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와 행로난](8) 각자의 차이 아우르는 보편 이념 ‘시민’이 있어 로마가 가능했다

2017. 7. 4. 12:08쿠오바디스 행로난

ㆍ제국을 유지하는 힘은 무엇인가

로마 시대의 정치가인 키케로가 원로원 의원들을 상대로 내란 음모에 대한 신속한 대책을 설득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마카리(1840~1919)의 프레스코화.

로마 시대의 정치가인 키케로가 원로원 의원들을 상대로 내란 음모에 대한 신속한 대책을 설득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마카리(1840~1919)의 프레스코화.

물론 제국을 만든 것은 군사력이다. 하지만 제국을 유지하는 데에는 ‘문화의 힘’이 요청된다. 물리적 힘은 정복에는 효과적이지만, 통치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로마 제국이다. 

■로마 제국의 통치 비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정복한 로마 장군  아그리콜라의 동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정복한 로마 장군 아그리콜라의 동상.

역사가 타키투스(55~?)는 장군이자 자신의 장인이었던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전기 <아그리콜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그리콜라는 호전적인 사람들(아마도 브리타니아인들)이 유흥을 통해 평화와 편안함에 익숙해지도록 사적으로 권하고, 공적으로는 신전과 광장과 집들을 짓도록 도왔다. (…) 명예를 얻기 위한 자발적 경쟁이 억지 강요를 대신했다. 귀족 자제에게 자유교양학문을 가르쳤다. (…) 로마인의 말인 라틴어를 거부했던 자들도 이내 연설을 배우고 싶어 하게 될 정도였다. 우리 로마의 복장을 명예롭게 여기고 토가(로마의 옷)가 유행했다. 그들은 점차 악덕으로 유혹에 빠져들었다. 주랑과 목욕탕과 우아한 주연에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는 문명(humanitas)으로 불리곤 했다. 비록 그것이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의 일부임에도 말이다.”(<아그리콜라>, 21장)

로마 제국의 통치 비밀이 여기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로마식으로 길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브리타니아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로마는 두 가지 정책을 추진한다. 교육, 그리고 도시 건설. 이 과정 전체를 후마니타스라고 부르는데, 타키투스는 이 정책을 노예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후마니타스가 제국의 통치이념으로 활용되는 사례다. 하지만, 후마니타스는 본래 ‘사람다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마음’ ‘사람을 바탕으로 여기는 생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말을 만든 키케로(기원전 106~43년)에 따르면, 후마니타스는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는 학문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교육을 뜻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타키투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후마니타스 개념은 제국의 팽창과 유지에 핵심적인 원리로 확장되어 사용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문건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트리아보니아누스가 528~534년에 편찬한 <로마법 대전(Corpus Iuris Civilis)>이다. 그 가운데 <법학제요(Institutiones)> 제1권의 시작 부분은 이러하다. 

“정의는 각자에게 그 자신의 권리를 부여하는 확고하고 영속적인 의지이다. 1.법학은 신의 일과 인간의 일에 대한 지식이고, 옳음과 그름에 대한 앎이다. (…) 3.법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명예롭게 사는 것,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 각자에게 그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다. 4.이는 두 분야로 나뉜다. 공법과 사법이다. 공법은 로마 국가의 성립조건에 관한 것이고, 사법은 개인의 이익과 연관된다. 따라서 사법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이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자연, 민족, 시민에 관한 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법학제요>, 제1권 1~4장) 

드니 고드프루아(1549~1622)가 편집한 뒤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콜로니아 알로브로굼에서 1626년에 출판된(초판본 1583년) <로마법 대전> 제1부 표지.

드니 고드프루아(1549~1622)가 편집한 뒤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콜로니아 알로브로굼에서 1626년에 출판된(초판본 1583년) <로마법 대전> 제1부 표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로마 제국의 법체계 자체가 키케로의 후마니타스 이념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먼저, 자연·민족·시민(persona civilis)을 구별한다는 점이다. 로마 제국의 성립과 유지와 관련해 시민 개념은 중요한데, 이 개념은 인종·혈통·종교·지역·신분의 다양함과 소위 ‘잡(雜)’스러움을 아우르는 보편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들을 아우르는 개념이 있을 때 유지가 가능한 정치체가 실은 제국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국은 법적으로 그 권리가 보장된 시민들의 정치체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로마 제국의 법정에서 사도 바울이 외친 “나도 로마 시민이다(Civis Romanus Sum!)”(<사도행전>, 21장 22절)라는 주장이다. 바울의 사례는 공화정 체제의 도시 로마가 제국 로마로 확장함에 있어 그 확장 원리가 시민 개념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사례는 따라서 로마 제국이 물리적 군사력에 의거한 정치체도 아니고 단순하게 황제의 나라도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사태·사건과 이해관계를 지역·혈통·종족 등의 특수 맥락이 아닌 공과 사라는 보편 맥락으로 접근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suum cuique)’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사적인 것은 사적인 것에, 공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공동의 일(res publica)은 공동체에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고, 이를 근거로 국가는 존립근거를 확보한다. 그리고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의무와 권리라는 계약관계로 해명한다. 이른바 ‘각득기소(各得其所)’의 원리가 정의이다. 키케로는 이를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셋째는 로마 제국의 법체계의 목적 이념이 기본적으로 후마니타스라는 점이다. 명예롭게 사는 것, 각자에게 그 자신의 것을 주는 것,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이 후마니타스의 하위 이념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로마 제국의 성립과 유지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시민 개념으로 본다. 제국의 구성원인 개별 시민이 기본적으로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제국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고향, 신분, 종교, 혈통, 인종 따위의 특수 조건에 의해 국가가 좌우될 때 제국은 붕괴한다. 미국이 인종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국을 알아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로마 제국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년)의 노래이다. “두려워 마라, 베누스여, 네 백성의 운명은 확고하다. (…) 백성들은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자신들을 로마인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주지 않았다./ 나는 무한 제국을 주었다. (…)/ 이것이 나의 뜻이다.”(<아이네이스>, 제1권 257~283행) 

유피테르가 베누스 여신에게 로마의 운명에 대해 예언하는 대목이다. 로마인의 시조인 아이네아스가 유노의 질투와 분노로 지금은 고생하고 있지만, 종국엔 세계의 영원한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뜻”, 곧 유피테르의 뜻(Dios boule)이라고 한다. 유피테르의 뜻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답은 양가적이다. ‘아니오’의 경우, 역사적 실체로서 로마는 사라지고 없다. 이 점에서 유피테르의 뜻은 실현되지 않았다. ‘예’의 경우, 로마가 남긴 ‘무한 제국’은 문명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는 정도로 답할 수 있다. 좀 더 설명하면, 모든 국가는 그 규모에 준해 그에 맞는 정치와 문화의 기준과 척도를 가지고 있다. 부족 단계이든, 제국 단계이든 자신의 크기와 무게를 유지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구조와 체계를 갖는 것이다. 서양 역사에서, 제국 단계에 이르는 규모로 힘과 크기가 성장한 나라에서는 어김없이 로마가 되살아났다. 세계를 지배·통치해 본 경험이 이전 자신들의 종족 역사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로마는 일정 정도 이상의 규모로 커진 국가의 역사에서 항상 반복돼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는 지금도 살아있는 제국인 셈이다.

이에 따라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판도와 그 판을 움직이는 규칙을 이해하기 위해선 좋든 싫든 ‘제국’ 로마의 역사가 간과될 수 없다. 특히 로마 제국의 역사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도 크게 두 가지 있다. 우선, 미국이 현대의 로마(nova Roma)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로마가 단적으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펼치는 전략·전술이 어떤 원리에 입각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사용하던 전략·전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로마 제국을 알아야 하는 첫 번째 현실적 이유다. 두 번째는 아주 뜻밖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다. 중국이다. 중국의 공산당 통치 체제가 로마 원로원의 그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하고,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학자들은 원로원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일당 중심의 통치 체제라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소수의 원로그룹 세력이 막후에서 최고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로마의 원로원 정치와 중국의 현대 공산당의 통치 방식이 서로 견주어 볼 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도직입적으로 하나 물어보자. 과연 우리의 역사에서 세계를 ‘직접’ 움직이고 ‘몸소’ 운영해 본 적이 있었는가, 이른바 문명의 표준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를 말이다. 아니,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해 본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적어도 문명의 표준을 만들었고 결정해 본 역사를 가진 제국의 실제를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사대국으로서 로마 제국을 모범으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의 전략·전술이 로마의 그것에 뿌리를 두고 응용·변용되고 있다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제국 이념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사회에 절실한 것! 

그런데 사정은 오히려 고약한 편이다. 제국 이념에 대한 이해와 파악을 위해서는 보편 이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조건인데, 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을 둘러보자. 한국 사회가 물신 사회에서 벗어난 공동체인지 의심스럽다. 성장주의, 성공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담론이다. 혈연과 지연·학연에 뿌리를 둔 봉건사회를 탈피했는지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너도 사람이고 한 인간이다’의 시선으로 지역이라는 경계 너머의 사람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 정도로 성숙했을까? ‘먹고사니즘’이 너무 강력해서, 그리고 ‘귀차니즘’이 만연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답하기 곤란한 물음일 수도 있다. 또 고립과 배제에서 소통과 통합의 정신이 한국 정치의 중심 이념인지, 이를 바탕으로 남북이 ‘따로 또 같이’ 번영하는 공영사회로 나가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오히려 기승하는 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공영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이 퍼뜨려 놓은 ‘복불복’ 논리 아닌가. 한국 문화와 역사가 식민지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단절된 전통사회의 미덕과 장점이 살아있는 사회인지, 그리고 외래 문화와 문명이 상호융합하는 개방사회인지도 의문스럽다. 

적어도 한국 사회가 인문사회, 교양사회, 시민사회, 지식사회, 개방사회, 공영사회로의 진입이 시대 과제라면 보편 이념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아직 국민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이 안 됐으며, ‘좋은 나라(civitas bona)’ 혹은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최소의 합의나 동의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제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동의를 담은 ‘시민 헌장(carta civilis)’이나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인간 정신을 담은 ‘인간 선언’, ‘마그나 카르타’나 ‘미국 독립 선언’ 등과 같은 ‘인간 헌장(carta humana)’이 선언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내부 통합과 남북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공통성을 마련함에 있어서 이제는 민족 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군사적으로 첨예화되고 있는 동북아 세계가 공존·공영·공생할 수 있는 이념과 논리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장 사회’에서 ‘성숙 사회’로의 이행 또는 업그레이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절박한 시점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608191944005#csidxba2bdd24f96c257ac4e1f70de73e4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