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1. 17:12ㆍ경영과 경제
최근 수정 시각:
<img class='wiki-image' src='//cdn.namuwikiusercontent.com/s/7ebab620b4e608775ca72af6cf760a27be05af6734a5866f39e3cad8d890283f84cad9df7368c523818baa9f7ce0c4bea2ff2a13681886fd13130cdccec83b0f90948270e5aa39aaa07d005bc72c89c6?e=1528290099&k=V6xh48aGsSyOr0d-vrrlEw' alt='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Grand_hotell_Saltsj%C3%B6baden_February_2013_02.jpg'>
발렌베리 가문의 대저택. 5대 150년에 걸쳐 스웨덴 재계의 군주로 군림해 온 역사가 느껴진다.
발렌베리 가문의 계보
1. 개요[편집]
Wallenberg family
유럽 최대(最大), 그리고 최고(最古)의 산업 왕조[1]로 불리는 로열패밀리이자 상속자 가문. 이와 더불어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기업 집단까지 포함한다.
150년 이상의 시간 동안 5대에 걸쳐 경영 세습
금융·건설·항공·가전·통신·제약 등,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
발렌베리 소속 기업들의 국내외 매출은 약 1,000억 달러로, 스웨덴 전체 GDP의 1/3과 맞먹는 규모임.
순이익의 상당수는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
남은 그룹 이익금은 개인이 아닌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에 적립
후계자 요건
경영 세습의 경우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 한함
후계자는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함
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함
후계자는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서 실무 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힐 것
후계자 평가는 10년이 넘게 걸리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을 뽑음. 이렇게 선발된 두 명은 차례대로 산하 회사들의 경영진으로 참여하며 경영수업을 받다가 최종적으로는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 AB, 그룹의 모태이자 캐시카우인 SEB의 CEO 직책을 교대로 수행함.
반드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할 것
재단과 그룹 경영자는 급여만을 받는다(이들은 세계 1000대 부자, 스웨덴 100대 부자 명단에 끼지도 못함).
발렌베리 가문의 원칙: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
2. 가문의 역사[편집]
2.1. 발렌베리 가의 초석을 닦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편집]
1856년에 해군장교 출신이었던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André Oscar Wallenberg, 1816년생)가 은행을 창립하면서 대재벌로서의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앙드레는 17세였던 1832년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해군장교가 되었고, 견습 사관으로서 미국에 건너가 2년간 머물면서[2] 은행사업에 자극을 받았는데,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정글 같은 미국 금융업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은행업에 관심이 생긴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꿈을 키웠는데, 스웨덴 최초의 증기선인 린쇠핑 호의 선장을 역임[3][4]했고, 중부지역 해군책임자를 거쳐 순드발지역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스웨덴 의회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된 그의 정치적 배경은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산업혁명에 힘입어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은행이 없어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한다.[5] 이에 주목한 앙드레는 1856년에 은행을 세워서 국내 자산가[6][7]와 외국에서 유치한 자금[8]을 국내 산업에 공급[9]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10] 이것이 발렌베리 그룹의 모태이자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는 SEB의 원류,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탄생이었다.
2.2. 앙드레의 위기, 재도약의 2세대[편집]
하지만, 앙드레의 독선에 질린 은행 이사의 절반이 독립을 선언하여 스톡홀름한 델스 방켄이라는 은행을 설립, 오늘날 스웨덴 금융계의 투톱이 생긴 게 이때라고 한다. 게다가 전체 은행자산 중 40퍼센트에 이르렀던 채권자산은 1870년대의 경기과열 끝에 찾아온 1878년 경기침체를 맞으면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위기를 초래했다. 3일 연속 뱅크런을 맞자 위기에 몰린 앙드레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은행 경비원들에게 사복을 입히고는 동전을 가득 채운 현금자루 하나씩을 걸머지게 하고는 예금을 하러 온 것처럼 행세하게 하여 고객들을 진정시켰다. 다행스럽게도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가 자신의 개인예금 1만 크로네를 공개적으로 예치했으며, 마지막에는 정부 차원에서 앙드레의 은행을 비롯한 전 은행권에 구제 금융을 해주면서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그는 이자율을 대폭 올려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지만 예전 같은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1886년에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에게는 21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고, 이들 가운데서 발렌베리 가문의 진정한 건설자들이 배출되었다.
<img class='wiki-image' src='//cdn.namuwikiusercontent.com/s/2ff050e3dfa808e50d157e31f593835c1f5934e93d279973f33ba8d750a1e33893f4d0203550874d7625281c55d077563344b9d87c026166aaff1ed6972887ffdbe729b7b92ab5736b79129a6664befc?e=1535707848&k=vYLBo7zUv7VxeOrWHNSrlw' alt='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px-KnutWallenberg.jpg'>
가업을 승계한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1853~1938)는 당시 파리에 있던 세계적인 은행 크레디리요네에서 전문 금융교육을 받았고, 21세부터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되어 은행 경영에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준비된 후계자였다. 은행의 경영자가 된 그는 외국생활 동안 구축한 런던과 파리의 금융계 인맥을 통해 해외자금 조달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를 통해 공급된 자금은 스웨덴 산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그러던 중 그와 그의 은행에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는데, 1911년에 은행들의 일반기업 주식 직접소유 및 경영 참여가 법적으로 허용[11]되면서 금융자본의 산업지배가 가능[12]해졌기 때문이었다.
<img class='wiki-image' src='//cdn.namuwikiusercontent.com/s/0a8a6cb49ddbe89562508dc5e07d220df9fd62d2175d92f88dd23de985927bcfd0359a0c458c6f234e7b1893e654326c340af6a4a4900352300f9f2f997c7a92b86f1937f9c0ea5345383f941f180d82?e=1528173096&k=PyKaDze3ITKM9etLqEti2w' alt='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3px-MarcusWallenberg3.jpg'>
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면 대부분의 은행은 피지배기업들의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졌는데, 1878~1879년의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크누트는 이복동생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1864~1943)[13]에게 SOS를 요청, 피지배 부실기업들 중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워크아웃 작업을 시작[14]했다. 부실기업들을 실사한 마르쿠스는 부실의 주범이 무능력한 경영자들이라는 걸 알고는 이들의 모가지를 모두 쳐냄과 동시에 회사의 부채를 털어줬고, 오랫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쿠스의 첫 작품인 철도차량 제조업체 아트라스를 예로 들면 기존 경영진을 갈아치운 마르쿠스가 그 자리에 40대의 유능한 경영자를 새로이 투입했는데, 새 경영자는 수익성이 없는 공장을 모두 폐쇄하는 대신에 스톡홀름의 다른 공장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부채 청산을 위해 새로운 법인인 니야 아트라스(Nya atlas)를 세워 기존 회사의 자산을 모두 인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청산했다고 한다. 그렇게 부활한 회사가 산업용 컴프레서와 압축공구 세계 1위를 달리는 아트라스 콥코의 전신이다.
그밖에도 철강회사 호포스(오늘날의 SKF), 발전설비회사 아세아(현재의 ABB), 트럭제조회사 스카니아 바비스(현재의 스카니아[15]) 같이 건설ㆍ기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크누트는 엄청난 규모의 자선사업을 추진[16]하는 한편, 정계에 진출하여 외무장관으로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의 위기를 극복[17]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그는 부부의 이름을 따서 세운 ‘크누트앤앨리스 발렌베리재단’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
2.3. 그 후[편집]
3대가 되면 크누트의 조카 야콥과 마르쿠스가 전자업체 에릭슨을 사들여 오늘날의 그룹 체제를 갖췄다.[18] 두 명 중 한 명은 지주회사, 한 명은 은행을 맡는 것이 보통이다.
4대째 후계자인 마르크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 총재 신분으로 1971년 자살했다. 3대째 마르쿠스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을 경쟁 은행인 '스칸디나비스카 은행'과 합병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거대 은행으로 만들고자 했다. 반대로 4대째 마르크는 가문의 은행을 지키고자 합병에 반대했다. 둘은 부자지간이었지만 계속해서 충돌했고, 끝내 합병안이 가결되자 마르크는 자살했다.
현재는 5대째인 마르쿠스 발렌베리과 야콥 발렌베리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5대째 후계자인 야콥 발렌베리의 약력을 알아보자. 그는 1956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76년 스웨덴 왕립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 해군 예비역 장교가 되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1980), MBA(1981)을 졸업했다. 몇 년간 몇 개의 국제적 은행에서 일하다가 1984년에서 1990년까지 SEB 은행에서 일했다. 주로 스톡홀름에서 일했으나, 런던/뉴욕/홍콩/싱가포르 등 금융 중심지에서도 일했다. 1990년에서 1992년까지 Investor AB 사의 부사장 (Deputy Managing Director)으로 일했다. 1993년 SEB 그룹에 재입사해 1997년에는 CEO가 되었고 1998~2005년에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5대째 후계자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역시 비슷하다. 스웨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뉴욕의 시티은행 본사를 시작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시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2.4. 보쉬 스캔들[편집]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은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택하는 전략을 취한다. 발렌베리 가문 역시 양국과 모두 교류하면서 전쟁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이 때문에 전후 보쉬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0년 독일과 미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자 발렌베리 가문의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이었던 야콥 발렌베리는 독일 회사인 보쉬의 미국 자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이 계약에는 비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 발렌베리는 보쉬에게 회사를 돌려주는 대신 보쉬는 발렌베리에 거액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미국과 독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독일 자산이 전부 몰수되었으나 보쉬의 미국 자회사만은 발렌베리와의 밀약으로 이러한 조치를 피할 수 있었고, 전후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발렌베리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19]
여담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나치에게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가문의 일원 중 하나였던 스웨덴의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만 명의 유대인들을 나치와 화살십자당의 마수로부터 구출하여 ‘헝가리의 쉰들러’[20]로 찬양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소련군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독살되었지만, 그의 행적과 죽음은 유대인들의 증오에 대한 발렌베리 가문의 방패가 되었고, 행위 자체의 인도적인 면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2.5. 가문 사람들의 생활[편집]
그들은 선대 오너들의 이름인 '마르쿠스'나 '크누트', '야콥' 등의 이름을 자주 쓰는데, 이는 선조들의 이름을 쓰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문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발렌베리 가문 오너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를 체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옷은 형제가 물려입고, 계절에 따라 잔디깎기, 갈퀴로 낙엽 모으기 등등의 집안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받으며,[21] 그 용돈의 반은 저축을 함으로써 근검절약을 익힌다고 한다. 게다가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문 앞에 앉혀서 이야기를 듣게 한 다음 사업 안건 해결 방식의 근거를 묻게 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을 익히게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집안에서부터 제왕학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오너 2명을 선발하기 때문에 독단경영을 할 수 없다. 오너라 하더라도 지주회사를 통해 비전/경영전략/투자 등 거시적인 부분만 결정하고, 세세한 결정은 전문경영인이 한다.
장자상속 전통이 없이 능력별로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어난 순서에 관계없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선대 이사의 자녀라고 해서 이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 후보는 발렌베리 가문의 수십명의 자녀 모두에게 열려 있다. 거기다 자격조건이 아주 특이하고 엄격한데, 아주 특출난 능력을 보여주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예비역 장교여야 하고, 자력으로 외국 명문대 MBA를 취득하고, 발렌베리 이외의 외국계 금융기업에 입사해서 수년간의 경력을 쌓아야 하며, 이사 후보생이라도 하급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건 최소 40대다.
물론, 가문의 후광을 입어서 커리어패스를 쌓는 과정이 수월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라면 모를까 외국계 금융기업들은 워낙에 평판이 빠르게 퍼지고, 실적이 객관화되기 쉬워서 어느 정도의 공신력은 갖추고 있다.
결정적으로 군대는 석연찮은 이유로 면제, 타 기업에서 실무자로 근무한 경력 없이 바로 부장급 입사, 20대 후반에 하급 임원이 되는 한국 재벌 3세와는 격이 다르다.
3. 발렌베리 그룹[편집]
발렌베리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 홈페이지
발렌베리 가문은 공식적으로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훈 중 하나가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22]이기 때문이다. 대재벌이다 보니 세간의 이목이 쏠릴 것을 알고 몸을 숙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예 가훈으로 정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듯하다.[23] 이만큼 가훈을 철저히 지키는 덕분에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이후 150여 년간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세습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존경받는 가족경영기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3개의 발렌베리 가문 소속 재단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데, 몇몇 회사[24]는 재단에서 직접 소유하는 기업이다. 나머지 회사들은 재단에서 직접 소유한 지주회사 ‘인베스터 AB’의 피지배 기업인데, 재단과 인베스터 산하에 있는 기업들을 보면......
발렌베리 가문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의 기업들 | |||||||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 Stockholm Enskilda Bank, 스칸디나비스카엔실다 은행의 전신)[25] | 감브로(투석치료) | ||||||
SKF(베어링)[31] | 소비(바이오)[36] | ||||||
아스트라제네카(제약)[37] | 스토라엔소(제지)[38] |
기타등등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구급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41]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근거로 ‘이 같은 재벌 위주의 구조 때문에 자산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발렌베리 산하 기업에서 나온 배당금은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의 개인 금고가 아니라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재단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재단의 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집행하고, 투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및 학술 사업 발전 후원금으로 쓰며[42], 재단의 재무상황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매년 재단으로 모이는 배당수익의 20퍼센트만 재투자에 쓰이고 나머지 80퍼센트는 후원 사업에 쓰인다고.
실제로 2004년 기준에 의하면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인 피터의 개인 주식자산은 당시 환율 기준으로 199억,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인 마쿠스의 주식자산은 173억, 야쿱의 주식자산은 52억에 불과하다고 한다.[43] 미국의 대기업 CEO들 연봉이 100억 단위가 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정말 검소한 것 맞다.
또한 세계 최대의 DIY 가구 제조업체인 이케아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액체포장용 종이팩인 테트라 팩을 만든 라우싱 가문 등의 부유층이 스웨덴의 중과세를 피해 자신들의 재산을 짊어지고 스위스, 네덜란드 등으로 도망쳤을 때에도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 남아서 묵묵히 가업을 지켜나갔고, 스웨덴 사회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돌려줬다고 하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발렌베리의 지배구조와 기부가 가능했던 건 스웨덴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 덕분인데, 기업을 소유한 오너들은 보유주식을 상속-증여세 없이 재단에 출연하는 대신 고용을 지키며, 노동자 대표들을 일정 수 이상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노동자들 또한 자신들의 대표들을 이사회에 보냄으로써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회사의 어려움을 분담하고, 정치권은 오너 가문에게 특혜를 주는 대신 두둑한 세금을 받아 노동자들의 복지유지 및 개선에 힘쓰는 것이 이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다만 현재 국내에 알려진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정보들은 어느 정도 왜곡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살트셰바덴 협약에서 발렌베리를 비롯한 기업들이 85% 법인세를 납부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협약 어디에도 '법인세'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과거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 )'[44],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어냈다고 한국에 알려져 있었으나 '85% 법인세'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을 통해 와전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2 (한국 언론의 자기복제). 또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살트셰바덴 협약의 내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에서 제공하는 협약 전문(스웨덴어)에도 법인세에 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1. 발렌베리 가문은 법인세를 내지 않고 오히려 환급을 받고 있다.
2. 상속세 폐지, 황금주 허용, 낮은 실효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이 댓가로 높은 기부를 하고 있다.
3. 85% 법인세 납부는 한국 언론의 무검증 복제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다.
4. 한국에서 비슷한 재벌 가문이 나올 수 있는지[편집]
그렇다면, 한국에서 발렌베리 가문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가져볼 수 있다. 또한 꼭 한국에도 이런 가문이 있어야 하는 지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판 발렌베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여러 환경조건을 고려했을 때 나올 수 없지만, 그 가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깨끗한 재벌'이 나올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스웨덴인들의 노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되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4.1.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편집]
일단, 한국의 법은 금산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다. 발렌베리 가문의 사령탑인 인베스터 AB가 버틸 수 있는 근원이 금융기업이자 돈줄인 SEB로부터 받는 배당금과 세 재단이 보유한 지분이 25퍼센트임에도 주주총회에서 45퍼센트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차등의결권 덕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재벌그룹들 중에서 SEB 같은 든든한 현금줄을 갖고 있는 건 SK 텔레콤을 보유한 SK그룹[45]이 고작이다. 나머지 그룹들은 다들 경기에 민감한 사업군들로 구성되서 불경기를 맞으면 구조조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법률 상 1주 1표만 행사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다고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량 이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입법화시키기도 힘들다.
설사 금산분리가 없어지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서 대기업,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벌 오너들이 경영권을 쉽게 방어하게 해줘도 우리나라의 정치적 환경과 시민들의 의식 수준, 오너의 지배권 강화와 이를 위한 비자금 조성에 열중하지, 공적사업에는 관심이 거의 전무한 환장스러운 현실을 고려하면 답이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
무엇보다도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때 기업집단의 관련 계열사가 부실해져도 계열 금융회사는 부실 계열 기업에 계속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고, 그로 인해 계열 금융회사도 함께 부실해질 뿐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다른 금융회사는 물론 제조업, 나아가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
먼저, 산업자본 계열의 금융회사가 계열기업을 위해 보유자산을 운용함으로써 지배 대주주와 소액주주, 고객 간의 이해상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금융회사는 특성상 다양한 기업과 관계를 맺으며 해당 기업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데, 기업이 금융회사를 소유할 경우 정보의 독점을 통해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대한통운 인수전 당시 친족 계열인 삼성증권에서 CJ그룹에게 인수자문을 해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그룹의 전산 계열사인 삼성 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인수전에 나섬과 동시에 CJ그룹에 대한 삼성증권의 인수자문을 철회해 버리는 등 기업들, 그것도 친족 기업 간에도 이 지경인 마당에 개개인에 대한 횡포는 얼마나 더 심할 지는 안 봐도 뻔하다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또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집단의 계열은행이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면서 경쟁사보다 유리한 대출조건과 완화된 대출심사기준 등을 적용하여 계열기업을 지원할 경우 절대적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고, 다른 경쟁기업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이런 예상은 이미 IMF 당시의 삼성그룹과 2010년대의 동양그룹 사태 등의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증명됐다.[46][47][48] 즉 한국이 금산분리를 추구하는 이유는 재벌기업들이 금융계열사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벌 1~20위 내의 오너 가문들은 LG나 SK, 한화, 두산, 한진을 제외[49][50]하면 지주회사가 아닌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가 대표적인 순환출자 기업집단으로, 두 그룹은 현재 차기 오너의 지배권 확보를 위한 경영승계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식 기부에 대한 과세 역시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는 편법적 경영승계나 경영권 대물림을 이유로 법제 개정 시도가 번번이 백지화됐다.
그 외에 한국 재벌들이 보여준 비윤리적인 모습 문제도 있다. 법인카드 남용, 비상장 주식 사전 매입 후 상장, 일감 몰아주기 등의 갖가지 배임/횡령 등.
4.1.1. 참조 문서[편집]
4.2. 반드시 필요한가?[편집]
4.2.1. 불필요하다는 의견[편집]
재벌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대체 왜 발렌베리 가문이 나오길 기대해야 하는지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궤를 함께 한다. 딱 잘라 말해서, 윗사람들이 먼저 나서길 기대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면 애초에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 안 한다. 애초에 "전근대적인 왕가"와 같은 존재들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전 나무위키 문서에서는 발렌베리 가문을 진정한 로열 패밀리라고 추켜세워주는 서술이 있었는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사실처럼 모든 로열 패밀리가 타락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도 당연한 것이 힘이 한쪽으로 몰리는 순간 계급이 고착화되는건 아주 가능성이 높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윗사람들이 항상 유능하기만을 기대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면 현재 이렇게 국민들이 나서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성립하지 않았다.
게다가 발렌베리 가문처럼 한 재벌 가문이 오랫동안 독식하는 체제가 바람직한지 그 자체에 대한 의문도 들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은 기득권을 용인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허용하는 경제정책의 결과로 인해 자산에 따른 빈부격차는 매우 크고 계층 유동성이 심각하게 낮다. 이는 어떤 의미로 '균등한 소득분배가 늘상 유지되는 게 좋은지 아니면 계층 유동성이 활발한 게 좋은지'에 대한 의문과도 직결된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동족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계급 고착화를 더욱 가속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한가닥씩 하는 선진국들은 계층 유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워낙에 국가가 크기에 눈에 안 띄는 거지 미국 또한 계층 고착화는 심각한 편이다. 독일, 영국, 스위스 등의 선진국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차라리 크게 성공하겠다는 야망이 있다면 계층 유동성이 활발한, 체제가 불안정한 나라로 가던지, 그게 싫다면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잡아 경력을 쌓고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하던지 둘 중 하나 뿐이다.
프랑스나 싱가포르처럼 국가가 전 산업계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해야 하는 등 아예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재벌 위주의 한국의 현실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발렌베리 가문으로부터 한국의 재벌들이 뭔가를 "배울 순" 있겠지만, 이걸 기대하는 건 어렵다. 결국 답은 시민들의 감시인 민주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실, 발렌베리 가문이 "Esse, Non Videri(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를 가훈으로 삼고, 스스로 엄격한 후계자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을 승계하는 건 스웨덴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기업이나 기득권층이 날고 긴다 해도 민심을 등에 업은 정부가 작심하고 합법적으로 손대면[51]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게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즉, "지속성장이 가능하고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선진경제대국"과 "빈부격차와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서로 상반된 개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고민이 오늘날의 인류, 그리고 그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 기업가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기 위해 근본적인 개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52]가 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발렌베리 가문"을 칭송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기득권층을 지속적으로 감시, 견제할 수 있는 힘의 구조를 만들어낸 스웨덴 사회로부터 뭔가를 배워오는 것이 될 것이다.[53]
4.2.2. 필요하다는 의견[편집]
발렌베리 체제의 필요 여부는 단순히 계급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찬반을 가리는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유지/발전의 현실적 문제 때문에라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상위권 선진국보다 규모가 작은 데다 국가에 축적된 자본의 규모에 비해 외국계 금융자본에게 매우 먹음직스러운 대기업들이 많이 있는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코스피 상장사 중 상위 100대 대기업 주식의 최대 60퍼센트[54], 최소 30퍼센트 이상을 외국인 주주들이 갖고 있다. 심지어 한전이나 이동통신 3사 같이 안정적으로 높은 고정수익을 창출하면서도 국가 핵심 산업 분야에 속하는 기업들은 외국인 지분율이 전체 주식의 50%-1주로 상한선이 걸려 있는데, 그 상한선을 외국인들이 다 채워버렸을 정도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다른 선진국의 대기업들보다 배당에 인색한 데다 배당보다는 재투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한, 지역 법인에 쌓인 수익을 모국의 본사로 보내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거나 세금 쇼핑 때문에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외국계 대기업들과 달리 해외 법인에서 창출된 수익금을 모두 본사가 있는 한국으로 꼬박꼬박 송금한다.
게다가, 재벌 여부를 떠나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KT&G 같은 한국 제조업 대기업들은 해외 법인을 설립할 때 현지 기업들에게 하청을 주는 게 아니라 국내 하청기업들과 함께 진출(!)하여 함께 생산기지를 만들거나 본국에서 만든 부품을 들여와서 제품 제조에 쓰는 경우가 많다. 같이 진출한 하청기업들 또한 국내 본사로 수익금을 꼬박꼬박 송금하니 현지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일자리 창출과 각종 납세까지는 좋은데, 관리자급 이상의 좋은 일자리는 한국인들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자국 기업의 성장에는 큰 도움을 안 주며, 자국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그것도 거의 미국 달러(!)로 한국에 보내니 약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 또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이 국가경제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들이 외국에 팔려나가서 국내 일자리와 투자, 세수를 뺏기는 걸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인 주주들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지분을 30~60퍼센트 가량 차지한 현 상황에서 재벌&일반 대기업들에게 그 이상의 국내 기여는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점점 세대가 교체될수록 상속에 의해 재벌 오너가문의 지분이 감소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물론, 이 때문에 재벌들의 다양하게 변태적인 편법 상속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국가에서 백기사로 나서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대가로 재정건전성 악화를 감수하거나, 정치적/행정적인 방법으로 외국계 자본의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었다가 국가 차원의 신용등급 강등과 외국인 투자자 엑소더스, 심지어는 외국으로부터의 경제보복[55]까지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 것보다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갖추게 해줘서 대기업 스스로 막게 하는 게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리고 주주들이 기본적으로 상식적인 존재라는 전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겠지만 군소 대주주들이 난립하여 이해관계자로서 얽히는 것보다는 적은 수의 과점 대주주들이 자리잡는 게 회사로서도 의사 결정이 신속해진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은 이미 소버린 사태[56]나 칼 아이칸의 KT&G 공격, 론스타 게이트처럼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더 심각한 국부의 해외 유출+연쇄 파급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정치권과 노동계, 재계가 3자 동시 협상을 통해 사회보장 제도, 이사회 제도와 노동조합 제도를 개선하는 등 스웨덴식 모델의 구축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4.2.3. 해결 방향[편집]
불필요하다는 의견에서는 정치적/사회적인 의식 수준의 발전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향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자본주의의 성숙,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회 제도와 노동조합 제도의 발전,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행정적 보완 등이라고 볼 수 있다.
4.2.3.1. 이사회 및 노동조합 제도의 강화[편집]
사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역사는 착취의 탈을 쓴 자본주의가 도입된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기를 빼면 한국전쟁 이후 내지 개발독재 이후부터에 불과하다.[57] 최하 1세기, 최장 2~3세기 이상을 걸려 자본주의를 이룩한 서구권과 일본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양적성장에만 집중한 탓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경제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은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 특히, 이사회 제도와 노동조합은 그 수준 차이가 서구권과 일본에 비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못해 아득하다.
주주나 노동자들의 의사 수렴없이 오너 일가나 경영진이 좌지우지하는 유명무실한 이사회, 산별 연대/비정규직-정규직을 초월한 연대보다 기업 내 정규직의 이익만 중시하는 노동조합. 이처럼 자본주의의 가장 안 좋은 조합이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민낯이기 때문.
최근 들어 SK나 LG,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일부 대기업들이 이사회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데, 이사회 제도의 정착과 성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강화되기 때문. 이렇게 되면 오너 일가 외에도 다른 주주들이 결집해서 자신들의 대리인을 이사회에 이사로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오너 일가나 경영진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게 되고 오너 일가 또한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는 대신에 주주로서 보유한 지분만큼만 책임지면 되니 사재 출연을 강요받지 않게 된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2018년 1월까지 서울시에서는 모든 산하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이사들을 1명 내지 2명까지 각 기관과 공기업 이사회에 배석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사회도 결국엔 머릿수 싸움이기 때문에 주주들과 경영진 측 이사들이 뭉쳐서 노동자 대표 측 이사들을 숫자로 눌러버릴 수 있기 때문에 노동이사제는 그 실효성이 매우 회의적이다.
독일에서는 이보다 더 강화된 이원화 이사회를 운영하는데, BMW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C레벨 임원급의 등기이사들이 모여 인수합병, 설비투자를 포함한 인적/물적 구조조정 등의 경영 방향을 도출하는 경영이사회, 그리고 노동자 대표 이사들과 주주 대표 이사들이 동수로 참여하여 경영이사회 의결안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감독이사회로 운영된다. 발렌베리 가문도 산하 기업들의 이사회를 이원화 이사회로 운영하는 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들을 중용하라는 가훈이 있는 걸 봐서는 노동자들과의 협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되면 회사 내부의 구성원들만 공생하고 회사 외부, 특히 원-하청 간의 착취가 강화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과 달리 유럽, 특히 독일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조보다 산별 노조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 때문에 동종업계는 물론이고 다른 산업계의 타기업 노동자들과 연대와 공생이 가능한 구조여서 이원화 이사회 체계가 회사 안팎과 공생하는 방향으로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발렌베리 같은 시스템을 재벌 오너들에게 안겨줘도 탈이 나지 않게 하려면 이사회 제도와 노동조합 제도가 성숙해야 하니 자본가들과 노동자 모두가 각자가 속한 집단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하며, 상대방을 적이 아닌 협치와 타협의 대상으로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4.2.3.2. 법률적/행정적 보완[편집]
스웨덴/독일식 모델은 정치권과 노동자, 재계가 서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타협을 하면서 타결됐다. 정치권은 기업들이 투자할 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해주는 대신, 토지나 건물, 주식 배당금 등의 지대 수익과 기업의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하여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을 보장해줬고, 기업의 경영진이나 오너들에게는 외국계 or 금융자본으로부터의 경영권 위협에 대한 각종 방어장치들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줬고, 기업은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국내에 설비를 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하되 이사회 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결권을 인정하고 국가에 세금을 냈으며, 노동자들은 이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의사를 표출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대신, 세금 납부와 구조조정 등으로 국가 및 기업들에게 협조했다.
따라서, 스웨덴/독일식 모델을 도입하려면 기업과 노동자들이 이사회 제도와 노동조합 제도를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행정부에서도 법률적/행정적으로 이사회와 노동조합의 발전을 유도하고 경영권 방어장치와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4.3.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발렌베리가문 벤치마킹 주장[편집]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대한민국의 재벌도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킹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재벌도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외치고 있다. 해당링크 9분 33초부터. http://www.sedaily.com/NewsView/1L1KHRPX7D
크게 세 가지 주장으로 나뉜다.
1. 발렌베리가문의 후계자 선정처럼, 철저하게 키우고 검증된 인원에게 경영권을 상속해야 한다.
최근 벌어진 한진해운 사태의 최은영씨를 염두에 두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재벌의 친족이라고 해서 얼떨결에 물려받아 벌어지는 대한민국 재벌을 개혁하자는 주장이다.
2. 재벌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하여 사업에만 전력하도록 해야한다.
대한민국의 재벌은 사업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면 생각하면 당장에 '어떻게 이걸 상속하나'에만 몰두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상속세는 법적으로 과표30억 초과에 대하여 50%이다. 아무리 재벌 회장이라도 정상적으로 상속할시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당연히 이걸 반길 사람은 없다. 이것이 바로 갖가지 편법상속이 이루어지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초등학생 주식부자'의 등장, 그리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이재용 전환사채 관련 논란 등이 그것이다.
상속세를 낮추고, 1주 1의결권을 폐지하여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보장하는 대신, 기업인이 온전한 기업활동에만 전념하게 하여, 그것으로 인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면 청년실업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3. 재벌 재단의 역할 자체를 바꾸어 보아야 한다.
현행 재벌도 공익재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병원짓는데 보태고, 전시회 후원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 경영권 보장과 승계를 보장해주는 대신, 기업경영의 이익을 공익재단에 환원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적 R&D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이 주장은 대한민국이 어느정도 성숙하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 5년에서 10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오세훈 전 시장은 주장하고 있다.
5. 관련 링크[편집]
6. 관련 문서[편집]
'경영과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반도 신경제지도 2 (0) | 2018.05.22 |
---|---|
한반도 신경제지도 (0) | 2018.05.22 |
마윈 (0) | 2018.05.19 |
북한 경제 (0) | 2018.05.17 |
남북 경협에도 불가역적 조치 (0) | 2018.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