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핵·미사일 신고·폐기하는 게
북한에 이익 되는 유인 체계 필요
보상금은 북한 개발에 투입해야
김정은에게 빅딜 기회가 왔다
경제는 북한 변화의 강력한 무기
우리도 지혜로운 조언자 돼야
미국은 북한이 거래에 무엇을 내놓을지 정확히 모른다. 핵·미사일 생산시설뿐 아니라 기존 무기와 핵물질까지 완전 폐기하기로 북한이 방향을 잡았는지 확답을 받지 못한 듯하다. 반면 북한은 폐기 대가로 미국이 지불할 가격을 의심하고 있다. 적대 관계 종식과 민간 자본의 진출 등 막연한 제시밖에는 아직 받은 것이 없어 보인다. 거래 방법도 결정되지 못했다. 북한은 폐기 단계마다 보상을 받겠다고 주장하지만 비핵화 이후 일괄 보상을 선호하는 미국은 이를 ‘트럼프 속이기’ 시도로 간주한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완전 계약’의 예다. 모든 가능한 상황에 대해 자세한 계약서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더욱이 서로 불신하는 미·북은 상대방이 ‘먹튀’가 될 것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고, 성사돼도 이행 과정은 지뢰밭일 것이다. 사찰을 해도 은닉된 무기를 다 찾겠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뿐더러 기나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 동안 경제 지원, 제재 완화 등이 따르지 않으면 북한은 버티기 어렵다. 반면 단계적 보상을 주면 북한은 핵·미사일을 숨긴 채 경제와 핵 모두를 쥐려 할 수 있다. 이것이 북핵 빅딜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다.
핵과 미사일 폐기 보상금은 북한 개발 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0억 달러의 북한경제개발 자금을 조성해 국제금융기구가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도 변화와 동시에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한국 정부는 투자 위험에 대한 보증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투자가 북한에 들어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나머지 금액은 한·일·중 등의 양자 간 경제협력과 민간 투자로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 방안을 받아들일까. 김정은은 올해 4월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건설 솔로 노선으로 갈아탔다. 겉으로는 핵 무력 완성을 이유로 내걸었지만 속으로는 경제 발전이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제재로 인해 경제는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었고 시장화는 정권의 경제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 국면에서 민심을 다잡기 위해 경제 집중 노선을 선언했지만 마땅한 묘책이 없다. 지금 김정은은 뒤엔 낭떠러지, 앞엔 늪으로 둘러싸인 형국과 같다. 미국이 손을 내밀어야 늪을 건널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가 미·북의 빅딜 접점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김정은은 CVID(완전, 검증 가능, 불가역적, 핵 폐기)를 주고 다른 CVID(development, 경제개발)와 CVIG(guarantee, 체제보장)를 받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체제보장이 비핵화의 필요조건이라면 경제발전은 충분조건이다. 김정은이 이 안을 받지 않으면 애초부터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는 말이다.
한국으로선 북핵 문제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을 지금이 북한 개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최적기다. 국제금융기구와 여러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다. 핵 문제가 사라지면 미국이 북한 개발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면 북한 개발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돌아올 부담이다. 나중에는 우리 혼자 짊어져야 할지 모른다.
김정은의 핵 투기를 북한 개발 투자로 바꿀 빅딜 기회가 왔다. 그는 진짜 비핵화를 해야 할 진실의 순간 앞에 섰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북 간 거래의 정직한 중개인이자 지혜로운 조언자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북한 변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요, 상생의 합주곡임을 한국의 정책결정자가 알아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