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7강(보강). <땅과 바다 : 세계사적 일고찰> ― 공간혁명과 ‘인간존재menschllche Existenz’
낡은 노모스는 물론 사라지며, 그와 동시에 기존의 척도, 규준, 관계의 체계성 전체도 없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윽고 다가올 것이 단순한 척도의 상실상태, 혹은 반-노모스적인 허무인 것은 아니다. 낡은 힘과 새로운 힘의 가혹한 싸움 속에도 또한 올바른 척도가 생겨나며, 뜻 깊은 조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신들이 있고 지배한 또 다른, 신들의 척도는 위대하다.”
<땅과 바다>
슈미트의 세계사관, 신화적 세계관 / 대지의 의미론 /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의 싸움 ― 땅과 바다의 근본적 대립 / ‘카테콘 Katechon’ ― 신화적 상상력과 세계사의 관계 / 기술․포경․해적 ― 바다라는 요소를 둘러싼 흥망사 / ‘공간혁명 Raumrevolution’ / ‘질서 Ordnung’로서의 ‘대지의 노모스 Nomos der Erde’ / 토지취득경쟁과 종교전쟁 / ‘땅’에서 ‘바다’로의 ‘기본요소’의 변동 ― 영국의 해군력과 ‘기계 Maschine’ / 공중의 시대 ―‘지구의 노모스 Nomos der Erde’의 근본적 변화 / 공간무기 / 새로운 노모스와 ‘인간존재 menschliche Existenz’ / 질의응답
슈미트의 세계사관, 신화적 세계관
<땅과 바다>는 1942년에 간행되고 54년에 재간된 책입니다. 테마로 보면, 이보다 8년 후에 출판된 <대지의 노모스>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죠. <대지의 노모스>에서는 유럽 공법 질서라는, 유럽에서 전쟁을 틀짓기 위한 법적 질서를 논하고 있는데, <땅과 바다>는 그 배경이 되는, 슈미트의 세계사관, 신화적 세계관을 이야기하듯이 그려낸 저작입니다.
슈미트는 젊었을 때 문학가를 지향한 적도 있으며, 문예평론적 작품도 몇 가지 썼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도 낭만파의 문학 이론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 이후는 문학적 재능이 전면에 나오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가, 이 작품에서 다시 문학적 감각(sense)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번역자 중 한 명인 이키마츠 케이조 씨(生松敬三, 1928-84)도 다분히 문학 취향의 독일 사상사를 전공으로 연구하신 분으로, 적어도 법사상과 정치사상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공역자인 마에노 미츠시로 씨(前野光弘,1938-)도 경력을 보면 알듯이 독일문학 분야에 속해 있습니다. 이 작품이 문학적 작품이기 때문에 문학계 인물이 번역자가 된 것이죠.
서두부터 매우 인상적입니다.
인간은 땅/육지의 생물이며, 땅/육지를 밟으며 걷는 동물이다. 인간은 직립하며, 그리고 대지 위에서 활동한다. 이것이 인간이 의거하여 서 있는 곳이며, 그 기반이다. 이것에 의해 인간은 자기의 관점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받는 다양한 인상을 규정하며, 인간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규정한다. 인간은 대지에서 태어나며 또한 대지 위에서 활동하는 생물로서, 자기의 시야[視界]뿐 아니라 그 보행이나 운동의 형식, 자기의 모양새[形姿]도 획득하는 것이다.
*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밟고 있는 존재Landtreter다. 인간은 견고하게 정초된 대지 위에 서서 걸어가고 움직이지. 그 대지가 그가 서 있는 곳Standpunkt이자 그의 토대Boden다. 그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시점을 얻으며, 이것이 그가 받는 인상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하지. 가시범위Gesichtskreis뿐만 아니라, 인간이 걷고
움직이는 형태, 그 형상Gestalt도 대지에서 태어나 대지 위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얻어진거야. (김남시 옮김, 꾸리에, 7쪽).
독일계의 사상사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생물학적 특징을 포함시켜 규정하는 ‘인간학 Anthropologie’적 논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것도 그런 유형의 말투네요. 게다가 이미지를 꽤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네요. 슈미트의 동시대의 철학적 인간학의 논의로는 현상학을 가치철학에 응용한 막스셀러(1874-1928)라든가, 나치에 가담한 것으로 악명 높은 아놀트 겔렌(1904-76) 등이 있습니다.
‘걷는다’, 즉 직립보행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시야가 확대됐다는 것은 생물학적 상식이라고 일반적으로 자주 말해집니다만, 슈미트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시계(視界)가 확대됐다는 것뿐 아니라, “사물의 시각이 확대된다”는 은유적 의미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신체성’과 그것을 에워싼 ‘환경’, 이 경우에는 ‘대지’의 관계에 의해 사물의 시각, 나아가 세계관이 규정된다는 철학적, 형이상학적 차원으로까지 범위(scale)를 확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지의 의미론
이어서 인간이 서 있고 위치하는 ‘대지’의 의미론이 전개됩니다.
지구는 거의 4분의 3이 물이며, 육지는 4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큰 육지라고 하더라도, 마치 섬처럼 물에 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혹성을 ‘지구(Erde)’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이 지구가 공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도 ‘대지의 공(*에르데발)’, ‘대지의 구(*에르데쿠겔)’라고 말한다. 만일 네가 지구를 ‘바다의 볼(*제발)’ 혹은 ‘바다의 구(*메레스쿠겔)’라고 마음속에 떠올려야 한다면, 너는 기묘한 느낌이 들 것이다.
* 그렇기에 지구 표면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있고, 땅은 4분의 1뿐이라 사실상 가장 큰 대지도 섬처럼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별을 ‘대지-지구Erde’라고 부르고 있다. 대지Erde가 구(球)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이 별을 ‘대지 공Erdball’ 또는 ‘대지구슬Erdkugel’이라 부른단다. 이런 방식으로 ‘대양 공Seeball’이나 ‘바다 구슬Meereskugel’ 같은 것을 떠올리는 건 어딘가 어색하지?
(김남시, 7쪽).
독일어 단어의 의미 분석입니다만, 요점은 알겠네요. ‘지구’를 의미하는 지구<Erde>는 원래 ‘대지’나 ‘흙’을 의미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어에서도 ‘땅[土]’이라는 글자를 사용해 ‘지구(地球)’라고 표현하며, 영어의 <Earth>도 원래는 ‘대지’,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Erde>와 어원이 같습니다. 일본어에서는 혹성[행성]을 가리킬 때 ‘지구’라는 표현을 하며, 독일어에서도 ‘지구’라는 것을 강조할 때는 <Erdball>이라고 합니다. ― [위 번역본에서] 괄호 안에 * 표시 이후에 표기된 것은 ‘에르데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Erde>의 마지막 <e>의 글자가 없어졌으니까 ‘에르트발’이라고 해야겠네요. 우리는 지구라는 ‘혹성[행성]’을 대지의 구체(球體)로 표상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 증거로 ‘바다의 볼 Seeball’ 혹은 ‘바다의 구 Meereskugel’이라고 말을 하면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는 거네요. 즉, 우리가 ‘지구’를 볼 때, 반드시 ‘대지’를 중심으로 보는 습관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가 ‘지구’를 마음속에 떠올리려고 하면, 아무래도 푸른 표면에 남북 아메리카 대륙이라든가 아시아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부각되는 것을 떠올리네요. 그 푸른 곳이 바다인 것인데, 바다는 배경이 되고 있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대지는 인간의 모태이며, 그래서 인간은 대지의 자식이다. 인간은 자신의 동포를 대지의 형제, 대지의 시민으로 간주한다. 예로부터있는 네 가지 ― 대지, 물, 불 그리고 공기 ― 중 대지는 인간을 위해 정해지고 인간을 가장 강하게 규정하는 엘레멘트이다.
* 대지가 인간의 모성적 토대mütterlicher Grund라면 인간은 대지의 아들이고, 사람들은 대지의 형제이자 대지의 시민들Erdebürger인 셈이야. 대지(흙)Erde, 물, 불, 공기라는 전승된 4원소론에서 대지(흙)가 인간에 상응하고 인간을 가장 크게 규정하는 원소인 것도 이 때문이야. (김남시, 8쪽).
‘엘레멘트 Element’란 ‘요소’라든가 ‘원소’라는 뜻이죠. 세계가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는 최근의 마술계의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계 영화에서 자주 듣습니다. 이 4원소설은 원래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0-430)가 원조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스토아학파를 거쳐, 아라비아의 과학이나 중세 후기의 연금술에 수용됩니다. 슈미트는 4원소 중 ‘흙 Erde’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셈이죠. ― ‘대지’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4원소 얘기니까 ‘흙’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좋겠죠. ‘흙’이중요한 것은 인간의 발판인 ‘대지 Erde’를 구성하는 원소이기 때문입니다.
‘흙-대지’라는 이 원소에 무슨 ‘힘’이 깃들어 있느냐고 말하면,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가 되어 버립니다만, 슈미트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까처럼 대지를 딛고 서 있는 인간의 ‘시선’에 입각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너는 어딘가에 있는 해안에 가서 눈을 들어 보기만 해도 좋다. 그리하면 이제 바다의 압도적인 평면이 너의 시계에 들어올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인데, 인간은 해변에 서면 자연스럽게 육지/땅에서 바다를 보게 되는데, 거꾸로 바다에서 육지/땅의 방향으로 눈을 향하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종종 무의식적인, 심층적인 기억에 있어서는, 물과 바다가 모든 생명의 불가사의한 근원이다. 대부분의 민족은 그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대지에서 태어난 신들이나 인간뿐 아니라, 바다에서 태어난 신들이나 인간도 등장시킨다. 이런 신화들이나 전설들은 모두, 바다의 아들, 바다의 딸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의 미를 대표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파도 거품에서 출현한 것이다.
* 해변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넓이의 바다가 너의 시선의 지평을 둘러싸고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해변가에 서 있는 인간이, 당연한 말이지만, 땅에서부터 바다를 바라보지, 바다에서 땅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지 않니?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인 인간의 기억 속에서 물과
바다는 모든 생명체의 비밀스러운 원천Urgrund인데 말이야.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와 전설에는 대지에서 태어난 신과 인간뿐 아니라, 바다에서 탄생한 신과 인간도 등장하지. 또 바다Meeres와 대양See의 아들, 딸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도 있단다. 여성적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는 파도의 거품 속에서 태어났지. (김남시, 9쪽).
당연한 겁니다만, 우리는 보통 대지에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바다는 종종 우리의 생명의 원천으로 표상되죠. 바다가 모태의 양수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있죠. 그리스 신화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죠. 거품은 정자를 연상시킵니다. 다만, 바다가 우리 생명의 원천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우리는 대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다는 근원으로 향하는 시선이 향하는 곳입니다. 시선이 향하는 끝에 있으며, 표면의 아주 일부만 볼 수 있는 바다는 우리의 기억의심층에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너 Du’를 향해 말하고 있네요. 문학적인 느낌이 듭니다. 헌사를 보면 “우리 딸 아니마에게 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슈미트의 딸은 아니마(1931-83)라는 이름입니다만, ‘아니마 anima’는 라틴어로 ‘혼’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우리 자신의 ‘혼’에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효과도 생각해, 딸에게 얘기를 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슈미트는 신비주의 사상과 신화의 이미지를 동원하면서,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의 ‘대지’나 ‘바다’가 차지하는 위치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세계사의 흐름과 결부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베헤모스]의 싸움 : 육지/땅과 바다의 근원적 대립
12頁에서 현대의 진화론적 과학의 성과로, 우리가 바다 생물의 자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그리고 이것과 대응하는 듯이 자기 인식을 갖고 있는 민족이 있다는 인류학적 논의로 이동해 갑니다.
남해의 섬들, 카나카족이나 사보이오리족 같은 폴리네시아의 항해자들 중에서는 또한 이런 어족적(魚族的) 인간의 마지막 후예를 인식할 수 있다. 이들의 모든 생활, 이들의 관념 세계 및 언어는 바다에 연관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대지에서 획득된 우리의 공간과 시간에 관한 관념은 무관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꾸로 우리 땅/육지의 인간에게는 저 순수한 바다의 인간의 세계를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인 것과 거의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엘레멘트는 무엇인가, 우리는 대지의 아이인가, 아니면 바다의 아이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양자택일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고의 신화도, 현대의 자연과학의 가설도, 그리고 또한 원초적인 역사의 연구성과도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 남태평양 섬들과 폴리네시아의 해양민족들, 카낙Kanak과 사우Sawu 섬의 토착민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런 어류인간Fischmenschen의 종족이라고들 말하지. 그들이 사는 방식, 그들이 떠올리는 세계, 그들의 언어는 전부 바다와 관계되어 있어. 견고한 땅에서 얻어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표상들이 그들에게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땅의 인간들Landmenschen에게 저 순수한 대양인간Seemenschen의 세계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다름아니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겨나겠지? 우리를 구성하는 원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땅의 자식들일까, 아니면 대양의 자식들일까? 이 질문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간단히 대답될 수는 없단다. 오래된 신화들, 근대의 자연과학적 가설들, 선사시대에 대한 연구결과들 모두가 그 두 가능성을 다 열어넣고 있기 때문이야. (김남시, 11-12쪽).
우리는 어족(魚族)의 후손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고, 바다를 중심으로 한 언어·관념 체계를 갖고 있는 민족도 있다는 것이네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속하는 원소가 ‘땅=대지’인지 ‘물=바다’인지 모르게 되네요. 이 ‘대지’와 ‘바다’의 경합을 통해 인류사가 전개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인 테마입니다.
17頁부터 시작되는 3장 이후에서는, 이런 신화적·세계적인 이미지가 구체적인 세계사에 겹쳐집니다. 신화적 상상력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거네요. 이 부근은 낭만파에 가까운 발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세계사는 육지의 나라에 대한 바다의 나라의 싸움, 바다의 나라에 대한 육지의 나라의 싸움의 역사이다. 프랑스의 군사전문가였던 카스텍스 제독(1878-?)은 자신이 쓴 전술서에 <땅 대 바다 La MerContre Terre>라는 포괄적인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것에 의해 커다란 이야기의 전통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육지/땅와 바다의 근원적 대립은 고래로부터 알려진 것인데, 19세기의 끝 무렵에도 여전히, 당시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 있었던 긴장상태를 곰과 고래의 싸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기를 끌었다.
*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 프랑스의 군사학 전문가인 카스테스 제독Raoul Castex은 자신의 전술론에 <땅에 대항하는 바다la Mercontre la Terre>라는 제목을 부쳤고, 이 책을 통해 후세에 크게 이름을 떨쳤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땅과 바다의 원소적 대립을 알아차리고 있었는데, 19세기 말까지도 당시 러시아와 영국 간의 긴장을 ‘곰과 고래의 투쟁’이라고 지칭하곤 했어. (김남시, 17쪽).
세세한 것을 말해두면, ‘전술서’의 원어는 <sein strategisches Buch>이기에 ‘전략서’로 번역해야죠. ‘전술’은 개별 전투의 전개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고, ‘전략’은 더 대국적(大局的)인 투쟁방식을 가리킵니다. ‘전술핵/전략핵’이라고 말할 때는, 약간 간극이 있어서, 소규모/대규모라는 의미 부여가 되네요. 라울 카스텍스 (Raoul Castex, 1878-1968) 제독은 제1차 대전후 프랑스 해군의 재조직화를 담당한 군사이론가로, 프랑스에서 지정학의 원조로 간주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해전과 육지전을 결합한 전략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라시아에서 육지를 따라 세력을 계속 확대하던 러시아와 세계 각지의 해외 식민지를 연결하는형태로 세력을 확대하는 영국의 대립을 육지=곰과 바다=고래의 대립으로보는 것은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러일전쟁(1904-05)도 그런 커다란 세계사적 대립도식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고래는 여기서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고기, 바다 짐승인 리바이어던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는 나중에 조금 더 언급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곰이란 육서동물(陸棲動物)의 수많은 상징적 대표자 중 하나이다. 이른바 카발라 학자[카발라는 유대교 신비주의로 중세 독일, 스페인에서 성행했다]들의 중세적 해석에 따르면, 세계사는 거대한 고래, 리바이어던과, 마찬가지로 강대한 육지/땅의 야수로 수소 또는 코끼리라고 생각된 비히모스 사이의 싸움이다.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라는 두 개의 이름은 <욥기>(40장, 41장)에서 유래한다. 카발라학자들이 말하는 바에서는, 비히모스는 그 뿔이나 이빨로 리바이어던을 찢어버리려 하지만, 이에 대해 리바이어던은 그 지느러미로 상대인 육서동물의 입이나 코를 덮고 먹이를 먹거나 호흡을 할 수 없게 하려 한다. 이것은 해국(海國)이 육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군량미를 공격하여 육지국을 봉쇄하는 것의 묘사이며, 신화적 이미지로만 가능한 생생한 묘사이다.
* 여기에 등장하는 고래는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물고기이자,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게 될 리바이어던이고, 곰은 땅의 동물을 대표하는 상징적 대변자 중 하나지. 중세 시절 카발리스트들의 해석에 리바이어던 vs 비히모스 ‘바다의 나라’ ⇔ ‘육지의 나라’
따르면, 세계사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힘센 고래와 그만큼이나 강한 땅의 동물로 코끼리 아니면 황소로 상상되던 베헤모스 사이의 투쟁이라는구나.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는 <욥기>(40장과 41장)에 나오는 이름이야. 카발리스트들이 말하기를, 뿔이나 이빨로 리바이어던을 찢어 죽이려는 베헤모스에 맞서 리바이어던은 거대한 꼬리로 베헤모스의 입과 코를 막아서 먹거나 숨 쉬지 못하게 했다는구나. 육지로의 보급로를 차단해 굶게 만드는, 육지의 힘을 봉쇄하는바다의 힘을 신비주의적 이미지답게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
(김남시, 17-19쪽)
구약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의 싸움을 ‘육지/땅의 나라’와 ‘바다의 나라’의 싸움으로서 신화적으로 독해하려는 것입니다. 참고로 욥기 자체에는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에 관해 그렇게 구체적인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여기서 슈미트가 쓰고 있듯이, 카발라학자들에 의한 해석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서술로부터 알 수있는 것은, 비히모스는 소처럼 풀을 뜯고, 강의 주변에 있는 동물, 리바이어던 쪽은 그 강 속에서 서식하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영일사전이나 독일사전을 보면, 리바이어던은 고래 혹은 뱀, 용, 악어 등 다양하게 해석되어 있으며, 비히모스는 하마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홉스는 국가의 생성에 관한 저작 <리바이어던>을 썼습니다.
그에게는 잉글랜드 내전에 관해 논한 <비히모스 Behemoth>(1668)라는 저작도 있습니다. 슈미트 자신도 1938년에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것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한다기보다는 ‘리바이어던=국가’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수용되고 그것이 법학, 국가학에 주었던 영향을 논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방법론적으로 슈미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간주되는, 프란츠 노이만(1900-54)이라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가까운, 좌파 법학자·정치학자가 나치즘의 국가 체제를 분석한 <비히모스>(1942, 44)라는 책을, 망명지인 미국에서 출판했습니다. 노이만은 유대계입니다.
비히모스가 하마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수서동물(水棲動物)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슈미트가 카발라의 견해를 인용해서 비히모스를 육서동물(陸棲動物)로 간주하고, 수서(水棲)의 리바이어던과 대치하고, 그것을 ‘육지/땅 vs 바다’의 대립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거네요. 리바이어던에 의한 비히모스 공격을, 해군력을 이용한 적국의 경제 봉쇄의 상징으로 묘사하는 대목이재미있네요.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카발라에 바탕을 두고, 이 도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저작이 쓰여진 시기는, 슈미트는 나치의 주류에서 소원해지고, 현실적인(actual) 정치문제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제2차 대전 중입니다. 유대적인 것에 관해 말하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그것을 알고서 카발라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니까, 슈미트는 원래 이쪽 방면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는 홉스의 저작을 통해 ‘국가’라는 정체모를 괴물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유포되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이 두 마리는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의 ‘욥기’에서 유래합니다. 사탄의 시련을 받고 시달리는 욥의 인생은 예수의 그것의 원형으로 간주됩니다. 기독교 자체가 유대교를 모태로 하고 있기에 당연합니다만, 기독교 문화권에서의 ‘국가’의이미지는 상당 부분, 유대교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고대의 해양국가인 크레타와 아테네, 로마, 카르타고 등, 우리도 세계사의 교과서에서 잘 알고 있는 고대의 역사를 ‘땅과 육지’의 싸움이라 는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확실히 고대 문명의 흥망성쇠의 상당 부분은 ‘땅과 육지’의 싸움으로 볼 수 있죠. 트로이 전쟁이나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포에니 전쟁 등은 역사책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군요.
‘카테콘 Katechon’ ― 신화적 상상력과 세계사의 관계
21頁에, 오오다케 코우지 씨(大竹弘二) 등이 슈미트의 중요 개념이라며 강조하고 있는 ‘카테콘 Katechon’이 나옵니다. 동로마황제를 ‘카테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네요. 역주에 나오고 있듯이, 그리스어로 ‘제지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막는가 하면,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신약성서?의 「데살로니아인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등장 때까지 ‘제지하는 자(카테콘)’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대지의 노모스>에서 슈미트는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카테콘’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기대됐다고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악의 힘이 세계를 뒤덮지 않도록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화제가 되는 동로마제국의 황제의 경우는, 이슬람에 의해 기독교 세계가 정복되지 않도록 제지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 왔다는 것이네요.
<정치적 낭만주의>나 <정치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나쁜 것이며, 악으로 흘러드니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만, ‘카테콘’론도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카테콘’의 역할을 맡았던 동로마제국은 서서히 이슬람에게 밀리며 쇠퇴하고, 1453년에 멸망합니다만, 그 역할을 계승한 자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새로운 신화적인 이름이 커다란 세계사 속에 들어온다. 거의 500년 가까이 베네치아 공화국은 해양지배의 상징, 해상무역을 기초로 구축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또한 고도의 정치적인 빛나는 성과인 동시에, ‘모든 시대의 경제사의 가장 특이한 산물’로 간주됐다.
* [십자군 원정을 거쳐 부상해서 기독교-유럽 지역에 하나의 새로운 대양 권력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이 베네치아란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신화적인 이름이 세계 역사의 웅대한 무대에 진출하게 돼. 베네치아 공화국은 거의 500여년 간 바다의 지배를 상징하며 대양 무역에 기초한 재력으로 고도의 정책적 요건을 자춘 모든 시대의 경제사를 통틀어 가장 진귀한 창조물의 독보적인 개가로 여겨졌단다.(김남시, 22-23쪽).
현대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는 베네치아=베니스를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관광지로 밖에는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 도시는 중세 후기부터 근대 초기까지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당초 동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만, 유럽과 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가 되며, 십자군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영국 숭배자들이 영국에 대해 찬미했던 모든 것은 이미 그것 이전에 베나치아에 대해서 찬미되었더 것이다. 즉 ― 거대한 부, 이 해양국이 육지국 사이의 대립을 교묘히 이용하고 자신들의 전쟁을 다른 나라에서 행하게 하는 요령을 터득했던 탁월한 외교수완, 국내에서의 정치질서의 문제를 해결한 듯 보이는 귀족주의적 헌법, 다양한 종교적·철학적 의견에 대한 관용, 자유로운 이념과 정치망명의 피난처 등. 심지어 현란한 축제와 예술미의 수상한 매력이 이것에 가세한다. 이런 축제들 중 하나는 특히 인간의 판타지를 북돋고, 베네치아의 명성을 널리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 그것은 낡은 전설에 포함된 ‘바다와의 약혼’, 이른바sposalizio del mare[바다의 결혼식]이다.
* 열렬한 영국 찬미자가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영국에 대해 떠벌리는 모든 찬사들은 이미 베네치아에 대해 행해진 것들이지. 거대한 재력, 대양 권력으로서 땅의 권력들 사이의 대립을 이용해 그들의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줄 알았던 외교적 우월성, 내부정치 질서의 문제를 해결해낸 귀족 정치적 법질서, 종교적∙정치적
으로 다른 견해들에 대한 관용, 자유로운 이념과 정치적 망명의 보호처, 거기에다 화려한 축제들과 예술적 아름다움이 주는 매혹적인 매력까지. 이 축제 중 특히 인간의 판타지를 불러내고 전 세계에베네치아의 명성을 떨치는 데 기여한 것이 저 전설적인 ‘바다와의 약혼Verlobung mit dem Meer’이었어. 이탈리아어로는 ‘Lospozalizio del mare’라고 불렸지. (김남시, 23쪽).
베네치아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탁월한 ‘정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판타지, 특히 인류와 바다의 신화적 연계를 상기시키는 축제와 예술이 있었다는 거네요. 바다를 둘러싼 신화적 상상력과 ‘카테콘’을 둘러싼 종말론적 상상력이 서력(西曆) 1000년부터 1500년에 걸친 베네치아의 발전의 배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19세기, 20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수많은 여행자와 유럽속의 몽상가들 ―바이런, 뮈세, 리하르트 바그너, 바레스 같은 시임, 예술가들 ― 을 베네치아로 끌어들인 하나의 전설이 생겨났다.
* 그 전설은 그때부터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도 전 유럽 국가들의 수많은 여행자와 유명한 낭만주의자들 ― 바이런, 뮈세, 바그너, 바레스 ― 을 베네치아로 끌어들였지. (김남시, 25쪽)
베네치아를 둘러싼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하면, 곧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생각납니다만,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거네요. 토마스 만(1875-1955)의 <베니스에서 죽다>(1912)도 영화화됐으며 유명하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베네치아를 포함해 영국에서 오랫동안 체류했다는 것,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참여했다는 것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베니스에서 In Venice>(1816)이라는 시나, 베네치아의 최고집정관인 마리노 팔리에로(Marino Faliero, 1285-1355)를 주인공으로 한 <마리노 팔리에로>라는 시극을 썼습니다. 뮈세(Alfred de Musset, 1810-57)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베니스의 밤>(1830)이라는 극이 있습니다.
바그너(1813-83)는 창작활동을 위해 종종 베네치아를 방문했고,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모리스 바레스(Maurice Barrès, 1862-1923)는 프랑스의 반유대주의·민족주의의 소설가로, ?베니스의 죽음?(1903)이라는 여행기가 있습니다.
기술·포경·해적 : 바다라는 요소를 둘러싼 흥망사
4장부터 5장까지, 바다라는 요소를 지배하는 지위가 베네치아에서 스페인,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가는 경위가 말해지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해군은 아직 로마와 마찬가지로 갤리선을 써서 함판 위에서의 접근전을 축으로 싸웠습니다. 스페인과 베네치아가 오스만 투르크와 싸운 레판토 해전(1571) 무렵까지는 그런 싸움 방식이 주류였던 것인데요, 이로부터 187년 후, 영국 해군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해전 무렵부터 조선 기술의 진보에 따라 해전의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기술되어 있군요. 그런 기술의 진보를 이룩한 공로자로서 네덜란드인이 추앙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인의 뛰어난 점으로 조선(造船)과 포경이 꼽히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포경이라고 하면 [포경반대단체인] 시셰퍼드(sea shepherd) 정도만 떠올립니다만, 17세기 후반까지 포경은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페리(1794-1858)가 일본에 내항(來航)한 중요한 목적 중 하나로, 포경선을 위한 보급 기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있었다는 것은 일본사 수업에서 배우죠. 태고부터 포경을 하는 이들은 리바이어던=고래를 쫓고, 바다라는 요소와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이네요. 포경꾼들은 최대의 어부였던 거네요. 그런 바다의 영웅 이야기로서 멜빌(1819-91)의 <모비딕(백경) Moby Dick>(1851)이 자리잡고 있네요. 이것은 증기선이나 대포 출현에 의해 포경의 방식이 크게 전환하고 있던 시대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6장에서는 새로운 바다의 영웅인 네덜란드에 대해 기술되어 있습니다. 신화적 상상력과 세계사의 관계에 ‘기술’이라는 요소가 새로 결부되는 것입니다.
1595년, 북네덜란드, 서프리슬란드의 마을 호른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배가 등장한다. 그것은 가로 돛을 한 보트로, 낡은 범선처럼 그저 순풍을 받아 달린다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바람을 옆에서 받아 항해하고, 기존의 돛과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삭구[索具; 배에서 쓰는 밧줄의 종류]와 항해기술은 이제 그동안은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으로 완성된다. ‘중세의 항해술은 끔찍하게 붕괴한다’고 배 모양의 발전사 연구가인 베른하르트 하겐드른은 이 사건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땅/육지와 바다의 관계의 역사에 있어서의 진정한 전환점이다. 대체로 당시에는 선체와 삭구 장비가 만들어졌던 재료에 관해서는, 그것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극점까지가 달성되었다.
* 1595년경 북네덜란드의 서(西)프리트란트westfriesische 도시 호른Hoorn 외곽에서 횡범(橫軓)Rahsegel을 단 새로운 유형의 선박이 등장해. 횡범은 뒤에서 부는 바람만으로 작동하던 이전의 돛과는 달리 옆에서 부는 바람으로도 항해를 가능하게 한 돛으로,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람을 이용할 수 있게 했어. 그 이후로 삭구(索具)Takelage와 항해기술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개선되었지. 선박 유형의 발전사를 기술한 역사가 베른하르트 하게도른Bernhard Hagendorn은 이를 “중세 항해 방식이 파국적으로 붕괴한 사건”이라고 말해. 땅과 바다의 관계에서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생겨난 것이지. 배와 삭구에 재료Material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때 전반적으로 완성되었어.(김남시, 44쪽).
단순히 기술적인 변화가 기술되어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요점은 그때까지 단순히 ‘바람’을 받아 달릴 뿐인 수동적인 상태로부터, 바람을 더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바다의 아들’들이 이행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바다에서의 행동 방식, 그리고 해전의 방식이 크게 변화하게 되는 셈입니다. 하겐도른(1882-1914)은 독일의 역사가·경제사가로, 박사논문의 제목이 <16세기의 동프리슬란드에서의 교역과 항해>(1908)입니다.
16세기에는 더 새로운 형태의 전쟁선이 등장하고, 이것과 더불어 새로운 해전의 시대가 시작된다. 화기를 적재한 함선은 측면에 대포를 달고, 이로부터 탄환을 적을 향해 발사한다. 해전은 이것에 의해 큰 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공격전이 되는데, 이것은 고도의 항해 기술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진정한 해전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이미 봤듯이 노로 젓는 갤리선 선원에 의한 싸움은 배 위에서의 육지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 또 16세기에는 새로운 군함이 등장, 해전에서 또 다른 단계가 시작돼. 포를 장착한 범선이 측면에 화포를 설치해 적을 향해 측면에 서 포탄을 퍼붓는 거지. 이로써 해전은 고도의 항해술과 결부된 원거리 대포-교전Artilleriekampf이 되지, 앞서 말했듯이 노를 저어 이동하는 갈레선 선원들의 전투가 선원들 사이의 ‘승선한’ 육지전이
었던 데 반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해전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등장하게 된 셈이야. (김남시, 46쪽)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갤리선을 사용한 로마나 베네치아의 ‘해전’에서는 상대방의 배와의 사이에 함판을 깔고 건너가서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육탄전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 주류였습니다만, 16세기부터 대포를 사용한 전투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육지 위에서도 대포를 사용합니다만, 대포의 위치는 대체로 고정되어 있는 반면, 해전이라면 배를 움직이며 포격을 하고 그것이 전투의 주류(main)가 됩니다.
7장에서는 역사책에도 나오는, 원래 해군은 해적이었다고 하는, 이것도 또한 세계사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들은 얘기가 나옵니다.
모든 종류의 바다의 거품의 아들, 즉 해적들(Pirat, Korsar)과 해상무역을 하는 모험가들은 포경꾼이나 범선 항해자들과 더불어, 16·17세기에 완성된 바다의 엘레먼트로의 결정적인 전향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 여기서 더 폭넓게, 대담한 ‘바다의 아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는 프란시스 드레이크, 호킨스, 써 월터 롤리, 혹은 써 헨리모간 같은 유명한 이름, 해양과 해적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있다.
* 고래 사냥꾼과 범선 항해사와 더불어 해적, 사략선원, 해상무역 모험가 등 온갖 부류의 대양 주름잡이들은 16세기와 17세기에 결실을 맺은 바다를 향한 원소적 전환의 여명을 알리는 무리들이야.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무모한 유형의 “대양의 자식들”을 다룰 거야.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름들, 즉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 호킨스John Hawkins,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 헨리 모건경Sir Henry Morgan처럼 여러 책에서 바다와 해적에 관한 전설에등장하는 영웅들 말이야. (김남시, 50-51쪽).
<Korsar>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방에서 활동한 해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1540-96)는 해적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영국 출신의 해적으로,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만, 영국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아르마다 해전의 부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프랜시스 호킨스(FrancisHawkins, 1532-96)는 드레이크의 사촌 형으로, 카리브해의 노예무역에 종사하고, 아르마다 해전의 사령관이었습니다. 월터 롤리(Sir Walter Raleigh, 1554경-1618)는 해적이라기보다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신(寵臣, 사랑받는 신하), 탐험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북아프리카 대륙을 탐사하고 최초의 식민지를 구축했습니다. 헨리 모건(Henry Morgan, 1635-88)도 카리브해에서 활동한 해적으로, 자메이카 총독을 역임했습니다. 해양국가로서의 영국은 해적들의 힘에 의해 발전한 것입니다. 최근, 미네르바책방(ミネルヴァ書房)에서 영문학자인 사쿠라이 쇼이치로 씨(櫻井正一郎, 1936-)가 쓴 <여왕 폐하는 해적이었다>(2012)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네요.
…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는(1588년)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이른바 엘리자베스의 해적들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적의 뒤를 잇는 것은 제임스 1세의 해적들로, 이들 중에는 더 헨리 메인워링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최초의 가장 악질적인 해적 중 한 명이었는데, 이윽고 1616년 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마지막에는 해적 토
벌에 활약하고 많은 관직과 명예를 수여받았다. 이어서 자메이카와 카리브해에서 출발해, 대형 편대를 짜서 날뛰던 서인도제도의 해적(Flibustiers, Buccaneers)들이 있다.
* 1588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Armada를 파멸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른바 엘리자베스의 사략선원들도 있었어.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략선원들의 뒤를 이은 것이 제임스 1세의 사략선원들인데, 그중에는 처음에는 악명높은 해적이었다가 1616년왕에게 사면을 받은 후 관직과 명예를 얻어 해적 소탕자가 된 헨리
메인워링 경Sir Henry Mainwaring 같은 사람도 있지. 그 뒤를 이어 자메이카와 서인도제도에 기지를 두고 광범위한 습격을 계속한 프랑스인들, 네덜란드인들, 영국인들로 이루어진 플리뷔스티에Flibustiers와 거친 버커니어Buccaneers들이 있는데 … (김남시,52쪽). [플리뷔스티에와 버커니어 : 16~18세기에 카리브 해와 라틴아메리카 연안의 에스파냐 식민지 미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한 해적들을 일컫는 말. Flibustiers는 ‘해적’이라는 뜻이고, Buccaneers는‘부랑자’라는 뜻이다.]
제임스 1세(1566-1625)는 엘리자베스 1세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왕에서 잉글랜드왕이 된 인물입니다. 헨리 메인워링(Henry Mainwaring, 1587-1653)은 원래 법률가였습니다만, 뉴펀들랜드(Newfoundland)에서 해적 토벌의 임무를 맡은 군인입니다만, 자신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배에 대한 해적행위에 종사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말해지는 사면을 받고 나서 다시 영국 해군을 위해 일하게 되며, 외교관과 국회의원도 지냈습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 (2003-2011)에서 활약한 해적은 ‘플리뷔스티에’ 혹은 ‘버커니어’였습니다.
바다의 악령이 된 해적 데이비 존슨이 동인도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원래 해적은 반관적(半官的) 존재입니다. 해적들이 바다의 시대를 개척했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적으로 과장된 얘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해적은 위트레흐트 평화조약 이후, 세계사의 구석으로 내던져졌다. 18세기가 되자 해적은 단순한 불량배, 가장 조야한 범죄적 인종에 지나지 않게 되며, 스티븐슨의 <보물섬Treasure Island>(1883년) 같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될 수 있어도, 더 이상 역사적 역할을 맡는 존재는
아니었다.
* 하지만 위트레흐트조약 이래로 결국 해적은 세계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돼. 18세기에 해적은 야생의 존재, 범죄자에 지나지 않게 됐어. 비록 가끔, 해적은 여전히 스티븐슨Robert LouisStevenson의 <보물섬>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영웅일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아무런 역사적 역할도 수행하지 않게 되지. (김남시,54쪽).
위트레흐트 조약(1713)은 스페인 계승전쟁과, 이것과 관련되어 북미에서 전개된 앤 여왕 전쟁의 평화조약입니다. 스페인 계승전쟁이란 스페인의 국왕자리를 놓고 스페인·합스부르크가와 인척관계에 있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싸워서 프랑스가 이기고 스페인을 지배하게 된 것에 맞서, 프랑스의 영향력 확대를 두려워 한 영국과 네덜란드가 오스트리아 쪽에 붙어서 싸운 전쟁입니다.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영국은 스페인의 노예무역에 참가할 권리를 획득하며, 프랑스로부터 뉴펀들랜드를 할양받습니다. 북미에서의 영국의 우위가 확정적으로 된 것으로, 정규군이 아닌 해적은 점점 불필요한 것이 되어 간 것입니다.
스티븐슨(1850-94)의 <보물섬> 스토리는 18세기 중반의 카리브해의 섬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만, 해적이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고 어둠의 존재가 되기 시작한 시대의 얘기네요.
49頁부터 50頁까지, 16·17세기의 ‘코르사르 Korsar’라 불린 집단은 ―‘피레이트(파이렛트) Pirat’와는 달리 ― 국왕으로부터 ‘적선 나포 면허장Kaperbrief’를 부여받고, 국기를 거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얘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지의 노모스>에서는 이 언저리의 것이 전쟁과의 관계에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육지의 전투에서는 서로의 영지[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주(main)가 되지만, 해상의 전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해상에서 제해권을 쥐었다고 해도, 바다는 육지 같은 형태로는 지켜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상대가 쓰고 있는 배를 나포하고, 거기에 올라타고 약탈품을 빼앗습니다. 그것에 의해 육지로의 보급을 끊습니다. 근대적인 기술을 갖추고, 조직화된 해군이 등장할 때까지, 해적과도 같은 전투방식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장에서는 영국이 바다의 백성[民]으로서 성공을 거두고 해적이 맡은 역할에 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해적 행위가 여왕을 비롯한 국민 전체가 종사하던 사업이라고 기술되어 있군요. 53頁을 참조하십시오.
몇 백, 몇 천이라는 영국인 남녀가 당시 ‘해적 자본가(corsairscapitalists)가 됐다. 이것도 또한 우리가 말하는 육지의 엘레먼트에서 바다의 엘레먼트로의 결정적인 전회의 하나이다.
*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영국인들이 당시 ‘사략선-자본가corsais capitalists’가 되었지. 이것도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주제인 땅에서 바다로의 원소적 전환에 속한단다. (김남시, 59쪽).
‘해적’이라고 하면 우리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산출하지 못하고 타인의 생산물을 폭력적으로 약탈하여 생활하는 기생충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러 해외의 물건을 나라에 가져다주는 자본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약탈만 한 게 아니라 무역도 한 것입니다. 그러한 해적 자본가의 예로서, 킬리그류Killigrew 집안라는 유명한 일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일가는 ‘약탈 자본주의 Beutekapitalismus’ 시대의 ‘진정한 엘리트’라고 말하고 있군요.
킬리그류가(家)는 콘월(남서 잉글랜드)의 아워낙에 거처를 정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가장은 콘월의 부제독, 벤드니스 캐슬의 세습에 의한 왕실 지사(知事)를 보던 더 존 킬리그류였다. 그는 윌리엄 세실이나 여왕의 총리대신이었던 로든 바레이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일했다. 부제독이자 지사였던 이 킬리그류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이제 해적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역사가들이 신뢰할 만한 사실로서 우리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조차도 해적 행위 때문에 소송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 일족의 어떤 자는 영국의 해안에서, 어떤 자는 아일랜드에서, 또 많은 사촌 형제들과 친척들은 데본이나 드세트의 해안에서 각각 활동했다.
* 킬리그류 집안의 본가는 콘월 주의 아르위낙Arwenack이야.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절 가계의 수장은 존 킬리그류JohnKilligrew 경으로, 그는 펜더니스 성Pendennis Castle의 세습 왕립총독이자 콘월의 해군 중장이었지. 그는 여왕의 국무장관이자 훗날벌리 경Lord Burghley이라는 작위를 받은 윌리엄 세실WilliamCecil과 긴밀한 협조하에 일을 하고 있었어. 이 해군 중장 겸 총독의 아버지와 삼촌은 해적이었는데, 믿을만한 역사적 전언에 따르면, 그의 모친 역시 해적질 때문에 법적 마찰을 겪었다는구나. 이 가계의 일부는 영국 해안에서, 다른 일부는 아일랜드에서 왕성한 활동을한 반면, 여러 무일푼의 사촌들과 더 먼 친척들은 데번Devon과 도싯Dorset 해안에서 계략을 펼쳤어. (김남시, 60-61쪽).
‘밴드니스 캐슬’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조금 잘못 읽은 것입니다. <Pendennis Castle>이라는 철자이기에, ‘팬데니스 캐슬’이라고 표기해야죠. 이것은 콘웰 지방의 해안가에 있는 성입니다. ‘세습에 의한 왕실지사’라는 것은 세습에 의해 왕의 대리로 이 성에 상주하고 통치의 책임을 짊어진 직이라는 것입니다. 존 킬리그류(?-1584)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섬기고 해적과 밀무역상 등의 관계를 관할하는 직책을 맡은 인물입니다. 윌리엄 세실(1520-98)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섬긴 정치가입니다. “윌리엄 세실이나 여왕의 총리대신이었던 로드 바레이”라고 표기되어 있기에,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오역으로, 로드 버레이(Lord Burleigh)라는 것은 세실의 작위명입니다. 그의 작위는 남작(Baron)이므로, 버레이 남작(Baron Burleigh)이라고도 불립니다. 작위명은 성이 아니라 영지로 표시합니다. 또한 현재와 같은 내각 제도는 없고, 세실의 지위는 <Secretary of State>이었기에, 총리대신이라는 표현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왕의 재상으로, 버레이 경이었던 윌리엄 세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죠.
55頁에서 킬리그류 부인, 즉 콘월의 부제독이 된 존 킬리그류 ―\ 부친도 존 킬리그류라는 이름이어서 헷갈립니다 ―\ 의 어머니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엘리자베스 트레비나드エリザべス•トレウィナー(1525 이전-82 이후)라고도 불리는 인물로, 남편의 사후에 해적행위를 지휘한 혐의로 체포되고,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사면되었습니다.
그녀와 같은 존재를 형용하기 위해 ‘젠틀맨 해적 Gentlems pirate’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의 ‘젠틀맨’이란 단순히 ‘신사’라는 뜻이 아니라, 귀족과 젠트리(지주)에, 고급관리, 의사, 군인, 금융 등의 중산계급 상층을 보탠 명망가층을 가리킵니다. 산업혁명의 계기가 됐던 인클로저(둘러쌈)를 행했던 것은 젠트리들입니다. 최근의 영국사 연구에서는 젠틀맨의 일부가 19세기 중반 이후 금융서비스에 진출한 것이 영국에서의 금융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젠틀맨 자본주의”론이 제창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얘기는 이것보다 훨씬 이전에, 해적이라는형태로, 자본주의의 형성에 기여한 젠틀맨이 있었다는 거네요. ‘젠틀맨’과 ‘해적’이라는 일견 대립하는 듯한 이미지를 겸비하는 존재가 영국의 해외전개의 원점에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네요.
‘공간혁명 Raumrevolution’
9장에서는 바다의 엘레먼트로의 진출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후진국이었던 영국이 프랑스, 네덜란드를 제치고 해양국가가 된 배경으로서, 전 세계적인‘공간 혁명 Raumrevolution’이 있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10장에서는 이 혁명의 기반에 있는, 인간의 공간의식에 대해 언급되고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공간’에 대해서 어떤 일정한 의식을 갖고 있지만, 이것은 큰 역사적 변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생활형태에는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다양한 공간이 대응한다. 동시대에서조차도 매일의 생활의 실천의 장면에서는 개개의 인간의 환경은 그들의 다양한 직업에 의해 이미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다. 대도시의 인간은 농부와는 다른 식으로 세계를 생각한다. 포경꾼은 오페라 가수와는 다른 생활공간을 갖고 있으며, 또한 비행가에게 세계와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는 별개의 빛 속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다른 크기, 깊이, 그리고 다른 지평에서 나타난다.
* 인간은 자신의 ‘공간’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의식은 거대한 역사적 변화들에 종속되어 있지. 수많은 존재형식에 상응하는 만큼이나 다양한 공간들이 있어. 같은 시대 속에서도 일상적인 삶의 실천들을 위한 각자의 환경세계는 이미 그들의 다양한 직업에 따라 서로 다르게 규정되지.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농부와는 다른 세계상을 가지고 있고, 고래 사냥꾼은 오페라 가수와는 다른 삶의 공간을 가지며, 비행기 조종사에게 세계와 삶은 다르게 보일분 아니라 차원과 깊이, 지평도 다를 수밖에 없지. [그러니 서로 다른 민족들,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공간에 대한표상의 차이는 그만큼 더 깊고 클 수박에 없지 않겠니.] (김남시, 70-71쪽).
이것은 1장에서 언급된 신체성에 관한 이야기군요. 각자가 살고 노동하고 있는 환경에 의해서, 눈을 돌리는 방향, 시야가 달라집니다. 그것에 따라 공간, 세계에 대한 의식의 존재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변화한 공간, 세계에 의해서 행동방식이 변화합니다. 그 행동의 변화가 … 라는 변증법적상호작용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공간’상의 변화야말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천의 핵심이라고 말하기조차 하네요.
11장에서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의 원정, 로마제국의 수립, 십자군에 의해 초래된 공간상의 변화에 대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 인류사에서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공간혁명’으로서 대항해시대에서의 신대륙의 발견이나 세계일주항해와, 그 배경에 있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관계에 관해 논의되고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논증한 최초의 인물이다. 천체 궤도의 회전에 관한 그의 저작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1543년에 출판됐다. 이것에 의해 그는 분명 우리의 태양계를 바꾸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는 우주 전체, 코스모스가 한정된 공간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고집했다.
*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학문적으로 증명했다는 건 알고 있지? 천체 궤도의 회전에 관한 그의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1543년에 발표되었어. 이 책을 통해 그가 우리의 태양계를 변형시키기는 했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아직 공간, 그러니까 우주에 경계가 있다고 믿었어. [우주적 의미에서의 세계와 공간 개념 자체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지.] (김남시, 82쪽).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지동설을 주창한 사람이라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책 제목이 되는 ‘회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revolutio>는 이윽고 ‘혁명’의 의미로도 사용되게 됩니다. 철학사에서 ‘혁명’의 원뜻이 ‘회전’이라는 것의 의미가 자주 거론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천체의 ‘회전’에 관한 이론이 정치체제를 ‘혁명’하는 이론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revolution> 개념 사이에 대상 중심의 인식론에서 주체 중심의 인식론으로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빗댄 칸트의 논의를 집어넣어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 겁니다.
인용문에 있듯이, 코페르니쿠스는 우주를 닫힌 유한한 공간으로 표상했습니다만, 코페르니쿠스를 옹호한 이탈리아의 수도사 조르다 브루노(1548-1600)는 그의 신비주의적인 우주론에서 우주가 무한하다고 주장하고, 이것이 갈릴레오(1564-1642)나 케플러(1571-1630)의 연구에 의해 실증되었다고 적혀 있네요. 74頁에 “인간은 이리하여 이제 공허한 공간(einleerer Raum)이라는 것을 표상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사람들은 비어있는 공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어, 김남시, 83쪽]”고 기술되어 있네요. 지금까지 인간은 ‘진공의 공포 horror vacui’를 느낀 것
이지만, ‘회전=혁명’의 결과, 그것을 잊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고 말한 것이나, 파스칼이 “이 무한의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공포에 떨게 한다 Le silence éternel de ces espacesinfinis m’effraie”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죠. 반면 18세기의 계몽주의자인 볼테르(1694-1778)는 그런 감각을 비웃었다고 하죠.
무한의 공허한 공간이라는 관념 속에 포함된 이러한 변혁은, 기존의 지구가 단지 지리학적으로 확대된 결과라고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변혁은 참으로 근본적, 혁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꾸로 신대륙의 발견은 지구 일주 항해 등은 더 심층에 있는 변혁의 현상 양식이며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정도이다.
* 끝없이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관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이 변화를 우리가 알고 있던 지구가 지리적으로 확장되어 생겨난 결과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어. 이 변화는 너무도 근본적이고 혁명적이라, 신대륙의 발견과 세계 일주 항해가 거꾸로 더 깊은 변화들의 결과이자 드러남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라. (김남시, 84쪽)
대항해 시대에 새로운 땅/토지과 바다를 발견함으로써, 유럽인들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만, 슈미트는 그런 지리적 발견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 그 기저에는 우리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는 ‘공간’ 개념 자체의 근본적인 변용, ‘무한한 허무의 공간’이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새로운 의미의 원천이 되는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환기에 해당되는 이 세기들에서 유럽의 인간은 동시에 그 창조적인 정신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새로운 공간 개념을 관철했다. 르네상스 회화는 중세적인 고딕 회화의 공간을 배제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인물이나 사물을 원근법적으로 공허의 깊이를 가진 공간 안에 둔다. 여기에서는 인물이나 사물은 하나의 공간 속에 서 있고 운동하고 있다. 고딕적인 회화의 공간과 비교하면 이것은 실제로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화가들이 여기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눈이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 100여 년간의 이 전환기에 유럽인들은 모든 창조적인 정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공간 개념을 관철시켰어. 르네상스 회화는 중세 고딕예술의 공간을 없애버렸지. 그때부터 화가들은 사람들과 사물들을원근법적으로 텅 빈 깊이를 지닌 공간에 배치했어. 사람들과 사물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움직이게 되었지. 고딕 회화의 공간과 비교해보면 이는 실로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어. 이렇듯 화가들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단순한 사실, 그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이달라졌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야. (김남시, 85쪽).
공간 의식의 변화를 회화의 양식에서 보는 것입니다. 푸코나 벤야민도 회화와 세계관이나 지각을 결부시켜 논하죠. 여기서 슈미트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중세 말기 고딕의 회화와 르네상스의 회화의 차이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을 의식하고, 깊이를 가진 공간을 묘사하고 인물이나 사물이 운동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은 이제 유한한 공간 속의 정해진 위치에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속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 거죠. 창작 주체인 화가는 공간 속에서 자신과 대상의 위치를 가늠하고 자신의 눈높이로부터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중세말기 르네상스 그림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고딕회화 : 조토 디 본도네, <유다의 입맞춤>
‘질서 Ordnung’로서의 ‘대지의 노모스 Nomos der Erde’
13장에서는 <대지의 노모스>의 서두와 똑같은 논의가 전개됩니다. 토지의 취득과 그 토지에 뿌리를 둔 법질서의 관계가 논의됩니다.
모든 기본 질서는 공간 질서이다. 일국 혹은 한 대륙의 헌법이 문제인 것은 그것이 그 나라 혹은 대륙의 기본질서, 노모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본래적인 기본질서라는 것의 핵심은 일정한 공간적 경계와 경계설정, 지구의 일정한 척도와 일정한 분할에 있으며, 따라서 어떤 커다란 시대의 시작에도 커다란 토지의 취득이 있다.
* 모든 기본적인 질서는 공간의 질서야. 한 나라Land 혹은 한 대륙의 법Verfassung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것의 근본적인 질서, 즉 노모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야. 진정한 본래적인 근본 질서는 그 본질에 있어서 특정한 공간적 경계와 구획Abgrenzungen, 특정한 척도와 땅Erde의 특정한 밴부를 전제로 한단다. 때문에 모든 위대한 시대의 시작은 광대한 땅의 취득Landnahme와 일치하지. (김남시, 88-89쪽).
이곳은 ‘질서 Ordnung’라는 말의 양의성에 주의해서 읽어주십시오. ‘법질서’처럼 도덕적·사회적 질서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물건의 배치, 물리적 질서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슈미트는 여기에서 법적·도덕적 질서 같은 이념적인 것도, ‘공간 질서 Raumordnung’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의 ‘공간’이란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들이 처음에 토지를 취득하고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을 통해 ‘공간’이 질서 잡히는 것입니다. 공간 규정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는 다양한 규범이 그 공간에적합하는 형태로 생겨납니다. 그것이, 슈미트가 ‘대지의 노모스 Nomosder Erde’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지의 노모스’가 우리가 ‘법’이라고 부
르는 것의 기초가 되는 셈입니다.
각주에서 그리스어의 ‘노모스’라는 말에 관해 다소 무리한 어원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원주) 그리스어 명사 Nomos는 그리스어의 동사 Nemein에서 왔으며, 동사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Nemein은 우선 Nehmen(취하다)을 의미한다. 따라서 Nomos는 우선 Nahme(취득, 점령)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의 Legein(이야기하다) ―\ Logos(말, 로고스)가 독일어의 Sprechen ―\ Sprache에상응하는 것처럼, 그리스어의 Nemein ―\ Nomos는 독일어 Nehme―\ Nahme와 평행적이다. 취득, 점령(Nahme)은 우선 토지의 취득, 점령인데, 나중에 되면 우리의 역사적 고찰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는 바다의 취득, 점령이기도 하다.
**(원주) 그리스어 명사 Nomos는 그리스어 동사 Nemein에서 왔으며,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Nemein은 [독일어의] ‘취득하다Nehmen’와 같다. 따라서 Nomos는 첫째로 취득함Nahme을 의미한다. 그리스어에서, 예를 들어 ‘Legein―\Logos’도 독일어의 ‘Sprechen―\Sprache’에 상응한다. 취득함Nahme은 무엇보다 땅을취득함Landnahme이며 나중에는 대양을 취득함Seenahme인데, 이에 대해서는 세계사적 고찰에서 더 많이 이야기할 것이다. (김남시,88쪽).
〈nomos〉가 동사 <nemein>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한나 아렌트도 <인간의 조건>(1958)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nemein>의 첫 번째 의미가 ‘취하다’ 라는 것은 그대로입니다만, 영어의 <take>에 해당하는 독일어의 ‘취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는 <nehmen>로, 우연하게 발음이 비슷합니다. 정말로 우연하게 닮은 것일 뿐이며, 어원적인 연결은 아닐 텐데요, 슈미트는[Nemeinn ― Nomos]와 [Nehmen ― Nahme]의 연결이 평행적이라고 말하고, 정말이지 <nemein>과 <nehmen>에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사가 같은 의미라면 이로부터 파생되는 명사도 같은 의미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독일어에서는 <Nahme>라는 명사는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다른 명사와 조합되어 <Besitznahme(점유획득)>, <Übernahme(탈취=takeover)>라는 식으로 합성어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주에서는 이 밖에, <nemein>의 두 번째 의미로서 취득한 것의 ‘분할’, 세 번째 의미로서 취득한 토지에서의 ‘방목(에 의해 가축을 기르는 것) Weiden’, 즉 ‘사용’, ‘관리’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법’이라는 의미에 서의 ‘노모스’는 두 번째 의미에서 유래합니다. 아렌트도 이 두 번째의 의미에 입각해서 자신의 ‘공/사’ 구분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원주의 마지막에 <대지의 노모스>를 참조하라고 적혀 있네요. 81頁의 마지막 행에서부터의 기술에서 개략적으로 언급되어 있듯이, <대지의 노모스>에서는 유럽인이 미국 대륙 등에서 새롭게 토지를 ‘취득’하는 것에 뒤따라, 공간질서 형성, ‘노모스’ 생성이 재현됐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원초에 있어서의 ‘대지의 노모스’의 재현입니다만, 그때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토지에 있어서의, 상이한 방식에서의 ‘취득’이기에, 그때까지와는 다른 ‘노모스’가 생겨난 것입니다.
16세기, 17세기에 일어났던 경이로운, 미증유의 공간혁명은, 이것도 마찬가지로 경이롭고 미증유의 토지의 점취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럽의 민족들 앞에는 새로운 무한이라고도 생각되는 공간이 열리고, 이들은 이 광대한 공간으로 무리를 이뤄서 나아가며, 자신들이 발견한 비유럽, 비기독교의 국가들과 민족들을 소유주 없는 재산으로서 다뤘다. 그리고 이들의 재산은 최초의 유럽의 점유획득자의 것이 됐다.
* 그러니 16~17세기에 있었던 놀랍고 유례없는 공간혁명이 그만큼 놀랍고 유례없는 땅의 취득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았겠니? 끝없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공간이 열리자 그 먼 광활한 지역을 향해 떼 지어 달려나갔던 유럽 민족들은 그들이 발견한 비-유럽, 비-기독교 나라와 민족들을 주인 없는 자산으로, 유럽에서 온 첫번째 점유자가 이양하면 되는 것이라고 여겼어. (김남시, 89쪽).
이것은 친숙한 얘기네요. 비유럽 지역에도 선주민이 있었습니다만, 유럽인은 그곳을 소유자 없는 토지로 간주하고 ‘취득’, ‘분할’하고, 자신들이 ‘관리’하게 됩니다. 그것에 이어서 ‘노모스’가 생성됩니다. 이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새로운 토지를 포함해 세계 전체를 (유럽) 각국이 어떻게 취득하고 서로 분할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더 큰 수준에서의 ‘노모스’가 필요해집니다. 거기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그런 ‘노모스’가 형성되게 됩니다.
그것은 유럽에 유리한 세계 지배를 위한 법형성입니다만, 그들은 기독교의 선고를 위해서라며 자기 정당화하게 됐습니다.
토지취득경쟁과 종교전쟁
이러한 자기 정당화로부터 기독교-유럽적인 국제법, 즉 유럽 이외의 전 세계에 대치하는 유럽-기독교 민족 공동체가 생겨났다. 이것에 의해 ‘여러 국가들의 가족’, 하나의 국제적인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 국제법은 기독교 민족과 비기독교 민족의 구별, 또는 1세기 뒤에는 (기독교·유럽적인 의미에서) 문명화된 민족과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의 구별 위에서 성립됐다. 이런 의미에서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은 이 국제법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 바로 이러한 정당화Rechtfertigungen로부터 기독교-유럽적 국제법[대륙법]Völkerrecht,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와는 다른 유럽 기독교 민족들의 공동체Gemeinschaft의 법이 생겨나게 돼. 이것이기독교 민족 국가 간의 질서인 ‘국가의 가족Familien derNationen’을 형성하게 되지. 이러한 국제법은 기독교와 비기독교민족의 구분, 1세기 후에는 (기독교-유럽적 의미에서) 문명화된 민족과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의 구분에 근거하고 있어. 이러한 의미에서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은 이 국제법 공동체Völkerrechtsgemeinschaft의 일원이 될 수 없었던 거야. (김남시, 91쪽).
‘문명화된 민족=기독교 민족 /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비기독교 민족’을 구별한 뒤, 전자의 공동체가 후자의 거주 지역을 평화롭게 지배하기 위해 ‘국제법’ 질서가 형성되었다는 얘기군요. ‘국제법’을 독일어로는<Völkerrecht>라고 하는데요, 이는 글자 그대로는 여러 ‘민족 Volk’의 ‘법’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이 ‘법의 공동체’에는 지배되는 민족은 들지 않은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식민지 비판이네요. 좌익도좋아하는 것입니다(웃음).
83頁에서 ‘기독교•유럽 민족의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온화한 어린 양의 한 무리처럼 상상해서는 안 된다[평화로운 양 떼처럼 생각해서는 안 돼, 김남시, 91쪽]”고 기술되어 있군요. “동료들끼리 서로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는[그들은 서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을 벌인, 김남시, 91쪽]” 공동체였다고 말합니다. 유럽 본체에서는 일정한 규칙을 지키고 한정적인 전쟁밖에 하지 않지만, 비유럽 지역에 대해서는 먼저 자신의 것으로서 ‘취득nemein’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14, 15장에서는 비유럽 지역에서의 토지 취득[획득] 경쟁과, 유럽에서의 종교 전쟁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기술되어 있습니다. 16장에서는 육지와는 다른 형태로 진행하는 ‘바다의 점취 Seenahme’이 논해지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토지 점취라는 역사적 사건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동안, 바다에서는 또 하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지구의 새로운 분할이 행해졌다. 그것은 영국에 의한 바다의 점취였다. 이것은 바다에 있어서의 최근 수 세기의 전 유럽적인 폭발의 결과였다. 이것에 의해 전 지구적인 공간 질서의 기본 방향이 정해지기에 이르렀다. 그 본질은 바다와 육지의 분리라는 것에 있다. 육지는 이제 한 꾸러미일 뿐인 주권국가에 속하지만, 바다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거나 또는 모든 나라에 속하며, 실제로는 결국 한 나라, 즉 영국에만 속하게 된다.
* 역사적 단계의 땅의 측면에서 야심 찬 방식으로 땅의 취득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대양의 측면에서 우리가 사는 행성을 새로 분배하는 일의 절반이 완성되었어. 이는 영국의 대양 취득Seenahme을 통해 일어났지. 영국의 대양 취득은 바다의 측면에서 이 세기에 이루어진 유럽 전체의 약진Aufbruch의 결과야. 그를 통해 첫 번째 전 지구적 공간질서의 근본 노선이 결정되었는데, 그 본질은 땅과 바다를 분리하는 데 있어.
그리하여 육지는 20여개의 주권국가에 귀속하게 되었어. 반면, 바다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거나 모두의 것으로 여겨졌는데, 실제로는결국 단 한 국가에 속했지. 바로 영국이야. (김남시, 105-106쪽)
이것도 『대지의 노모스』에서 더 자세히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만, 바다에 도 일단 ‘영해’라는 것이 설정되어 있는데도 기껏해야 그 나라의 연안밖에는 커버하지 못합니다. 새롭게 발견된 육지는 새롭게 형성된 유럽의 주권국가에 의해 점유되게 되었습니다만, 바다의 대부분은, 무주물(無主物)인 채로 머물렀습니다. 점유하려고 해도, 육지처럼, 군대를 상주시켜 타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의 것도 아닌데도, 그 덕분에, 자신의 ‘엘레멘트[원소]’를 ‘바다’에 요구한 영국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사실상 모든 바다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것을 “영국에 의한 해양의 점취”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국을 중심으로, “바다를 점취한다”는 발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이 나온 배경에는, 선박 관계의 기술이 발달하고 항로의 요소 요소에 군함을 파견하고, 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상을 순찰하게 됐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지와 바다의 분열이 특히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은 육지전과 해전의 차이에 있어서이다. 육지전과 해전은 분명 전략적, 전술적으로 항상 별개의 것이었지만, 이런 차이는 이제 다른 세계와, 대립하는 법률적 확신의 한 가지 표시가 된다.
16세기 이후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육지전에 관해서 일정한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근저에는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의 한가지 관계라는 생각이 있었다. 어느 쪽에도 국가적으로 조직된 무력이 있으며, 군대가 야전에서 서로 승부를 겨룬다. 적으로서 상대하는 것은 전투를 벌이는 군대뿐이며, 싸움에 참가하지 않는 일반 시민은 적대 관계의 바깥쪽에 있다. 그들은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 적이 아니라, 또한 적으로서 다뤄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해전의 근저에는 적의 무역,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전쟁에서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대만이 적이 아니라, 적국의 모든 국민, 그리고 적국과 무역을 하는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중립국조차도 적이 된다.
육지전은 승패를 건 야전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해전에서도 물론 해상의 전투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 전형적인 수단, 방법은 적국 해안의 포격과 봉쇄이며, 또한 적국, 중립국의 상선을 노획권에 따라 나포하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해전 수단의 본질 중에, 그것이 전투 요원에 대해서도, 또한 비전투 요원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의 기초가 있다.
* 땅과 바다의 분열Zwiespalt은 육전(陸戰)Landkrieg과 해전(海戰)Seekrieg의 대립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사실 육전과 해전은 전략적으로도 또 전술적으로도 원래부터 서로 다른 것이었어. 그런데 이제 이 대립은 서로 다른 두 세계와 서로 대립하는 두 법적 신념의 표현이 되는 거야.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16세기 이래 육지전의 특정한 형태들을 생각해 냈는데, 그 근저에는 전쟁이란 한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관계라는 생각이 깔려있었어. 전쟁의 쌍방에게는 국가가 조직한 군사력이 있고, 군대는 열린 전장에서 서로 대치하며 격돌하지. 전장에 있는 군대만이 적대에 참여할 수 있어. 비-전투원인 민간인들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적대의 바깥에 남아 있는 거야.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적이 아니며 적으로 취급받지도 않아. 그에 반해 해전에서는 적의 무역과 경제도 적으로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어. 따라서 적은 더 이상 무장을 하고 있는상대뿐 아니라 적국의 모든 거주민들, 나아가 그 적과 무역을 하고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중립국들 모두야. 육지전은 전장에서의 결정적인 교전의 경향을 갖지. 해전에서도 대양 교전Seeschalcht이 일어날 수 있지만 포격이나 적의 해안에 대한 봉쇄, 적과 중립국들의 상선들을 전리품 법Prisenrecht에 따라 포획하는 등의 수단을 선호한다는 게 특징이야. 전쟁이 싸우는 당사자뿐 아니라 싸우지 않는 자들도 겨냥하고 있다는 데 이 전형적인 해전 수단의 본질이 있지. (김남시, 107-108쪽)
아까 말씀 드렸지만 해적으로부터 해군이 발달한 것이, 초기의 해군의 싸움 방식을 규정했던 것이죠. 토지를 점령할 수 있도록 군대끼리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육지의 싸움이라면, 일반 시민에게는 적대 관계의 밖에 두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초기의 바다의 싸움에서는, 직접 부딪히고 자웅을 겨루는 것 이상으로, 항구에 들어오다 배를 사로잡거나, 입항을 방해하거나 상대를 군수적(軍需的)∙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만드는 데 중점이 놓입니다. 이런 수법은 현대에도 쓰이네요. 그렇게 해적의 수법을 사용하면 군대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경제생활도 직접적인 표적이 됩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주는 봉쇄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땅’에서 ‘바다’로의 ‘기본요소’의 변동 ― 영국의 해군력과 ‘기계Maschine’
그러므로 싸우는 방법에 대한 규칙도 당연히 땅과는 다른 게 됩니다. 민간이나 중립국의 상선을 나포한다는 것은 상당히 비도덕적 행위인 것 같기도 한데요, 그 배가 중요한 군수 물자를 나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 그렇게 쉽게 눈감아줘서는 안 됩니다. 공격하지 않더라도 군수 물자를 나르고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해전 특유의 노획권(Prisenrecht)이라는 법 개념이 형성된 것입니다. “대지의 노모스”와 함께 태어난 국제법 질서에는 육지와 바다의 다른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에 의한 바다의 점취 이후, 영국인과 영국의 이념의 속박 아래에 있는 여러 국민들은 이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 하나의 육지 국가가 지구 전체를 포함하는 세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등의 생각은 육지 국가의 세계관에서 보면 엄청난 일이며,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육지에서 떨어진 해상의 존재 위에 세워지고, 세계의 대양을 포함하는 세계 지배는 그렇지 않다. 유럽 북서쪽 근처에 위치하는 비교적 작은 섬이 육지에 등을 돌리고 바다에 내기를 걺으로써 세계 제국의 중심이 됐다.
* 영국의 대양 취득 이래로 영국인들과 영국 이념의 궤도에 서 있는 민족들은 여기에 익숙해졌어. 이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땅을 취득함으로써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세계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되고, 견디기 힘든 것일 거야. 땅으로부터 분리된 해상적 실존 위에 세워져 세계를 지배하는 경우라면 그게
적용되지 않지. 유럽 북서쪽 변방에 자리 잡은 상대적으로 작은 섬이 견고한 땅에서 등을 돌려 대양을 선택함으로써 점차 세계 제국의 중심이 된 거야. (김남시, 108쪽).
영국이 해군력을 발달시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은 세계사 책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슈미트는, ‘육지’에서 ‘바다’로의 ‘엘레멘트[원소]’의 전환(shift)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지’를 자신의 거처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각국이 얼마나 토지를 군대에 의해서 점령 지배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정했으며, 그 범위를 확장하기는 쉽지는 않았지만, 영국은 장소 확정이 어려운 ‘바다’를 자신의 본래의 거처[居場所]로 삼음으로써, ‘육지’를 연고지로 하면서도 ‘바다’를 통한 사물과 사람의 이동에 의거할 수 밖에 없게 된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있게된 것이죠. ‘바다’ 중심의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17장에서는 노르만족의 점령(1066년)부터 디즈레일리(1804~81)의 대(對) 식민지 정책에 이르기까지의 영국을 지배하던 자아상에 대해 기술되어 있습니다. 디즈레일리가 19세기의 식민지 정책을 추진한 유대계의 정치가인 것은 유명하지만, 그가 소설가이기도 했다는 것은 일본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군요. 18장에서는 바다의 지배자가 된 영국이 그 조선 기술의 고도의 발전 때문에 ‘바다’와의 관계 방식이 변질된다는 것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제 리바이어던은 거대한 물고기에서 기계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굉장한 본질의 변화이다. 기계가 바다와 인간이 맺는 관계를 바꿨다. 그때까지 해양국의 위력을 발휘하던 모험심 많은 사람들은 예전에 갖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렸다. 범선의 뱃사람들의 대담한 활동, 고도의 항해 기술, 특정한 종의 인간의 엄격한 훈련과 선택, 이 모든 것은 현대의 기술화된 해상 교통의 안전성 속에서 퇴색되어 갔다. 바다는 여전히 인간을 형성하는 힘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양치기의 백성을 해적에 일변시켰던 저 강력한 충격의 작용은 퇴색하고 서서히 사라졌다. 바다의 엘레멘트와 인간 존재 사이에 기계 장치가 삽입된 것이다. 기계 산업 위에 세워진 해양지배는 바다의 엘레멘트와의 어려운 직접적인 싸움에 의해서 매일 획득된 바다의 힘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인간의 근육의 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범선[돛배]과 증기 터빈에 의해 움직이는 배는 이미 그 자체로 바다의 엘레멘트에 대한 두 개의 상이한 관계를 보였다. 산업 혁명은 바다의 엘레멘트에서 태어난 바다의 아들을 기계의 제조자, 기계의 조작자로 바꾸어 버렸다.
* 왜인지 아니? 거대한 물고기였던 리바이어던이 이제 기계로 변신했기 때문이야. 이것은 실로 특별한 종류의 본질전환Wesenswandlung이었어. 기계는 바다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켰지. 대양 권력의 위대함을 불러내던 대담무쌍한 인간의 힘Menschenschlag이 이전까지의 의미를 잃어버렸지, 범선을 모는 선원의 용맹한 기량, 항해라는 고도의 기술, 바다의 특성에 맞는 종류의 사람을 엄격하게 선택하고 탄탄하게 훈련시키는 일, 이 모든 것들이 근대적인, 기계화된 대양 교통의 안정성 속에서 빛을 잃어버렸지. 이전까지의 바다는 인간을 형성하는 힘을 보존해 오고 있었어. 그런데 한 민족을 양치기에서 해적으로 변신시켰던 저 강력한 박동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된 거야. 바다의 원소와 인간의 삶 사이에 기계 장치가 끼어들어오게 되었지. 기계 산업에 기반한 바다의 지배는 분명 원소와의 직접적이고 힘겨운 투쟁을 통해 매일 취득해야 했던 대양 권력과는 무척이나 달라. 인간의 근력에 의해 움직이던 범선과 증기 추진 장치로 움직이는 배는 바다의 원소에 대한 전혀 다른 관계를 의미해. 산업혁명은 바다의 원소에서 태어난 대양의 자식들을 이렇게 기계제작자와 기계 조작자로 변신시켰어. (김남시, 119-120쪽).
‘바다’라는 엘레멘트[원소]와 인간의 신체 사이에 ‘기계 Maschine’라는 요소가 들어옴으로써 ‘바다’와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거죠. 이 책의 서두에서의 논의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죠. 인간은 원래 ‘대지’의 엘레멘트[원소]와 깊이 결부되고, ‘대지’의 위에서의 ‘걷기’, 신체의 움직이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기본적 관점, 그 연장선상에서 세계관을 확립했던 것인데, 포경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의 근원인 ‘바다’로 나가 새로운 신체성, 세계관을 획득합니다. 조선 기술 덕분에 영국인들은, 인간이 직접 돌아다니고 상주할 수 없는 ‘바다’를 지배하는 법[術]을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바다’ 자체보다 ‘기계’라는 새로운 ‘엘레멘트[원소]’와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며, 이제 오히려 신체성과 세계관이 ‘기계’에 의해 규정되게 됩니다. 근대적 해군이 되면, 거대한 기계를 건조하여 움직이는 것이 승패의 결정적 수단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땅’과 ‘바다’라는 대비는 상대화됩니다. 어느 쪽이든 ‘기계’와‘신체’의 관계가 주축이 되기 때문이죠.
‘기계’에 의해 인간의 신체성과 [사물을 보는] 시각도 변화한다는 것은 벤야민이나 융거(1895-1998) 등도 관심을 가졌던, 바이마르 시기 독일의 지식인들의 공통의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슈미트는 그것에 법학적 견지에서 접근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상세히 서술되고 있지 않지만, 『대지의 노모스』에서는 조선·해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바다’를 둘러싼 법적 관계가 해적 시대와는 다른 것이 되어 가는 과정이, 뒤에 나오는 항공 기술과의 관련도 시야에 넣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19장에서는 20세기의 새로운 해양 전략에 대해 기술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슈미트에게서 동시대의국제정세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공중의 시대 ― ‘지구의 노모스 Nomos der Erde’의 근본적 변화
미국의 제독 머핸은 19세기의 끝, 20세기의 시작에 영국에 의한 바다의 범취라는 최초기의 상황을 기계의 시대에 있어서도 지속시키려 한다는 주목할 만한 시도를 했다. …1904년 7월의 어떤 논문에서 머핸은 영국과 미국의 재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했다. 이런 재통일의 최대의 이유를 그는 인류, 언어혹은 문화의 공통성에서는 보지 않는다. …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앵글로색슨 민족에 의한 세계의 바다의 지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두 앵글로-아메리카 강국의 결합에 의한 ‘섬나라의’ 기초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영국 자신은 현대의 발전에는 너무도 작아져 축소되어 버렸고, 따라서 그때까지의 의미에서의 섬이 더 이상 아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시대에 맞는 진정한 섬이다. 이것은 미국의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의식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척도와 크기의 비율에 맞다.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의 해군제독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특이하게도 기계의 시대에도 영국 대양 권력의 근원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어. …1894년 7월 머핸은 영국과 미합중국의 재통일 가능성에 관한 기사를 써. 특이하게도 그는 영국과 미국이 재통일되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동일한 인종이나 같은 언어나 문화에서 찾지 않았지. …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 바다에 대한 앵글로색슨의 지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 그를 위해서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앵글로아메리카 권력이 ‘섬적인insularer’ 토대 위에서 연맹해야 한다는 것이었지. 영국은 근대적 발전의 결과로 너무 작아져 버려 축소되고 말았기에 더 이상 이전까지의 의미의 섬이 아닌 데 반해 아메리카 합중국은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섬이라는 거지. 머핸은 지금까지 이것이 의식되지 못했던 이유는 합중국의 외연Ausdehnung때문이었다고 말해. 그런데 당대의 척도와 크기 비율에는 그게 적합하다는 거야. (김남시, 122-124쪽).
머핸(Alfred Thayer Mahan, 1861~1914)은 바다의 전략론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전략론이나 지정학적 관계에서 자주 이름이 나옵니다. 해군대학교에서 해전술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해전을 중심으로 하는 바다의 역사에 관해 몇 개의 책과 논문을 썼습니다.
20세기가 되어 영국과 미합중국이 협력해서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지배의 전략을 전개하게 되며, 두 개의 대전을 통해 그 관계가 강화됐다는 것은 세계사의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보통은 양자가 영어라는 같은 언어를 말하고 역사∙문화를 공유하는 앵글로 색슨이라는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네요. 머핸은 그것보다 중요한 요인으로서 양자가 ‘바다’의 엘레멘트[원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선택한 민족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영국이라는 섬이 단독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거점의 역할을 했지만, 비좁아졌기에 앞으로는 더 큰 ‘섬’인 미국으로 중심을 옮기고, 양자가 한 몸이 되어 ‘바다’의 세계제국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하는 거네요. 미국은 원래 ‘바다’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육지 취득도 추진하고, 새로운 ‘대지의 노모스’의 형성을 촉구한 앵글로색슨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양자가 ‘바다’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다시 융합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두 개의 세계대전은 ‘바다’의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공간무기
다음의 20장이 마지막 장입니다. 여기서 다시 ‘공간 혁명’이 화제가 됩니다.
산업의 발전과 새로운 기술은 19세기의 단계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것들은 언제까지나 증기선, 철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계 신앙의 예언자들이 예감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세계는 바뀌고, 전기공학과 전기역학의 시대에 돌입했다. 전기, 비행기, 통신기계 등이 모든 공간 관념의 변혁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두 번째의 새로운 공간 혁명은 아니더라도 최초의 전 지구적인 공간 혁명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게 되었다.
* 산업의 발전과 새로운 기술은 19세기의 상태로 고착되지 않았어. 그것들은 증기선이나 증기기관차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지. 세계는 기계를 신봉하는 예언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변화하여 전자 및 전기 역학의 시대에 들어섰어. 전기, 항공과 무선 전신이 모든 공간표상을 전복시키더니, 급기야 새로운 2차 공간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전 지구적인 1차 공간혁명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 명백해졌어. (김남시, 126쪽)
전기 공학과 전기 역학에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군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계라면, 육지나 바다의 표면을 이동하는 것이 최대한이었지만, 전기 공학의 발달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기계가 생겨났고, 직접 자기의 몸을 공간 이동시키지 않고도 전자파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버추얼하게 세계를 파악하는 것조차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초기의 ‘공간혁명’은 이념적 성격이 강했습니다만, 20세기가 되자, 공간적 거리를 순식간에 메워버린 전자 기기가 출현함으로써 대지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이 현실성을 띠게 된 것입니다.
1914년의 세계대전은 이미 새로운 징후를 띠고 있었다. 물론 여러 국민들과 그 정부는 공간혁명이라는 의식 등은 갖지 않고 전쟁 속에 휘말려들었다. 마치 전쟁이 자신들에게는 친숙한 19세기의 전쟁의 하나였다는 듯이.
* 1914년 세계대전은 이런 새로운 시대적 징후 아래서 일어난 사건이었어. 전쟁에 참여한 국민과 정부들은 그 시기가 공간혁명의 전조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전쟁이 그들에게 익숙한 19세기의 전쟁들이라도 되는 양, 비틀거리며 전쟁에 말려들어 갔지. (김남시, 126-127쪽)
공간을 지배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온 것으로 전쟁과 대지의 노모스의 본질이 변질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m l롯파 국가 정부와 군대는 한구 세기적인 규범 하에서 행동한 것으로 그 변화는 분명히 사 면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제1차 대전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투가 전개되면서 변화가 확실히 인식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슈미트만 아니라 많은 논자가 지적하고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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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항공기가 등장했을 때, 바다와 땅에 가담해야 할 새로운 제3의 차원도 정복당했다. 이제 인간은 땅과 바다의 평면에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교통수단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무기를 쥐게 됐다. 척도와 표준은 더욱 더 바뀌어가고, 인간이 자연이나 다른 인간을 지배할 가능성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고조되었다. 적절하게 공군이 ‘공간 무기’라고 불린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행기에서 비롯되는 공간혁명의 작용은 특히 강력하고 직접적, 또한 현저한 것이기 때문이다.
* 여기에 비행기가 등장하자 땅과 바다에 이어 세 번째 새로운 차원이 점령되었지. 이제 인간은 땅과 바다 표면 위로 높이 오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기뿐 아니라 새로운 교통수단도 얻을 수 있었어. 척도와 규범들은 또 한차례 변화했고, 자연과 다른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측하기 힘든 영역으로까
지 증가했지. ‘공군 무기Luftwaffe’가 ‘공간 무기Raumwaffe’라고 지칭되는 걸 알고 있지? 공군 무기로부터 생겨나는 공간혁명적 영향력이 그만큼 강하고, 직접적이며 명백하기 때문이야. (김남시,127쪽)
해군의 발달 과정에서는 해상 봉쇄 등에 의해 ‘땅’에 직접적∙경제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새로운 전투방식으로 나왔습니다만, 공군의 ‘땅’에 대한 영향은 더욱 직접적∙결정적입니다. 공군에서는 비행기끼리 공중전을 하는 것도 있지만, 주된 것은 오히려 공습입니다. 강력한 폭탄을 상공에서 대거 투하하면, 막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육상에 포진한 병사에 의해 막히지 않고, 상대방의 진지와 요새에 정확하게(pinpoint)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위협을 주어 땅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바다의 싸움에서도, 바다로부터의 포격의 비거리를 늘려서 상대방의 영토에 일정한 위협을 줄 수 있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이용하면 어디까지든 공격 범위, 위협을 줄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것입니
다. 이 때문에 해군의 싸움도, 제2차 대전 전부터 항공모함이 주축이 되었고, 미사일이 나오자 인간이 직접 싸움에 나갈 필요조차 없어집니다. 컨트롤 룸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조차 가능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무기화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대 독일의 현대 사상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Luftbeben》(2002)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공진(空震)>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습니다. 오차노미즈쇼보(御茶の水書房)에서 출판됐습니다. <Luftbeben>이라는 것은 당연히 보통의 독일어가 아닙니다. 대지의 진동이란 뜻의 ‘지진 Erdbeben’과 대칭되는 말로, 슬로터다이크가 만든 말입니다.
항공기의 발달로 ‘하늘’에서 폭탄 등을 떨어뜨린다, 혹은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Luft>는 영어의 <air>와 마찬가지로, ‘공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제1차 대전에서는 공기를 오염시키는 독가스 무기도 등장했습니다. 화학 무기와 생물 무기는 ‘공기’를 조종함으로써 상대를 위협하는 무기입니다. 공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공격 대상이 되는 토지에 생활하는 주민 전체가 포함됩니다. 항공기나 미사일에 공기 무기를 탑재한다는 통합도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공기’는 비유적으로 ‘분위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항공·공기 무기를 갖추고 있으면 상대방의 사회에 테러(공포)의 ‘공기’를 만 연시킬 수 있습니다. 슬로터다이크는 이런 의미에서 테러의 본질은 ‘공기’지배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옴진리교 사건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공진』의 부제는 “테러의 근원에서”입니다.
슈미트가 『땅과 바다』를 쓴 것이 [2차]대전 중이라는 말도 있고, 심리적 효과도 포함한 그것까지 자세한 것은 논할 수 없지만, ‘하늘’의 기술의 발전으로, ‘공기’라는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엘레멘트[원소]가 새로운 노모스 형성에 있어서 큰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아까의 인용 부분에 나온 ‘공간 무기 Raumwaffe’라는 말에 대해 설명해두죠. 독일어로 공군을 ‘Luftwaffe’라고 합니다. ‘공기’의 ‘무기Waffe’라는 것이죠. 이 대목은 원문에서는 <daß gerade die Luftwaffe als„Raumwaffe“ bezeichet wurde>입니다. “적절하게 공기무기가 ‘공간무기’라고 불렸다”는 동어반복 같은 느낌인 셈입니다. 영어라면 <air force>인데, 이런 느낌이 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이 말장난으로 ‘공군’의 본질이 ‘공간’을 지배하는 ‘공기 무기’의 집합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비행기가 육상, 해상의 공중을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방송국에서 발신되는 전파도 또한 끊임없이 초고속으로 대기 공간을 지나 지구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상상한다면, 이제 새로운 제3의 차원이 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3의 엘레멘트[원소], 즉 인간 존재의 새로운 엘레멘트[원소] 영역으로서의 공기가 가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라는 두 개의 신화적 동물에 이번에는 제3의 동물로서 큰 새가 또 하나 가담하게 될 것이다.
* 비행기들이 바다와 대륙 위의 영공(領空)Luftraum을 횡단할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송신소에서 나오는 무선전파들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로 대기공간을 통과해 지구 전체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제 새로운 제3의 차원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세 번째 원소, 즉 인간실존의 새로운 원소영역인 공기Luft를 정복했다고 결론짓고 싶을 거야.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라는 두 신화적 동물에 이어 이제 세 번째 거대한 새가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김남시, 128쪽)
슈미트도 ‘공기’를 강조하고 있네요. ‘공기’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실제로 3차원의 ‘공간’ 속을 돌아다니고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추상적인 공간 지배가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 지배와 직결되게 되었습니다. 버추얼한 공간 좌표와 현실의 좌표가 고도의 전자 기기에 의해서 연결(link)되게 되었습니다. 현대는 인터넷이 생활의 모든 것을 포괄(cover)하게 되었기에, 물리적 공간에서 거창한 기계를 움직이지 않아도 버추얼 공간 내에서의 주고받음만으로도 멀리 있는 사람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네요.
이 대목보다 약간 나중에, 새로운 엘레멘트[원소]로서 ‘불’이 등장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의 ‘불’이란 비행기 등을 움직이는 에너지, ‘화력’입니다. 그런 것을 ‘불’로 간주한다면, 인간은 4대 엘레멘트[원소] 모두와 관련되며, 세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122頁부터 124頁까지가 마지막 정리네요. 두 개의 확실한 사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공간’이 더 이상 인간의 ‘세계’를 둘러싼 공허한 장소가 아니라, ‘세계’ 속에 있으며, 인간이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바다가 고래 사냥꾼이라든가 해적 같은 것만 활동할수 있는, 특수한 엘레멘트[원소]가 더 이상 아니게 되며, 모든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것. 레이더에 의해서 해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공간적 좌표 축 속에서 규정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영국의 전매 특허였던 “바다의 점취”가 별 의미가 없게 되며, 땅과 바다의 균형 위에 세워진 “지구의 노모스 Nomos der Erde”가 근본적으로 변화합니다. 여기에서는 바다와 땅 모두에 관련되어 있기에 <Erde>를 “지구”로 번역하고 있네요.
이를 대신해 지구의 새로운 노모스가 억누르기 힘들과 맞서기 힘든 기세로 성장한다. 낡은 엘레멘트[원소], 새로운 엘레멘트[원소]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관계가 이 노모스를 불러내고, 인간 존재의 변화된 척도와 비율이 그것을 강제한다. 많은 사람은 그것에서 죽음과 파괴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종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땅과 바다 사이의 기존 관계의 종말일 뿐이다.
* [영국의 바다 취득의 토대가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의 대지의 노모스 역시 사라지는 거지.] 그 대신 우리 행성의 새로운 노모스가 멈추지 않고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나고 있어. 이전의 원소들과 새로운 원소들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관계들이 새로운 노모스를 불러내고, 인간 실존의 변화된 척도와 관계들이 노모스를 강제해내고 있는 거야. 꽤 많은 이들은 여기서 죽음과 파괴만을 보려 할 거야. 어떤 사람들은 세계의 종말을 체험하게 될 거라고 믿겠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땅과 바다의 관계의 종말일 뿐이야. (김남시, 130쪽)
새로운 노모스와 ‘인간존재 menschliche Existenz’
“낡은 엘레멘트[원소], 새로운 엘레멘트[원소]”라는 대목은 원문에서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면 “낡은 엘레멘트[원소]”라는 것은 기존의 의미에서의 “대지”와 “바다”, “새로운 요소”는 ‘공기’와 ‘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후자에는 제5의 엘레멘트[원소]로서의 ‘기계’도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계량화∙조작화 가능해진 ‘공간’에 관련되는 엘레멘트[원소]이죠.
보수주의자인 슈미트는 낡은 엘레멘트[원소]의 붕괴를 한탄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인간 존재 menschliche Existenz’의 변화에 의해 새로운 노모스의 형성이 촉진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시각을 보여주네요.
낡은 노모스는 물론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재래(在來)의 척도, 기준, 관계의 체계 전체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윽고 도래할 것이 단순한 척도의 상실 상태, 혹은 반(反)노모스적인 허무인 것은아니다. 낡은 힘과 새로운 힘 사이의 가혹한 싸움 속에서도 또한 올바른 척도가 생겨나며, 의미심장한 조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신들이 있고 지배하리라,
신들의 척도는 위대하다.
* 당연하게도, 낡은 노모스는 떨어져 나가고 그와 더불어 모든 전승된 척도, 규범과 관계들의 체계 전체도 사라질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에 도래하는 것이 무절제Maßlosigkeit이거나 노모스에 적대적인 무(無)이기만 한 것은 아니야. 낡은 힘과 새로운 힘들이 가장 격렬한 씨름을 벌이는 곳으로부터 정당한gerechte 척
도가 생겨나고 의미심장한 새로운 비율Proportionen이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여기도 신들이 존재하며 주재하고 있다.
위대하여라, 신들의 척도는. (김남시, 130-131쪽)
‘척도 Maß’라는 말이 핵심어가 되네요. <Maß>라는 말은 독일어 사전에서 보면, 물건을 측정하는 척도나 저울이란 뜻 외에, 치수[寸法], 정도, 중용이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단순히 ‘크기’의 단위일 뿐만 아니라, 사물의 적당한 상태 같은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를 중용이라고 정의했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죠. 원래 취득한 대지에 선을 긋고 장소를 확정하는 것을 통해서 법과 정의의 기초로서의 ‘노모스’가 태어났기 때문에, 공간의 좌표축을 규정하는 새로운 ‘척도’의 확립을 통해서 새로운 ‘노모스’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고 보는 것입니다. 육해공으로 이루어진 삼차원 공간에 질서를 산출하는 ‘노모스’입니다. 여러 사물에 질서를 세우는 ‘노모스’가 태어날 때, 거기에 새로운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신들’도 깃들게 된다. 하이데거가 횔덜린 강의에서 시사하듯이, 낡은 대지의 신들이 지나가버린 후에, 새로운 신들이 다시 대지에 도래하고, 새로운 존재론이 생겨나는 것을, 슈미트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줄의 시는 횔덜린의 비가 <방랑자 Der Wanderer>의 한 구절입니다.
질의응답
Q : 122頁의 “세계가 공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이 세계 속에 있다”고 말한 독일의 철학자란 하이데거입니까?
A : 완전히 똑같은 표현은 아닙니다만, <존재와 시간>의 24절의 현존재(Dasein)의 공간성을 논하는 맥락에서 나옵니다. 치크마학예문고(ちくま学芸文庫)의 번역이라면, 상권의 246頁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공간은 주관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또한 세계는 공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은 오히려 현존재에 있어서 구성적인 세계-내-존재가 이미 공간을 개시하고 있는 한, 세계의 ‘안’에 있는 것이다.”
Q : ‘공간’이라고 말하면, 나치의 ‘레벤스라움’(생존권)을 떠올리게 됩니다. 동시에 독일 대 영국이라고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역시 이 저작을 쓴 것은 전쟁의 영향이 있기 때문일까요?
A : 영국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영국은 ‘바다의 아들’로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해양국가인 영국과 미국이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그동안 ‘땅’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유럽 본체의 대지의 노모스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도식입니다. <대지의 노모스>는 육지의 ‘노모스’의 시점에서 적혀 있는데요, 이 책은 굳이 말하면, ‘바다’의 시점이 강하다는 느낌이네요.
이것이 작성된 시기는 [2차]대전 중이어서, 영국과 미국을 위협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합니다. 전후에 작성된 ?대지의 노모스?에 서조차, 상당히 영미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다만, 슈미트는 36년 이래, 친위대의 주시를 받았고, 나치의 중요한 이데올로그가 아니게 되었고, ?대지의 노모스?에서 ‘독일’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독일민족이 살고 있는 초법적 공간을 의미하는 ‘생존공간Lebssraum’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추상적∙철학적인 ‘공간’ 개념으로, 현실의 지리적인 ‘공간’을 파악하려고 하는 발상이 독일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Q : 미국을 ‘큰 섬’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 소련이라는 것도 의식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소련 얘기가 나오지 않네요.
A : [2차] 대전 중에 쓰인 것이기에, 소련이 ‘엘레멘트[원소]’를 지배하는 세력이라는 인식은 아직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냉전시대에 쓰였다고 하더라도, 소련이 바다와 땅의 균형을 크게 바꿨다고는 생각되지 않기에,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파르티잔의 이론>에서는 레닌 등의 전략이, 파르티잔의 싸움 방식, 그 지정학적 의미를 바꾼 것에는 주목하고 있습니다만.
Q : 슈미트 자신은 사회주의 등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에 관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지정학적, 법적으로만 흥미를 가졌을 뿐일까요?
A : 이데올로기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강의에서 얘기했듯이 무신론이라는 “정치신학”을 갖고 있는 것이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친구/적’ 관계를 급진적으로 골똘히 생각하는 것 등, 그 사고의 급진성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신학을, 좌우역전시켜 비춰보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Q : 땅, 바다, 하늘이 나오고 우주가 됩니다만, 해석에 따라서는 ‘우주’는 ‘하늘’의 연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도 말해집니다. 무리하게 읽는 방법입니다만, 슈미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사이버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 레이더나 전기역학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공간’ 혁명을 골똘히 생각하면, 이념적∙추상적인 공간을 반물질화된 ‘사이버공간’으로까지 끌고갈 것같습니다. 대지와 바다의 시대에는,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구사하여, ‘엘레멘트[원소]’와 관련된 것인데, 하늘의 엘레멘트[원소]를 지배하기 위한 전자적인 ‘기계’가 도입된 것에 의해서, 그 장소에 없더라도, 장치가 그려내는 ‘좌표축’을 따라 상황을 관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연히 사이버 공간도 시야에 들어오겠죠.
대지를 직립 보행하게 된 것이나, 망망대해에서 리바이어던을 뒤쫓게 되면서, 인간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는데, 사이버 공간은 인간의 ‘사물을 보는 시각’을 그것 이상으로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신체성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버 공간은 물질세계로부터 독립된 차원에서 성립된 공간이며, 우리가 신체적으로 지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과의 관계가 우리의 지각이나 사고양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을 매개하는 형태로, 주위의 환경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걷는데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는 사람이꽤 있죠. AR기술은 그것을 가시화한 것입니다.
현재의 사이버 공간론에서는 인간의 신체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그 정도로 구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네요. 신경 자극을 인터넷을 통해 전달하고, 기계나 타인의 신체를 자신의 것으로서 느끼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정보공학적인 논의라면 있지만, 신체성, 신체적 세계 감각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의식과 신체를 자유롭게 연결∙분리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공각기동대> 같은 것이 가능해진다면, 슈미트의 상상력은 너무 돋보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슈미트의 세계관에서는 아니마는 신체에 붙어 있으며, 그 신체는 ‘하늘’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지구’에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마가 버추얼 공간을 통해 다른 신체로 분산적으로 빙의한다는 이미지는 굉장히 자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현행의 헌법, 민법이나 형법과는 다른 노모스의 체계가 필요해지죠. 인격의 소재가 불확정해지기 때문에.
Q : <공각기동대>에서는 ‘고스트’라는 형태로 나옵니다. 슈미트는 땅에서 바다, 하늘, 그리고 이어서 아니마의 세계로 전개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까요?
A : 보다 고차적인 엘레멘트[원소]로, 라는 거군요. 가능한 얘기네요. ‘하늘’과 ‘불’을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물질적인 신체성을 넘어서, 신에 가까운 영역에 들어선다.
Q : 최후의 “신들의 척도는 위대하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척도”를 만들어내고 신이 된다는 것일까요?
A : 역시 그렇게 생각하니 재미있네요. 새로운 “신들”이 척도를 주신다기 보다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어 ‘척도’를 만들어내게 된다는 시각은 확실히 있을 수 있습니다. 초인사상이네요. 주어진 신체에 밀착해 있는 한 인간은 대지의 엘레멘트[원소]에 속박되어 있는데, 신체성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면 ‘척도’의 원천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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