디지털 시대를 일부 선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자본주의의 천적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그 내부에 천적을 키우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이기적 속성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공동체 전체를 보기보다는 자기 이해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백인 중상층 사회가 자기들만 잘 산다고 세상의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이 없죠. 물론 그들은 모든 형태의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둠의 소리를 듣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면서 눈과 귀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들이 알 리가 없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그것을 알아?"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라는 구조와 틀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를 한번 여러분들과 함께 논의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 푸른 생명의 나무 : 몰락의 전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현실적으로 구현했던 대표적 혁명가 레닌(Lenin)은 자본주의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의 러시아를 공산주의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유명한 말을 인용합니다.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네"
(Grau, teurer Freund, ist alle Theorie und grün des Lebens goldener Baum)


이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Faust, 1831)』에 나오는 말입니다. 레닌은 당대의 이론가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오직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 말로 많은 혁명가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제가 다시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가 사멸했다는 여러 학자들의 분석과는 달리 저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 뻔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부도덕하고 제3세계의 빈곤은 너무 심각해지고 있고 자원과 환경은 더욱 파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마치 '당나귀 홍당무' 현상 속에 있는 듯합니다. 즉 나무 막대에 끈을 달고 그 끈에 홍당무를 메어단 후 당나귀를 타면 당나귀는 그 홍당무를 먹기 위해서 질주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지쳐서 쓰러지게 되지요. 그러면 사람도 다치고 당나귀도 죽게 됩니다.

지금 한국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아니면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객관적으로 사태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선진국들의 거부와 반발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진국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계인이기보다는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지성들처럼 세계의 고민을 마음 편하게 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이상한 왕국'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실패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개방경제(open economy)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나라의 자본주의 경제가 다른 외부 요인이 없는 상태라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국내의 위기를 해외부문을 이용해서 쉽게 돌파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외부문의 한계상황에 다다르면 기술혁신(Innovation)이라든가 다른 변동 요인으로 이를 또 타결해 나갑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이지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전쟁을 일으킵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이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마르크스의 원전(原典)만 맴돌다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교조성(敎條性)도 몰락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제창한 것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생명력으로 그리고 그 생명력은 결국 시대의 산물이니만큼 시대에 따라 잘 변형하여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망각했습니다.

이 점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아직까지도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마르크스를 과격한 혁명이론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이 점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한마디로 마르크스는 중도적이었으며 자본주의의 타락과 비인간적인 속성에 대하여 이전의 사상과는 달리 감정을 배제하고 보다 과학적으로 보고 문제해결을 시도했던 시대적인 사상가였습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활동할 당시에는 매우 과격한 사상이 범람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바뵈프(Gracchus Babeuf, 1760∼1797), 호지스킨(Hodgeskin, 1787∼1869), 프루동(Proudhon, 1809∼1865), 바쿠닌(Bakunin, 1814∼1876)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과격한 사회운동가이자 이론가들로서 그들 눈에는 마르크스는 기회주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호한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같이 범람하는 과격하고 공상적인 사회주의를 지양하고 보다 과학적이고 실현가능한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을 주장한 사람입니다.(1)

▲ 바뵈프, 프루동, 바쿠닌

마르크스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의 하나는 마르크스가 순수하게 자신의 '순수한 이론'으로 세상을 바람직하게 변모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당대의 '시대정신(Welt geist)'를 종합한 사람으로 당대의 최고의 지적 전통(intellectual tradition)을 종합한 이론가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경제학, 프랑스의 유물론, 독일의 철학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통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는 '과학(science)과 이성(reason) 그리고 혁명(revolution)'의 시기였으며 이 시기에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았고, 지식인들의 사명이 현실안주적인 것을 가장 철저히 거부했던 시대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레닌이즘(Leninism)으로 인하여 극적인 변형이 일어납니다. 만약 마르크스의 제자들이 좀 더 유연하고 원래의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에 좀 더 접근했더라면 오늘날의 사회는 좀 더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레닌과 그의 계승자인 스탈린(Stalin)은 좀 더 빨리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무리하고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것이 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생산력(production force)의 발전 즉 기술의 발전이 결국 사회의 상부구조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회의 생산력 발전이 고도화되면서 새로운 생산양식(production mode)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사회의 전반적 이데올로기도 바뀐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노동에 대한 착취(exploitation)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bureaucracy)의 병폐에 대해서도 심각할 정도의 비판을 했습니다.
▲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마르크스가 저주했던 그 자본주의는 심각한 노동의 착취, 노동의 소외(Alienation)로 병들고, 사회주의는 관료주의로 자멸해갔습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의 신념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면 무정부주의자(Anarchist)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실제로 존재할 수가 없지요. 에레훤(Erehwon)입니다.(2) 모든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가령 학교 교실을 생각해봅시다. 교실의 학생들 그 자체는 평등사회이며 어떤 의미에서 무정부 사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들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성적 차이로 우열을 만들거나 짱(주먹대장)이 생기고, 왕따를 만들고 세금(?)도 거두고 하여 결국은 하나의 왕조 사회나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학생 자살(체제의 피해자)도 끊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학교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자살율이 높습니다. 강력한 정부 부처가 존재하고 철저히 관리한다고 하는데도 이 모양이니 외부 간섭이 없다면 이 아이들의 사회는 결국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3)의 모습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레닌은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마르크스를 받아들이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러시아의 사상가 뜨카체프(Peter Nikitich Tkachev, 1844∼1885)의 이론을 받아들입니다. 엥겔스(Engels, 1820~1895)는 이 뜨카체프에 대하여 "폭동주의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독재체제를 수립하려는 사람"이라고 비판합니다.(4)

그러나 레닌은 서유럽은 민주적이고 근대적 진보적이므로 그 곳에서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합법적인 길을 밟을 수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는 아시아적이고 후진적, 야만적이며 전제 암흑과 헌병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광범위한 민주적 노동운동 따위로 사회주의 혁명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혁명은 강철 같은 조직과 이를 지도하는 엘리트 당원들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죠.

이 같은 생각은 관료주의가 심각할 정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기도 합니다. 젊은 날의 마르크스는 이 관료주의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내적으로는 계급제도 이며 대외적으로는 폐쇄적이며 비밀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의 정신주의라고 비판합니다.(5) 이런 면에서 보면 분명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자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정부나 조직이 있으면 그 조직이라는 것은 조직 보전의 자기 운동성을 가지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키면서 권력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나타나지요. 마치 위대한 철학자 샤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하면서, "나는 어떠한 권위주의적인 단체의 행사에도 참여하질 않는다. 시민적 자각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진보단체가 아닌 한 나는 참가해본 적이 없다."라고 했듯이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자기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강철같은 혁명적 조직의 엘리트 정당으로 혁명을 완수한다는 레닌의 생각은 한편으로는 타당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당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소비에트(soviet)의 기지를 러시아(Russia)에 세움으로써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효과적으로 지도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르크스주의를 지나치게 혁명운동에만 경도시킴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 진영의 부도덕성을 논의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산화 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한 것이 아니라 만국의 자본가가 단결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레닌의 지도하에 스탈린은 이른바 "혁명을 위해", 많은 반사회적인 범죄들을 자행하여 당시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경악시킵니다. 그리고 많은 인명이 살상(殺傷)되어 혁명에 대한 회의론이 나타나 지식인들을 이반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인명의 살상은 반대로 전세계적인 범주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나타납니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레닌주의(Leninism)에 기반한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마르크스주의의 원래의 의미까지 퇴색하게 만들어 진보주의 운동을 좌초시켰습니다. 레닌은 특히 ① 마르크스 레닌이즘이 낡았고 사회발전에 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와 ② 광범위한 근로대중을 공산당과 이간시키는 종파주의 및 ③ 낡은 테제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세력인 교조주의에 대해 투쟁하는 것을 공산당원의 의무로 규정합니다(Lenin,『What is to be done』). 문제는 이 종파주의, 교조주의, 수정주의가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북한(North Korea)에서는 이런 해괴한 언어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의 방법론에 대해 자국의 경험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른 공산주의자들과 많은 갈등을 낳게 되었고 한국과 같은 약소국의 백성들에 대해서도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자유시(Svobodny) 사변(6)이나 연해주 한국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가 보기에 자유시 사변이나 한국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하는 한국의 좌파 지식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 러시아 공산주의 이론가들(뜨카체프, 레닌, 스탈린), 왼쪽에서 두 번째 붉은 책은 뚜카체프의 일대기를 그린 책

레닌을 계승했던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서운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확실히 부각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는 당의 최고위 정치국원들도 성하게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레닌은 임종하면서 "스탈린은 너무 거칠어서 누군가 참을성이 있고 예의바르고 덜 변덕스러운 사람"을 자기의 후계자로 임명하라고 하지만 스탈린은 이 유언장조차도 가로채고 맙니다.(7) 메드베제프(Roy A. Medvedev)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37년과 1938년 모스크바에서만 1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총살되던 날도 있었다. … 과거 어떤 폭군이나 전제군주도 이렇게 많은 수의 자기 동포를 박해하고 파멸시키지 않았다는 단순한 진실만은 말해두어야겠다."(8)

그래서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볼셰비즘을 거부하게 된다. 하나는 볼셰비키의 방법으로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인류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무서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대가를 치른 뒤에조차도 나는 볼셰비키가 이루고 싶다고 말하는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9)

오히려 아시아의 대표적 공산주의자인 마오쩌뚱(毛澤東)은 상당히 유연하게 공산주의를 해석합니다. 모택동은 공산 혁명이 성공할 때가지 해외에 나간 일도 없으며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서 많이 시달린 사람입니다. 마오쩌뚱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회주의 역시 없어질 것이다 … 공산주의 사회도 일단 만들어지고나면 언젠가는 또 다른 사회로 변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사회로 바뀔지는 모르나, 바뀌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물이 죽으면 태어나고 다시 죽는 음양의 법칙처럼 공산주의도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는 음양의 조화를 벗어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10)

레닌이나 스탈린의 눈에는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야만적이고 뭔가를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훨씬 유연(flexible)합니다. 마오쩌뚱은 스탈린 이후 소련과 극심한 사상투쟁을 벌이면서 소련의 지도부를 수정주의자로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가까워집니다. 아이러니지요. 하지만 마오쩌뚱은 문화혁명(文化革命)이라는 전대미문의 극좌운동으로 중국을 파탄시키기도 했습니다. 이후 겨우 살아남은 떵샤오핑(鄧小平)은 더욱 더 유연하게 중국을 개방화하고 세계 자본주의 구조 속으로 성공적으로 편입합니다. 결국 소비에트 러시아(소련 : USSR)는 사멸하고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을 가게 됩니다.

사실 러시아 혁명 이후 나타나는 패러다임의 변화의 모습을 보면 한 나라의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는 비약이 없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혁명에 의해서 많은 변화가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필리핀이나 라틴 아메리카 인디아 등과 같이 토지에서부터 제대로 개혁이 안 되는 상태에서 "가난한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실상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경연장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남으로 또는 북으로 극심한 계급혁명을 겪었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토지개혁이 있었던 것도 경제 발전에 선순환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제도(ancient regime)를 청산하는 것만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구제도의 청산은 다만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니까요.

(3) 마르크스, 절반의 성공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은 매우 심오하고 방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분야별로 일일이 검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10년도 더 걸릴지도 모르죠).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그의 절친한 패거리를 위하여 '사회학'이라고 불리는 서랍을 열어놓아도 결코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서랍을 뛰쳐나와 다른 서랍으로 들어갈 것이다. 경제학, 철학, 역사, 법, 국가학 이들 그 어느 것도 마르크스주의를 그 안에 묶어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11)

그래서 주로 경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갑시다(마르크스주의의 전반에 대해 너무 궁금하신 분은 제 사이트를 참고 하세요. www.ebiz114.net 자료실 - 졸고(拙稿) <마르크스주의 제이론의 비판과 전망 (Marxism Today)> 참고).

자본주의 사회는 임금 노동자가 있어야합니다. 이들이 봉건적 구속에서 벗어나 도시로 몰리면서 공장의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됩니다. 자본가들은 이들의 노동을 착취하여 그들에게는 근근이 생존만 하게 하는 정도로 임금(wage)을 주면서 부(wealth)를 축적합니다. 그런데 국민경제(national economy) 하에서 해외부문(foreign sector)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하는 마르크스 『자본론(資本論 : Das Kapital)』의 내용을 누구나 알기 쉽도록 요약한 것입니다)

가령 사회에는 TV를 생산하는 돈 많은 자본가 이정구(李鄭具)라는 사람과 이정구씨의 회사에서 일하는 수천명의 노동자(플로레타리아)가 있다고 합시다. 이정구씨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경영합리화죠), 최저 임금을 주고 TV를 생산한다고 하죠. 사회는 TV라는 상품만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많은 노동자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TV를 살 만한 여력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TV를 팔아야 이정구씨가 돈을 버는데 이를 사 줄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 안되면 이정구씨가 자기가 만든 TV를 사서라도 그 돈이 회사 쪽으로 유입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봉착합니다. 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TV를 사겠습니까?

이 경우 만약 이정구씨가 자기가 가진 돈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TV를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TV를 산 비용들이 회사로 유입되니 공장은 다시 돌릴 수도 있고 사람들은 보고 싶은 TV를 맘대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정구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더 큰 노동착취를 통하여 TV 가격을 떨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설비 투자로 장기적으로 단위당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시장을 장악하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시설 설비 투자가 많아지면서 그나마도 노동임금은 더 줄어들지요? 즉 고정자본은 점점 증가하므로 생산능력을 점점 커지지만 임금은 떨어지지요. 잘못하면 상품만 산처럼 쌓여 공황의 위험이 상존하게 됩니다.

이정구씨의 입장에서 보면 TV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완벽한 제품들은 고장이 안 나므로 더 이상 물건을 팔기가 어렵죠. 그러니 적당하게 고장이 좀 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좀 더 싸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새롭게 팔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생산설비는 더욱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납니다. 사회적으로 실업은 만연하면서 정부는 오직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고용을 해주니 자기들 정권도 유지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치가들은 기본적으로 생산계층이 아니므로 돈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줄이라도 하나씩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 선거를 치를 수가 없지요.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돈주머니(money bag)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할수록 실업자들이 자꾸 쌓이고 노동착취는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이런 실업자들을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들의 주검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이 상태가 견디기 힘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혁명(Revolution)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완벽한 제품보다는 고장이 좀 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아니면 이전 상품을 완전히 대체할 신제품을 개발해야하는 것이 또 문제입니다. 이것은 이정구씨가 생산수단(기업)을 소유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요. 만약 생산수단을 국가가 가지게 되면 국가는 좀 더 완벽한 TV를 생산하고 남는 자원으로 새로운 다른 생필품 공급에 나서면 됩니다. 자원 낭비가 없지요. 그러면 국민들은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면서도 좀 더 평등한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도도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골자입니다. 만약 국가가 폐쇄 경제(closed economy) 상태라면 이 분석은 타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본가 이정구씨가 국내에서는 노동을 극도로 착취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이 TV를 팔게 되면 큰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말썽 많은 한국에서는 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일정하게 인상시키면서 저개발 국가에도 공장을 세워 형편없는 저임금으로 TV를 생산하면 엄청난 폭리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많은 돈을 벌면 이정구씨는 힘들게 TV 생산할 필요도 없이 돈놀이(금융업)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굳이 공장을 세워 노동자들과 얼굴을 붉히면서 싸울 일도 없고요.

그러니까 만약 경제가 닫혀있으면 저절로 생길 혁명이 해외부문이 있음으로 하여 지속적으로 지연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임금을 인상시켜 사회적인 위험요소를 제거하면서 저개발 국가에서는 저임금을 주더라도 그 나라의 다른 노동자들에 비하여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니 존경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지요. 바로 이런 점을 마르크스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바로 국제무역(international trade)입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도 무역이론에 대해서는 리카도(Ricardo, David, 1772∼1823)의 분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자기의 노동가치 이론이 무역이론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숙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진국 노동자와 후진국(저개발국) 노동자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지요.

실제로 보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후진국 노동자들과는 적대적(敵對的)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많은 복잡한 경우는 차치하고 간단한 두 가지 예만 들어봅시다. 선진국의 자본가 게더골드(Gathergold)씨가 임금이 싼 후진국으로 자기의 공장을 이전하면 당장 선진국의 공장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한국의 포항제철(POSCO) 때문에 수많은 미국의 제철소가 문 닫았습니다. 미국 철강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포항제철의 노동자들은 원수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국제공산당 운동이라는 것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는 일입니다.(12)

그런 상태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식으로 만국(萬國)의 노동자들이 어찌 단결하겠습니까?" 오히려 자본가들은 자국의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기수(旗手)처럼 보이고 저개발 국가에서는 자비심 많은 투자가로 보일 뿐이지요.

자본가들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자국의 경제적 모순을 해외 부문(foreign sector)으로 전가시키고 국내적으로는 계급갈등(class conflict)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진보적인 학자나 사회운동가들이 국제연합(UN)이나 세계무역기구(WTO)를 이용하여 세계화에 열을 올리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서 지식집약적인 산업인 IT(또는 ICT) 산업이 국가산업을 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 산업(service industries)의 광범위한 발전으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의 성격이 매우 다양하게 변모함으로써 계급갈등의 성격이 모호해진 것도 마르크스주의의 쇠퇴를 부채질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마르크스주의는 대규모의 생산체제 즉 앞으로 말씀드릴 포디즘(Fordism) 하에서 번성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즉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단일 사업장에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있어 노동자들의 성격이 보다 단일하게(homogeneous) 됨으로써 그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기업들은 자꾸 슬림(slim)화 되고 있습니다. 이른 바 "작은 것이 아릅답다.(small is beautiful)"는 것입니다. 현대 기업들은 고용 인력이 비대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IT 산업은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죠. 그래서 자본주의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모호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후진국의 경우에도 공장의 노동자와 같은 프롤레타리아가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도시 빈민(貧民)들과 비교우위를 상실하고 있는 농어촌 빈민들과 각계각층의 루저(Loser)들입니다. 현재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후진국에서는 "취직이라도 제대로 되어있는" 노동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빈민들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특히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남부아시아 등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서유럽, 일본 등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계 전체이군요.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상의 내용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를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분석과 저술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이 정도로 넘어가고 경우에 따라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깊이 있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제자들에게 국제부문(국제주의)이라는 엄청난 이론적 부담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 이후 국제부문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이론들이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신속하게 자유민주주의, 자유무역이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철저히 프로파겐다(propaganda)하면서 세계 전체를 장악해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반자본주의적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정신없이 "안 되는 이론 개발"에 몰두하지 않고 차라리 철저한 토지개혁(봉건유제타파) - 신중상주의적모델(국내산업보호와 자본축적) -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경쟁가능 산업육성) - 수출지향(노동집약에서 시작하여 자본집약적으로 확장)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후진국들의 경제개발 모델을 만들고 선진국들의 자본 침탈이나 경제 침략에 대응하였더라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을지도 모릅니다.

필자 주석

1. 원래 마르크스가 말하는 과학이란 19세기의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에 입각한 과학의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이론의 전제에 있어서, "인간사회는 수학과 물리학의 언어로 묘사되고 분석 표현될 수 있다."고 보고,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자연 역사의 연장이며 또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물론 인간의 역사가 자연 역사의 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나 자연 자체를 목적론적으로 분석했던 넌센스가 인간역사에까지 확대 적용됨으로써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학문은 그 뿌리에서부터 과학성의 결핍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의 자연과학적 영역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볼 때, 그들이 말하는 인과론적이고 목적론적인 과학관은 프랑스의 생물학자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에 의해 조소거리가 되고 말았다. 마르크스를 계승한 레닌 역시 인간역사의 발달에는 자연의 법칙과 유사한 객관적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는 지식의 응용가능성으로서의 실천을, 헤겔로부터는 정신의 실천을, 키에즈코프스키로부터는 행위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통합문제를 혁명적 실천론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존재와 당위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필연적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도덕적 이상으로서 프롤레타리아를 발견한 것이다(K.Mars, Writings of the Young Marx. pp. 61. T. Bottmor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Earls Writing. (London : Lawrence & Wishart. 1963). Lenin. Materialismus und EmpriorKritizimus Verlag fur literatur & Polilik (1927).

2. 이 말은 원래 19세기 영국의 문필가였던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출간했던 동명의 소설에서 나왔다. 버틀러는 미지의 나라로 에레훤을 상정하고 기존의 모든 질서가 거꾸로 된 역유토피아의 세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곳'이라는 뜻이고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훤(Erehwon)'은 '없는 곳(no where)'을 뒤집은 말이다.

3. 영국의 노벨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1911~1993)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파리대왕>은 1954년에 발표된 소설로.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4.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부친 편지에서 뚜카체프를 폭동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독재체제를 수립하려는 사람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썼다. "공식적 지위를 페스트처럼 멀리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당에 들어가겠는가? 우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우리 스스로 잘못 보게도 되기 때문에 인기라면 침을 뱉는 우리에게 당이 무엇인가?"(1891. 2. 11, 엥겔스의 편지.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Neuer Weg, 1945. p.54).

5. Marx & Engels Werke BdⅠ(Diez Verlap, 1976) p.249.

6.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이란 1921년 러시아령 자유시(알렉세예브스크)에서 러시아 군에 의해 한국독립군 부대가 전멸한 사건이다. 자유시는 러시아 제야 강(Zeya river)변에 위치한 알렉세예브스크(Alekseyevsk)라는 마을이며, 현재는 스바보드니(Svobodny)이다. 제야 강이 흘러 흑룡강(黑龍江)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중국의 국경도시 헤이허(黑河)의 지명을 따서 흑하사변(黑河事變)이라고도 한다. 1921년 일본군의 압박으로 대한 독립군의 여러 부대들은 자유시에 집결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군통수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났다. 이 갈등 속에서 많은 수의 독립군(구체적으로는 사할린 의용군) 러시아 적군의 포위와 집중공격에 몰살 또는 포로가 된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의 내막에는 일본과 러시아 공산당의 밀약(密約)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자유시 사면은 시베리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군을 협상으로 철수시킬 필요가 있었던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이 대한 독립군을 제거해야했던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던 것이다.

7. E.H. Carr 『Bolshevik Revolution 1917-1929 (러시아혁명)』(나남, 1984) 74쪽.

8. Roy A. Medvedev Let history judge the origin & consequences of Stalinism (NY : Vintage book) p239.

9. 김학준『러시아혁명사』(문학과 지성, 1979) 435쪽.

10. Schrum, Chairman Mao Talks to the People (NY : Pantheon Books, 1974) pp.227-228.

11. K.Korsh, Marxismus und Philosophie , (Frankfurt a Main, 1966), pp.137∼139.

12. 현대의 대표적인 신고전파 무역이론인 헥셔오린(Heckscher-Ohlin)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이 풍부한 나라(후진국)는 노동의 가격(임금)이 싸기 때문에 섬유, 가발 등과 같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특화하여 수출하는 것이 유리하고 자본이 풍부한 나라(선진국)는 자본 가격(이자율)이 싸기 때문에 첨단기기나 기계 등과 같은 자본집약적 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경우 자본집약적 상품 수출국(선진국)은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므로 자본가격(이자율)이 상승한다. 자본이 풍부한 나라지만 그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 공급부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진국의 경우에도 노동집약적인 상품 생산을 강화하면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서 노동의 가격(임금)이 오르게 된다. 오늘날 중국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속적인 임금 상승압박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선진국 노조가 후진국 상품(노동집약적 상품)에 대해 수입규제를 실시하게 되면, 무역 이익은 상실하지만 그 규제한 만큼 국내 대체 생산(노동집약적 상품 생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즉 과거에는 섬유를 포기하고 기계를 생산했는데 노조가 크게 반발하여 섬유에 대한 수입을 못하게 하면 선진국 내의 섬유공장이 가동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진국에는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희소했던 생산요소인 노동의 가격(임금)이 상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유무역 시에도 채산성이 없었던 산업이 다시 개발되게 되고 고용 및 임금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선진국(자본집약적 상품 수출국) 노조는 무역의 이익을 팽개치고라도 후진국의 수출이나 노동임금에 대한 고려 없이 자국의 고용 증가와 임금의 상승만을 위해 수입규제를 하게 된다. 선진국 노조의 이 같은 행태는 즉각적으로 후진국 경제에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한다. 따라서 선진국의 노동자와 후진국의 노동자가 결코 동일한 이해관계에 있을 수 없는 상호적대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입규제에 따른 선진국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은 후진국 노동자들의 실업증대 및 임금 감소, 나아가 노동 강화를 초래하게 된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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