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4. 12:20ㆍ쿠오바디스 행로난
ㆍ가망 없는 왕조를 끝내는 법
<논어>에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적잖이 숨어 있다. 가령 “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그의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언하다가 죽었다. 공자가 말했다. ‘은나라엔 이 세 명의 인자가 있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 공자가 낸 수수께끼 하나
언뜻 보면 도무지 수수께끼 같지 않은 말이다. 옛적 은나라에 미자, 기자, 비간이란 이가 있었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노예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은 간언하다가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밋밋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런 후 이들은 모두 인자 즉 어진 이라는 공자의 평가가 제시되어 있다. 대체 어디가 수수께끼 같다는 말일까.
미자, 기자, 비간 자체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란 얘기일까? 아니다. 너무 옛날 인물인지라 행적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이 실존했던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그들을 인자라고 한 공자의 평가? 틀렸다. 다른 문헌을 참고하면, 이들은 공공선의 실현을 위해 깔고 앉아 있던 기득권을 선뜻 버렸던 이들이었다. 공자가 확실한 근거를 갖고 인자라고 평가했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이 수수께끼 같다는 것일까.
바로 “은나라엔 이 세 명의 인자가 있었다”라는 단정이 그것이다. 공자 자신도 인정했듯이, 건국 시조인 탕왕을 비롯하여 이윤 같은 명재상도 은나라에 존재했던 엄연한 인자들이다. 그러니까 은나라엔 적어도 다섯 명의 인자가 실존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셋만 있었다고 했으니, 그 의도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왜 그랬을까?
힌트는 위 구절에 들어 있는 ‘그’의 정체다. 문맥상 그는 은나라 마지막 천자 주왕을 가리킨다. 역사를 보면 이 셋은 주왕 시절의 인물이었다. 떠나고 노예가 되며 죽임을 당함도 모두 그와의 연관 아래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여 공자가 말한 ‘은’이 혹 은나라 시기 전체가 아니라, 은나라 말엽을 가리키지 않았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은나라 말엽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또 다른 힌트는 아닐까. 사실을 기록하듯 잘라 말하는 방식으론 못다 담아내는 무언가를 더 담아두었으니, 이를 한번 찾아보라고 독자를 유인했던 것은 아닐까.
■ 군주와 쟁의하는 세 가지 방식
그 하나가 ‘간쟁(諫諍)’이다. 간쟁은 신하가 국정을 두고 군주와 말로 벌이는 다툼을 말한다. 은나라 주왕은 하나라 걸왕, 주나라의 여왕, 유왕과 함께 악명을 역사에 길이 남긴 ‘4대 폭군’의 하나였다. 걸왕 때 백성들은 “이 태양이 언제 진단 말인가” 하며 폭정에 절규했는데, 주왕 때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보다 못해 미자가 나서서 간했다. 결과는? 당연히 들은 척 만 척이었다. 미자는 재차, 삼차 간언을 올렸다. 사적으론 주왕의 이복형이자 공적으론 조정 대신인 자가 올린 수차례의 간언이었건만 주왕은 흘려들었다. 이에 미자는 미련 없이 조정을 떠났다. 그러자 주왕의 숙부인 기자가 나섰다.
그도 간하고 또 간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이에 기자는 미친 척했고, 미친 자는 천민 취급을 했던 당시 관념에 따라 그는 노예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주왕의 또 다른 숙부 비간이 나섰다. 그는 주왕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간하고 또 간했다. 얼마나 집요하게 간했던지 하루는 주왕이, 듣자 하니 성인의 심장엔 7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던데 한번 확인 좀 해보자며 그 자리서 가슴을 갈라 죽였다. 폭군의 눈에도 간쟁을 그만두지 않던 비간이 성인으로 보였던 듯싶다.
미자와 기자, 비간은 이렇게 폭군 설득에 과감히 나섰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여 이렇게 유형화할 수 있다. 신하가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함량 미달의 군주에게 간쟁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말이다.
하나는 미자가 보여줬듯이, 정당한 간쟁을 군주가 거부하면 미련 없이 조정을 떠나는 길이다. 둘째는 기자의 길로, 군주가 간쟁을 거부하면 간쟁을 멈추되 ‘의로운 희생양’이 되어 군주 곁에 머물기가 그것이다. 셋째는 죽을 줄 빤히 알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간쟁하다가 비간처럼 정말로 죽임을 당하는 길이다. 무고한 목숨으로써 자신의 간쟁이 옳고 군주가 틀렸음을 온 세상에 고하는 방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간쟁에 이 세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렇듯이 ‘절충형’이라 부를 만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춘추시대 진(晉)나라엔 조돈이란 명신이 있었다. 그는 개념 없는 군주였던 영공에게 틈나는 대로 간했고, 이를 참다못한 영공은 자객을 보내기도 하고 연회를 가장해 죽이려고도 했다. 그러자 조돈은 외국으로 망명하여 훗날을 기약하려 했다.
맹자에게서도 또 하나의 경로를 추출해낼 수 있다. 그는 제후와 담론하는 자리에서, 미자나 기자, 비간 같은 처지에 선 이들에게 간언을 듣지 않는 폭군은 축출해도 된다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역사를 보니 군주가 자신의 인척인 조정 대신의 거듭된 간언을 듣지 않으면 축출되기 일쑤였고, 인척이 아닌 조정 대신의 간언에 줄곧 응하지 않으면 대신들이 떠났다는 말이 그것이다. 맹자답게 간쟁하는 급진적 경로를 제시한 셈이다.
물론 “군자가 세상에 처함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다. 의로움만 따르면 된다”는 공자의 말처럼, 또 “부모님께는 에둘러서 간해야 하며, 부모님께서 듣지 않으시더라도 더욱 공경하며 부모님 뜻을 어기지 말라”는 그의 경계처럼, 간쟁에서 극단의 길을 선택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주문이휼간(主文而譎諫)”, 그러니까 “수식을 가해 우회적으로 아뢴다”는 처세의 준칙이 이미 2000여 년 전에 나왔음은 이를 반증해준다. 다만 이는 현실이 대체로 그러했다는 사실 확인일 뿐, 그렇기에 미자와 기자, 비간이 보인 간쟁의 세 유형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 공적 권력의 세 가지 핵
한편 이 구절은 역성혁명과 관련하여 해석될 수도 있다. 미자와 기자, 비간의 행위가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천자의 나라로 거듭나는 역성혁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기에 그렇다.
미자의 행위도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는 주왕 곁을 그냥 떠난 것이 아니었다. 떠나올 때 종묘의 주요 제기를 들고 나왔다. 이는 천명이 주왕에서 떠났음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종묘 제기는 천명이 가시적 형식으로 재현된, 왕권의 정통성을 보증해주는 통치 장치였기 때문이다. 결국 미자의 행위는 왕조의 정통성이 허물어졌으니 그다음을 준비하자는 신호였던 셈이다.
기자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천자의 가까운 인척이자 조정 대신이었던 미자가 제기를 들고 하루아침에 떠남으로써 조정 바깥에서 주왕이 가망 없음을 드러냈다면, 기자는 고귀했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되어 천한 일을 함으로써 조정 내부에서 주왕이 가망 없음을 지속적으로 환기하였다.
그가 주왕에게 간했던 바는, 훗날 은나라를 대신한 주나라 무왕에게 올려져 왕조의 통치이념이 됐던 ‘홍범구주(洪範九疇)’란 가르침이었다. 옛적 치수의 영웅이었던 우임금이 내려준 천하를 다스리는 큰 가르침 아홉 가지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주왕은 정신 차리지 못했다. 이는 ‘문(文)’적 방식으론 더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했음을 의미했다. 그러자 비간이 자기 목숨을 선뜻 내놓았다. 사태가 무고한 피의 희생이 요청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그렇게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주왕은 주나라 무왕이 일으킨 역성혁명 끝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고, 은나라도 더불어 멸절되었다. 결국 미자와 기자, 비간은 가망 없는 왕조에 순차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었다.
이것이 시사해주는 의미는 사뭇 중대하고 심원하다. 미자는 종묘 제기를 왕실 밖으로 빼냄으로써 은나라의 정통성이 무너졌음을 알렸고, 기자는 훗날 새 왕조의 통치이념을 간직한 채 노예로 복무함으로써 은나라의 미래가 없음을 고했다. 그리고 비간은 무고한 피를 흘림으로써 왕조가 인간이기를 포기했음을 비극적으로 증명했다. 그렇게 정통성, 통치이념, 인간다움이 소멸되자 왕조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황망하게 무너졌다. 이 세 가지는 왕조가 정상적으로 존재함의, 달리 말해 공적 권력이 구성되고 온전히 작동됨의 고갱이였던 것이다.
■ 새 시대를 연다는 것
여기서 천명이라는 정통성, 홍범구주라는 통치이념, 무고한 피로 상징되는 인간다움은 각각 오늘날로 치자면 정당한 선거에 의해 구성된 권력, 민주주의적 제 가치, 근대적 인간다움에 해당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적 권력도 다름 아닌 이 세 가지를 핵질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셋이 허물어지면 공적 권력으로서 설 수도 또 작동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도 엄중함을 보여준다.
대선 과정에서의 이른바 ‘댓글 의혹’부터 최순실 일가의 권력 농단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정통성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제 민주화를 팽개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함으로써 헌법을 보란 듯이 유린했다. 국가의 최고 통치이념을 헌신짝처럼 배신했다는 말이다. 인간다움은 또 어떠한가.
절대 헷갈려선 안 될 바가 있다. 바로 지금의 촛불시위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평화시위라고 하여 아무런 희생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건 세월호로 대변되는 국가의 책임 방기, 지독한 이윤 추구와 승자독식이 빚어낸 사회적 약자의 죽음과 희생 위에 서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이래로 자행된 4대강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죽음 위에 서있다. 인간다움이 근본부터 부정당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 정부가 가망 없음을 입증해주는 필요조건이 이미 다 충족된 셈이다. 군주제 시절이면 벌써 왕조가 바뀌든지 못돼도 군주가 축출됐을 시점이다. 세 가지가 소멸됐을 때 주왕은 하늘 아래 유일무이한 최고 지존이 아니라, 맹자의 말처럼 일개 필부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권좌에서 버틸 수 있음은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이 다스리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다. 다만 평소엔 그렇게도 구박하고 일관되게 무시하던 헌법에 기댄다니, 한때 일국의 지도자였던 이로써 이보다 더 추한 경우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악이 기댈 언덕이나 되라고 헌법을 고안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는 공적 권력을 그 기초부터 새롭게 일신해야 할 시점이 됐다.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 시대를 연다는 것은 정통성, 통치이념, 인간다움을 재구성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중지를 모을 때이다.
악은 자신이 행한 대가만으로도 반드시 망해야 한다. 더는 선한 이의 희생이 더해지는 비인간적 만행이 더해져서는 안 된다. 자기 자리가 아닌 데서 버티는, 한 개인의 못남이 참으로 역겨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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