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완공되는 울릉 일주도로
내수전~북면 섬목 4.75㎞ 내년 개통
1시간 반 돌아가던 거리 10분 걸려
완공되면 연 관광객 100만 명 예상
“최근 관광객 줄어들어 힘들어
일주도로 완공만 손꼽아 기다려”
2022년엔 사동항에 공항도 건설
울릉 일주도로 건설이 처음 계획된 건 1962년이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을 만들었고 63년 3월 일주도로 개설 계획이 확정됐다. 하지만 실제 사업은 늦었다. 첫 개통은 79년 9월이다. 울릉읍 도동리와 저동리 사이 2.3㎞ 구간에서 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이어 2001년까지 39.8㎞ 도로가 순차적으로 개통됐다. 하지만 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섬목 구간 4.75㎞는 공사비 문제 등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울릉군 관계자는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공사를 할 수 있었다”며 “내년이면 55년 만의 숙원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울릉군은 일주도로가 완성되면 한 해 관광객이 100만 명(2015년 28만8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수일 울릉군수는 “일주도로 완공은 울릉도 관광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내려오면 미개통 구간의 터널이 시작하는 지점이다. 터널 공사현장은 하얀 포장재로 덮여 있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위한 사전 절차다. 덤프트럭이 바쁘게 오갔다. 터널 내부에서는 불빛이 흘러나왔다.
[S BOX] 고종, 일본서 산림 무단 벌채하자 1882년 울릉도 개척령 선포
『삼국사기』(1145년)는 512년(지증왕 13년) 신라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고 기록한다. 우산국은 현재의 울릉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삼국사기 등에는 이사부가 나무로 만든 사자상을 동원하자 사자를 처음 본 우산국 주민들이 항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산국의 왕 우해왕(于海王)이 벗어 두었던 투구가 현재 울릉도의 투구봉이 됐고, 나무 사자상은 사자봉이 됐다는 전설도 전해 온다.
『고려사』(1451년)에도 울릉도가 등장한다. 고려사에서 울릉도는 우산국, 우릉도(羽陵島) 등으로 기록돼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산국은 930년(태조 13년) 고려에 조공을 바쳤다. 고려는 우산국의 지배 세력에게 고려의 관직을 하사했다. 또 1032년(덕종 1년)에는 ‘우릉성주가 아들을 보내 토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에 속하며, 우산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 동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는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부 안용복의 활약 등으로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는 과정(1696년·숙종 22년)이 기록돼 있다. 이어 1882년(고종 19년) 조선은 본토 주민을 본격적으로 울릉도로 이주하는 울릉도 개척령을 선포했다. 일본 측이 울릉도의 산림을 무단 벌채하자 추진한 정책이다.
『고려사』(1451년)에도 울릉도가 등장한다. 고려사에서 울릉도는 우산국, 우릉도(羽陵島) 등으로 기록돼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산국은 930년(태조 13년) 고려에 조공을 바쳤다. 고려는 우산국의 지배 세력에게 고려의 관직을 하사했다. 또 1032년(덕종 1년)에는 ‘우릉성주가 아들을 보내 토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에 속하며, 우산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 동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는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부 안용복의 활약 등으로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는 과정(1696년·숙종 22년)이 기록돼 있다. 이어 1882년(고종 19년) 조선은 본토 주민을 본격적으로 울릉도로 이주하는 울릉도 개척령을 선포했다. 일본 측이 울릉도의 산림을 무단 벌채하자 추진한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