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4. 12:10ㆍ쿠오바디스 행로난
ㆍ도시 문명의 뿌리는 사람의 몸이다
우리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지 족히 반만년은 넘는다. 저 반만년의 세월 동안 ‘서울’과 같은 대도시(megalopolis)에 천만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본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이른바 ‘도시 문명’을 그동안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고층아파트, 주상복합 등 고밀도화된 공간구조에 대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가 이런 공간구조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경험을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울 수도 없고, 이런 도시화된 공간구조에서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으며, 그런 교육을 제공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은 역사적으로 처음 겪어보는 사태인데, 그냥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 문제일까?
■예의와 교양, 도시생활의 근간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거대 도시에서 거주하는 형태의 문명 조건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 이후이고 대략 18세기부터다. 그 시절 유럽의 대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의 사는 모양이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오죽하면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1646~1716·왼쪽 그림)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정도였으니. “일찍이 누가 믿을 수 있었겠는가? 도대체 이런 종족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우리 유럽인들은 미풍양속의 모든 세련됨을 위해서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런 우리를 교양이 우러나는 세련된 생활양식에 대한 가르침으로 능가하는 종족이 있기에 말이다. 내가 이 종족을 더 잘 알게 되면 될수록, 나는 이 사실을 중국인들에게서 확인하였다. (…) 일개 농부에 불과할지라도 심지어 일개 하인에 불과할지라도, 중국인들은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고 혹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경우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기뻐한다. 아주 사랑스럽고 아주 존경스럽게 서로를 극진히 떠받든다. 이런 모습에 우리 유럽인들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말이다. 이와 같은 농부와 하인들의 예의 방식은 심지어 우리 유럽의 귀족들이 자랑하는 온갖 예법에 도전할 정도이다. 하물며 고위 관리들, 고급 학자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지 싶다.”(‘중국에 대한 최신 소식들’)
라이프니츠가 “교양이 우러나는 세련된 생활양식”을 강조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중국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17세기 말부터 급속하게 진행된 유럽 도시의 팽창·발전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급작스럽게 대도시로 성장한 런던과 파리 등 유럽 대도시들은 몰려든 사람들이 더불어 모여 살기 위한 어떤 제도적 기반과 시민 교양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제안된 개념이 시민 교양에 해당하는 ‘키빌리타스(civilitas)’이다. 이 개념은 시민 교양 혹은 예의범절, 교양에티켓 정도를 뜻했다.
도시의 급성장과 급팽창, 좁은 공간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예의가 절실했음을 방증해주는 개념이 바로 키빌리타스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를 들 수 있다. 로마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매우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야 했던 곳이다. 특히 로마는 국가의 규모가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제국으로 커지면서 도시 로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다. 씨족이나 부족 중심의 농경사회에서는 포착되지 않았던 사건들로, 도시의 익명성과 제국의 다양성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이것들에 대한 반성과 해결책을 고민했던 사람이 키케로(기원전 106~43년)였고, 그가 부르짖은 학문이 인문학(후마니타스·humanitas)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프니츠의 키빌리타스는 키케로의 후마니타스에 호응되는 개념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개념이 겪어야 했던 이후의 운명이다. 키빌리타스는 라이프니츠의 바람대로 “예의와 교양”이 아닌, 야만으로부터 문명(civilization)을 구별하는 제국 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반면 후마니타스는, 라이프니츠의 키빌리타스 개념이 본래 지향했던 “예의와 교양”을 목표로 하는 인문 교육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후마니타스는 종종 제국 이념으로 “문명”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개념들의 의미 변화와 관계없이, 후마니타스와 키빌리타스는 서양 인문학이 역사적으로 도시 문명과 직결되어 발전해 왔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람의 몸이 집의 설계도
‘도시 문명’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도시 문명과 인문학의 상관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집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겠다. 유럽 도시의 외관이 아니라 그 외관 저변에 깔린 생각을 논하겠다. 한마디로, 도시란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고, 집이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즉, 사람을 공간 구성의 핵심 원리로 삼고 있다는 그것이다. 물론 유럽의 모든 도시들이 이 생각을 핵심 원리로 삼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 건축학의 전통이 사람을 중심에 놓는 생각(humanitas)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증인은 서양 건축학의 실질적인 시조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기원전 84~14년)이다. 그의 말이다.
“어떤 건물도 대칭과 비례 없이 구성의 원리를 얻을 수가 없다. 좋은 신체를 가진 사람의 사지에 대한 정확한 비례를 계산해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건축십서>, 제3권 1장 1절)
건축물이 신체의 비례에 근거하고, 사람의 몸을 건축에 사용되는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다시 비트루비우스의 주장이다. “자연은 사람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 얼굴은 턱으로부터 이마의 가장 윗부분과 머리카락의 가장 낮은 뿌리까지에 이르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몸 전체 길이의 십분의 일에 해당한다. 손바닥은 손목 관절로부터 중지의 끝부분의 길이인데, 이도 마찬가지 길이이다. 머리는 턱으로부터 정수리까지를 말하는데, 이는 (몸 전체의) 팔분의 일에 해당한다. (…) 다른 지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유한 대칭 비례를 가지고 있다. 고대의 화가들과 유명한 조각가들이 이를 활용해서 불멸의 명성을 누렸다. 한편 이와 유사하게 신전들을 구성하는 지체들은, 전체 크기의 온전한 총체에 개개의 부분들로부터 비롯한 가장 잘 어울리는 상호 비례의 호응을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몸의 중심은 본성적으로 배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팔과 다리를 벌리고 등을 지고 뉘어져 있다면, 컴퍼스의 회전하는 다리의 축이 그의 배꼽에 놓이게 되면, 원을 따라 돌아가면서 선이 양손의 손가락 끝과 양발의 발가락 끝에 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몸에서 원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몸 안에서 정사각형이 발견될 것이다. 왜냐하면, 발바닥에서 머리 끝부분까지를 측정하고 그것을 양팔을 활짝 펼쳤을 때와 비교해보면, 그것의 높이와 너비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규격에 맞게 정사각형 모양을 갖춘 구역처럼 말이다.”(<건축십서>, 제3권 1장 2~3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1490년경 흔히 ‘인체비례도’라 불리는 ‘비트루비우스의 인간(Vitruvian Man)’을 그렸다. 중요한 점은 건축물이 신체의 유추물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얘기다.
■광장, 도시의 배꼽
건축물이 신체의 유추물이고, 도시는 기본적으로 신체 유추의 연장체라는 것이 비트루비우스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도시 건설의 경우 광장이 특히 중요하다. 도시의 배꼽이 광장이기에 그렇다. “카이사르여, 제3권과 제4권에서 신전들에 대해서 논했음으로, 이 책에서는 공적인 장소에 대한 배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광장이 세워져야만 한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정무관들이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곳이 광장이기 때문입니다.”(<건축십서>, 제5권 서문 5절)
도시는 이렇게 세워진다고 한다. 먼저 도시의 한 중심에 빈터가 주어진다. 그 빈터를 중심으로 주랑들이 세워지고, 그 주랑들 사이에 상점들이 공간을 배당받는다. 이어 감옥, 의사당도 공간을 배정받는다. 다음으로 극장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목욕탕, 경기장도 빠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항구도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비트루비우스에 따르면, 이렇게 배치된 건축 공간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방식과 기능(humanitas)’들이 건축이라는 옷을 입은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도시란 광장의 여러 기능들이 물질화된 공간일 것이다. 광장에는 두 모습의 공간이 있다. 하나는 ‘공간으로서의 광장’, 다른 하나는 ‘기능으로서의 광장’이다. ‘기능으로서의 광장’이 물질화된 공간이 도시이다. ‘공간으로서의 광장’도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빈터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비트루비우스가 도시를 세움에 있어서 그 중심에 첫 번째로 놓으라고 말하는 빈터가 바로 그곳이다. 비트루비우스에 따르면, 그 빈터는 그냥 공터가 아니다. 도시의 비례와 균형을 잡는 저울(libra)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광장의 규모에 따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과 거리의 비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광장은 그냥 중심지가 아니라 도시의 배꼽(umblicus urbis)이다. 광장이 도시의 배꼽인 이유는 건축물들의 비례와 도시의 공간구조를 결정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다름 아니라 광장이 말과 소리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중심지라는 말이다. 온갖 소리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광장(Forum)이고, 그 소리들의 승패를 결정하는 곳 또한 광장이다. 시장, 법정, 민회가 열리는 곳이 광장이었다. 어쩌면 로마의 광장들은 이 소리의 비례 원리에 입각해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도시들, 건축물이 사람을 준거로 삼았다는 점은 당시 극장 등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은?
서양의 건축과 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원리는 바로 사람의 몸이었다. 이쯤에서 서울로 와보자. 인문적 시민사회 구축을 위해 서양의 근대화 혹은 현대화 시기에 했던 인문학의 시도들·노력들과 비교해볼 때 과연 서울은 무슨 노력을 했을까?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라이프니츠가 던졌던 “예의” “교양” 같은 인문적 물음을 염두에 둔 적이 있을까. 아니 현재 건축물들과 도시의 공간 구성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사실 이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서울에 미안할 정도이다. 서울이란 도시의 공간 구성은 집값 등 경제적 비중이 워낙 높아 “사람 중심의 서울”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돈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놓는 서울을 꿈꾸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살아야 하는 곳이 서울이다. 이제 집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도시는 돈이 모인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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