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9. 07:47ㆍ물류와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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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자에 한 역사책을 주문하여 보았다. 한시간이나 떨어진 산호세의 서울문고에서 주문하여 일주일이나 지난 후 한국에서 온 책이었다. 거금(?) 70여불을 주고 산 책은 '박인수' 저 '역사에 반역'이라는 책이다. 대륙조선사를 논했다고 해서 궁금해서 샀는데 책을 받아 본 순간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두꺼운 책으로 기대하고 내용이 가득차서 참조할 자료가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로 내용을 채우고 있었다. 일부 자료들은 지도나 그림, 사진, 신문내용의 복사, 서류의 복사처럼 오히려 더 보기 좋았으나, 많은 내용이 자료 소스가 없는 것은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조선사를 주장하기에 살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조선말기의 많은 내용은 참조가 많이 되었다. 이책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나는 대륙조선의 주장을 볼 때마다 조선말기의 상황이 궁금했다. 어떻게 대륙에 있던 조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큰 나라가 어떻게 맥없이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대륙 조선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한반도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책에서는 고종과 순종도 모두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결코 한반도로 넘어온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한제국도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고종때의 사건들이 모두 대륙땅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를 검중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고종은 평안도 운산 금광 채굴권을 미국에게 주면서 그 25%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미국의 JP Morgan 등 그당시의 미국 유대자본이 이곳 운산금광에서 막대한 금을 캤다 한다. 그래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No Touch” 해서 노다지란 말이 생겼다 한다. 운산금광에서 캔 금이 엄청나서 그 당시의 미국의 자본시장을 뒤흔들었고 고종이 미국 자본시장의 큰 손이 되었다 한다. (아마도 고종은 이 자금으로 (최근에 대한민국이 되사들인) 워싱톤 DC의 공사관도 매입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 그래서 미국에도 평안도 운산금광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평안도 운산금광이 지금의 중국 대륙에 있는지 한반도의 평안도에 있는지 알 것이다. 만약에 그당시의 미국 기록이 평안도 운산금광이 대륙이었다면 한반도로의 이전은 고종 훨씬 이후로 생각할 수 있으며, 대한제국도 대륙에서 선포한 것일 것이다. 최근 북한의 지하자원을 조사한 미국의 모 컨설팅기관에서도 평안도 운산금광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다. 이것을 밝히면 일제의 역사조작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대륙조선사를 우리는 보다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미국도 일본의 역사조작의 과오를 덮으라고 하지 말고 이를 명명백백히 밝혀 조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일조하는 것이 한미일 동맹의 진정한 결속을 위한 일일 것이다. 두번째 일제는 대륙의 조선의 양반계층들을 한반도로 이주비를 지원하면서 이주 시켰다 한다. 180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인구는 300만 - 500만 이었다 한다. 그러나 이런 이주로 말미암아 1911년에는 1000만이 넘었고 1926년이후에는 2000만이 넘었다 한다. 실제 일제의 서류 '조선이주수인초'와 '조선신사대동보'라는 한반도 조선인명록에 나타난다 하였다. 이러한 이주 기록은 대륙조선의 존재를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라 하겠다. 또한 한반도의 양반들이 족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점, 그리고 집성촌이 많은 것을 보면 이를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신분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우리는 배웠다. 이후 청의 침력과 압박으로 조선사회는 또 한번 변화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청은 양반과 퍙민, 천민의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반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역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공부하여 벼슬에 오르기만을 기대하는 계층이다. 부패한 관리들의 문란한 삼정으로 농민들인 양민은 산속으로 도망가는 사회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 비양반층이 신분질서가 없는 사회로의 이전을 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필연의 움직임이다. 영국의 입헌군주제 도입과 시민혁명, 프랑스의 혁명, 러시아의 볼세비키혁명 등이 그런 변화의 유형이다. 대륙의 조선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손문의 혁명세력, 청의 군벌세력, 상인세력, 장개석의 국민당, 모택동의 공산세력으로 나타난다. 조선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질서가 없어졌다. 이 상황에서 조선의 양반들은 일제보다도 혁명세력, 군벌, 만주족의 상인세력으로 변한 비양반세력들의 핍박이 더 두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가 지원하는 한반도 이주를 더 기꺼히 응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이러한 변화, 즉 신분질서의 무너짐으로 인한 비양반층의 조선사회 이탈, 그리고 가렴주구로 인한 농민들의 이탈로 나라의 곳간은 비게 되고, 전쟁시 군역을 담당하는 농민이 없어짐으로 조선은 군사력이 없는 나라가 되어 망하게 된다. 가뜩이나 임진왜란 이후 총을 비롯한 신무기 앞에 무력해진 조선의 군대는 대원군 시절 일부 서양의 군대와 싸우는 전과를 보였으나 나라 재정의 궁핍으로 더욱 군대유지가 어려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결국 임오군란으로 이어지며 망국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고종, 순종까지도 대륙에 머물렀다 하면 1919년 1월 서거한 고종의 독살설로 촉발된 3.1 독립운동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대륙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 5.4 운동. 최근의 KBS 프로그램에서 1953년 대한민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반도에서는 3.1 독립만세운동시 600여명이 죽었다 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 통계에서는 6000여명이 죽었다 하고 부상이 3만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한다. 최근 인터넷 뉴스에 의하면 외국 신문에 나온 상해발 기사에 의하면 전국에서 300만명이 가담했다 하고 10만명이 단 10시간내에 희생되는 참극이었다고 한다. 일제가 학살과 방화를 일삼았다고 한 것을 보면, 그 피해가 몹시 컸을 것이며, 이 당시 일제는 아직 대륙에서 활동하였으므로 대륙에서의 조선 존재가 짐작된다. 세번째로 일제는 1926년에 대륙에서 철수하고 한반도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한다. 이러한 이동기록은 일제의 기록을 살펴 보면 금방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1926년은 순종이 독살 당하고 그 여파로 6.10 만세운동이 있었던 해이다. 따라서 순종까지 대륙에서 있었다 하는 것을 밑받침하게 되며, 6.10 만세운동도 대륙에서 일어났을 것을 말해 준다. 이는 또한 대한제국도 대륙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일제가 대륙에서 철수한 것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군이 합작 - 1924년 1차 국공합작 - 하여 몰아 냈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보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서구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임진왜란시부터 해왔다. 그때에는 포루투갈, 스페인의 지원을 업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서구의 대륙침략의 주구 노릇을 했는데, 서구세력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 청일전쟁에서도 러일 전쟁에서도 영국 미국 등의 지원을 받으며 대리전쟁을 했다.. 막대한 전비를 이들로부터 차관으로 빌리기도 했다. 즉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일본을 앞세워 조선대륙을 침략했다. 즉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구세력과의 협력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일본은 한민족에 행한 죄악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그 모든 과거사를 용서한다 해도 조선의 사서 20만권이상을 탈취하고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 왜곡하여 식민사관으로 한민족을 오도한 점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일본의 수상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노부유끼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너희가 조선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한.....우리는 다시 올 것이다. ' 일제의 '조선반도사' 편찬원칙은 다음과 같다 한다. 1) 조선인들로 하여금 조상의 무위, 무능, 부패, 악행을 들추어 선조를 경멸하게 만들라. 2) 조선인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 언어 등을 바르게 알지 못하게 하여 민족의 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여 매사에 열등의식을 갖게 하라. 3) 조선의 청소년들이 조선의 위인과 업적을 잘 못 알게 하여 조상을 부정하고 일본의 위대성을 세뇌시켜 어릴 적부터 조선의 싹을 죽이고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거듭나게 하라. 대륙의 조선역사 흔적은 일제의 한반도 이주 지원, 한반도 역사위주의 식민사관 왜곡에 이어, 대륙의 모택동과 장개석에 의해 철저히 지워진다. 그리고 6.25 전쟁과 중공의 문화혁명에 의해 완전히 지워진다. 2차대전 종전시 일본의 조선인 군사 백만명이 대륙에 남아 있었는데, 이를 접수한 모택동이 장개석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이들 조선인 병력은 6.25 전쟁시 중공군 개입시 동원되었다 한다. 그리고 휴전후 김일성에게 넘겨 주어 김일성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했다 한다. 6.25 전쟁시 중공군이 한국말을 했다는 증언은 이를 방증한다 할 것이다. 1960년대 일어난 중공 공산당의 소위 문화혁명은 지식인들을 핍박하고 서적을 불태우며 조선의 흔적을 없애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중공 젊은이들은 그들의 과거 역사를 모른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다 한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후퇴시 많은 사료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 한다. 그렇다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데... 최근 미국 셔먼 국무차관의 일본 편향 발언은 이같이 그 뿌리가 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과거 고종때 조미수호조약에서 미국은 거중조약으로 조선의 위험시 미국군의 개입을 약속했지만 결국 한일합방시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최근 한국은 미 중의 샌드위치 신세에 있는데, 미국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미국과 중국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게끔 이들을 설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용서하라 하면, 적어도 조선역사의 축소와 왜곡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고, 일본이 탈취한 조선의 역사서 모두를 반환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일본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미국도 이러한 조선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음모세력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듣기 전에 진실한 조선의 역사가 모두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해 한국을 도와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이 지난 역사를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위안부사건만을 언급한 것이 아닌 감추어진 과거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생각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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