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래 묻다

2015. 4. 13. 04:41정치와 사회

[직격 인터뷰] 김영희 대기자, 중국 전문가 휴 화이트 교수에게 아시아 미래 묻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01 00:12 / 수정 2015.04.01 14:06

미·중 권력 공유로 아시아 평화 유지할 수 있다

남중국 해상의 섬 하이난다오 보아오 포럼에서 만나 아시아의 미래를 토론하는 휴 화이트 교수(왼쪽)와 본지 김영희 대기자. 화이트 교수는 호주의 중국과 국제전략문제 전문가다. [보아오=한우덕 중국연구소장]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결말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운명을 가른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가 대표하는 일단의 학자들은 19세기 독일의 부상이 유럽 내의 일련의 전쟁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역사적 사례를 들어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을 편다. 그들과는 반대로 중국과 국제전략문제 전문가인 휴 화이트(Hugh White) 호주국립대 교수가 대표하는 학파는 중국과 미국이 권력공유(power sharing)로 이 지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8일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화이트 교수를 만나 아시아의 가까운 미래에 관한 그의 통찰을 들었다.

김영희=미국이 중국을 포위(encircle)하는 전략을 쓰는 겁니까.

 화이트=“포위”라는 말은 맞지 않아요. 미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유지(preserve)하고 1945년 이래의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것입니다. 반면 중국은 중국의 부상을 반영한 신형대국관계를 바탕으로 서로의 전략적 핵심 이익을 존중하자고 합니다. 미국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미·중 관계를 원합니다. 중국이 미국을 아시아의 주요 ‘권력주체’로 인정하던 관계 말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 위에 있었는데, 중국이 현재 미국 수준으로 올라와서 일단 미국과 대등한 힘의 균형을 이룬 뒤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강자가 되고 싶은 거죠.

 김=화이트 교수의 ‘아시아 체제(Concert of Asia)’로 평화를 실현하는 방식은 1914년까지 100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보장한 빈 체제(Concert of Vienna)를 모델로 하는 것인데 그건 강대국 중심 질서였습니다. 21세기의 아시아는 19세기의 유럽과는 다릅니다. 한국·인도네시아·호주 같은 중견국가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런 해결책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화이트 교수는 다른 대안으로 미국과 중국의 권력 공유도 제안했습니다.

 화이트=내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건 나는 미·중 충돌의 필연론에 반대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충돌이 발생 가능한 위험한 상황은 인정해요. 우리는 독일의 경우처럼 새로 부상하는 권력과 기존 권력이 충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지요. 그러나 내가 세운 모델인 ‘권력공유’에 따라 미국과 중국이 협상을 통해 힘을 공유하는 게 ‘어렵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정치학에 영구적인 해결수단이란 건 없어요. 나는 미·중 관계를 그다지 어둡게 보지 않아요. 나와 생각이 다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와도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아시아 체제도 권력공유의 한 형태인데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권력공유라는 분명한 청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시아는 19세기의 유럽과도 다르죠. 그래도 주요 국가들이 정치적인 의지만 있다면 서로 간의 협상을 통해 힘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다고 봐요. 제정러시아·프랑스·영국 등이 그렇게 했습니다. 권력 공유에서 필요한 건 협상을 하는 데 따른 경륜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큰 두 주체지만 일본도 힘이 있어요. 힘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일본 경제는 아직 강하고 발달된 기술이 있고 1억 명의 인구를 가졌어요.

 김=이번 보아오 포럼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해상과 육상 신실크로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출범을 만방에 선포하는 무대였습니다. 여기서 만난 저명한 미국 학자는 오바마의 외교적 참패, 시진핑의 화려한 외교적 승리라고 했습니다.

 화이트=케네디나 루스벨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지금 미국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미국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약한 리더로 보입니다.

 김=그런데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감히 중국과의 ‘권력공유’를 말할 수 있을까요.

 화이트=미국이 먼저 제안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누군가가 제안한다면 그는 공화당 소속일 것입니다. 72년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것처럼. 닉슨은 타고난 전략가였어요.

 김=그의 옆에는 헨리 키신저가 있었고….

 화이트=맞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중국의 개방도 없었을 거고 아시아도 지금 같지는 않을 겁니다.

 김=이번 보아오 포럼에서는 육상과 해상 신실크로드를 바탕으로 한 공동운명체 건설이 키워드였습니다. AIIB도 미국과 특수관계라는 영국이 먼저 참가를 선언해 미국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나라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가는 형국 아닙니까. 공동운명체 건설이 포럼을 압도했어요. 영국이 AIIB 참가의 수문을 열었어요.

 화이트=영국이 AIIB에 참가하는 건 중국이 경제 파트너로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AIIB나 신실크로드의 정치적 의미가 아시아 국가와 유럽 국가에는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대일로와 AIIB가 정치적으로 중요합니다. 중국이 ‘아시아’의 인프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유럽은 조금 달라요. 유럽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매우 밀착되었지만 중국의 정치적 전략 시스템 안에 들어오진 않습니다.

 김=시진핑이 말하는 ‘중국의 꿈’은 무엇입니까.

 화이트=중국이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아시아의 리더가 되는 겁니다. 물론 시진핑의 ‘중국의 꿈’은 국경을 맞댄 국가들에는 강대국인 중국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안겨줍니다. 아시아인들은 시진핑이 인내심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마냥 기다릴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일본은 어떤가요.

 화이트=미·중 관계에서 일본 문제는 항상 논의의 대상입니다. 일본의 아시아 전략은 항상 미국 중심이었어요. 너무 단순화하는 감은 있지만 중국이 강대해질수록 중국의 군사력 때문에 일본은 안보문제로 더 초조해지게 됐지요. 중국이 강해질수록 일본은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일본은 미국에 의존하고 미국의 뒤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역할이 한층 복잡해졌어요. 일본은 미국과 중국이 권력을 공유하는 걸 언제나 경계했어요.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려고 하면 일본은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겁니다. 이건 한국과 호주 같은 나라의 이해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과거 70년과는 달리 일본이 갈 법한 국가 모델은 ‘홀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강대국’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아시아 체제’가 일본에 최상의 선택이란 말입니까.

 화이트=네. 그 체제에서는 중국과의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고, 일본이 혼자서 설 수 있고요. 영국이 선택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립되는 모델도 참고할 만합니다. 영국이 유럽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방관한 방식입니다.

 김=박근혜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협력체제를 제안했습니다. 한국 정도의 중견국가가 그런 다자기구의 실현을 주도할 수 있습니까.

 화이트=다자간 평화 메커니즘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봐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강대국 간의 관계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강대국 간의 관계가 다자간 구도에 안정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의 기본 조건이 다르고 상대편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지만 어느 선에서는 화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호주나 한국 같은 중견국가의 중요성을 강대국에 보여줘야 해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우리는 미·중 간의 갈등이 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해요.

 김=한국은 지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한국 배치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중국은 거기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화이트 교수께서 한국의 지도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화이트=미국의 미사일 방어 문제가 중국 때문이 아니라 북한 때문이라면 문제는 쉽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게 북한 때문이라면요. 제가 한국 지도자라면 이렇게 미국에 말하겠어요. 미국이 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 타협과 절충을 위한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사드 배치가 한국의 이익을 해친다면 미국의 미사일 배치의 근본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말해야죠. 중국에는 미사일 방어체계가 이 지역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설명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균형이 한국의 안보이익에 맞습니다.

 김=북한이 동북아 지역 평화에 가장 큰 장애물의 하나입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화이트=전혀 없죠. 비핵화는 안 될 것입니다.

 김=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마술지팡이 같은 것은 없을까요.

 화이트=북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김정은 정권 붕괴뿐입니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호주 정부에서 오래 일해왔는데요. 제가 맡았던 일은 사우디 독재 정권을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우디 독재 정권은 언제 붕괴되어도 놀라울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의 분석과는 달리 그 정권은 아직도 건재해요. 정확한 타임라인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장기적으로 보면 계속 지속될 것 같진 않아요. 향후 전망은 통일로 가고 있어요. 이건 중국의 이해관계하고도 위배되지 않고요.

 김=(동행한 30대 기자를 가리키며) 저 친구 생전에는 통일이 될까요.

 화이트=긍정적인 관점을 가집시다. 우리 세대에 될 수도 있어요.(일동 웃음)

 김=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서유진 기자

휴 화이트는…

호주국립대 전략안보연구센터 휴 화이트 교수는 탁월한 안목과 분석력으로 21세기 아시아 안보 지형을 가장 냉정하게 꿰뚫고 있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호주 정보기관인 국가평가국(ONA)의 정보분석가,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헤럴드 기자로도 일했다. 1985~91년 국방장관과 총리 자문관으로 호주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국방부 전략·안보 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미국과 중국의 미래 관계를 비롯한 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분석한 『중국을 선택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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