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인구: 3천 1백만
국토: 대한민국의 9배
음식과 약품은 구하기 어렵고,
아이들은 배고픔으로 또렷하지 못하다.
환자는 약품부족으로 병원에서 사망하고,
상품을 사려면 몇 시간 줄을 선다.
물건을 사러 지갑이 아니라 가방에 돈을 넣어 간다.
경제는 자유낙하 중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입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세상 일에 관심없는 국내 신문까지 보도할 정도이니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라 할 정도로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서도 많은 국민은 음식 부족에 시달리며 심지어 쓰레기 통을 뒤지기도 합니다.
한때 라틴 아메리카 최고 부자 나라였으며, 1970년대에는 스페인보다 국민 소득이 더 높았고 민주적이며 안정된 환경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어떻게 남미 최부자국에서 남미 최가난국으로 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의 많은 기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일부 글은 정치적 색채가 지나치게 강했으며 말만 길뿐 명확한 글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국내에서 분석하는 원인은 크게 두가지 원인으로 요약되는 듯했습니다.
베네주엘라 경제위기의 궁색한 이유
- 국제 유가 하락
- 과도한 복지정책(포풀리즘)
아주 간단한 모범답안 같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 있다면 더 많은 생산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것 같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베네수엘라 현재 경제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국제유가 하락이나 과도한 복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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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답답하던 중, BBC 라디오에서 쉽고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접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전문가 네 명의 말을 통해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베네주엘라 경제위기의 진짜 이유
숙청
좌성향의 우고 차베스는 포퓰리에 등에 업고 1998년 정권을 잡았다. 차베스는 자신의 포퓰리을 이행하기 위해 돈줄인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가 차베스를 지지하고 석유 생산을 최대로 끌어올려 자신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함께 가기를 원했으나 경영진은 동조는 커녕 오히려 반발했다. 이에 차베스는 공개적으로 국영석유회사의 경영진을 비난하며 숙청을 시작했다. 숙청은 경영진만이 아니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제거했다. 국영석유회사의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18,000명이 쫓겨나고 젊은 인력으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인력은 미숙한 운영으로 차베스가 원하는 만큼의 생산을 늘일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투자는 줄게 되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 상당량이 ‘extra-heavy oil’로 현재의 기술로는 이를 충분하게 가치있는 상품으로 만들 기술이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숙청으로 전문성과 숙련도가 떨어지는 젊은 인력으로 대체되어 생산과 투자가 감소했으며 매장 석유의 대부분이 현재 대량생산하기 어려운 extra-heavy 석유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석유가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음에도 왜 이처럼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쳤나?
돈
문제는 돈이며 부패다. 석유만 팔면 돈이 되다보니 ‘왠만한 부패’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차베스 이전에도 부패는 있었으며 부패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의 부패는 차원을 달리한다.
차베스 대통령과 다른 3인이 운영하는 석유 펀드는 석유 수익금의 25%-30%를 가져간다. 이 돈은 가난한 이들을 도우는 기금으로 이용한다는 명목과 함께 정치적인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돈이 정확히 어떻게 사용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펀드는 국회나 어떤 곳으로부터도 감시를 받지 않으며 사용은 비밀에 붙여져 있다.
이뿐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관련 모든 과정이 부패로 이어져 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의 친지나 친구가 관계하며 계약이 이루어지다보니 계약 단계에서 부터 부패가 이루어진다.
한때 베네수엘라 석유위원을 역임했던 구스타보 콜로넬은 현재의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는 ‘차원을 달리하는 차베스 정부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통제불능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꽤 성공적이었다. 음식 가격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모든 국민은 쉽고 싼 가격에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성공가능하나 이는 대재앙의 시작이자 결국은 대재앙으로 끝나게 된다.
차베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경제난이 시작되자 상품이 부족했고 상품이 더 많아지도록 차베스는 가격 상한선의 고삐를 늦추었다. 가격상한선을 느슨하게 하면 공장이 새로 생기고 생산이 늘것으로 기대했다. 동시에 차베스는 국민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임금을 높이고 더 많은 돈을 발행했다.
고삐를 늦추었음에도 쉽게 상품 공급은 늘지 않았고, 오히려 상품 가격만 상승하고 암시장이 생겨나게 되었다. 임금 상승에 비해 상품 가격은 점차 올라가고 베네수엘라 화폐의 가치는 떨어졌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상품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투자자는 더욱 생겨나지 않았고 오히려 위축되었다. 차베스 정부가 언제 기업을 몰수할지 모르는 상황에 선뜻 투자할 투자자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다양한 형태의 암시장이 형성되고 화폐가치는 폭락하며 경제는 더욱 악화로 치닫게 되었다.
결국 현재의 경제 위기는 차베스 정부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차베스의 사망 이후 정권을 잡은 마두라도 차베스의 정책을 그대로 이었다.
악마의 배설물
석유로 부를 얻은 베네수엘라는 석유파동이 있던 1970년대가 황금기였다. 콩코드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고 마이애미에 집을 사는 등 베네수엘라 중산층은 석유의 부를 마음껏 누렸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모든 국민이 석유 부의 수혜자는 아니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부의 혜택을 입는 국민과 그늘에 가린 국민들로 양분되어 있었다. 오래묵은 베네수엘라의 묵은 문제가 이제 드러났을 뿐이다. 문제의 시작은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부터 석유 사업이 시작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1935년에 이르러 베네수엘라는 식품의 생산을 완전히 포기하고 식료품의 순수 수입국으로 변했다.
석유 외의 생산을 위한 경제의 다각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 군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바뀌며 석유의 부를 대체 산업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 특히 농업 부문에 – 있었으나 정치인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정치인들에게 석유는 발전, 번영, 민주 그 자체였으며 선심으로 안전하게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변화를 두려워했다. 재앙의 시작은 이미 오래전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초 베네수엘라는 커피, 카카오 등 농업이 번창했으나 석유사업이 시작되며 얼마지 않아 모두 사라졌다.
석유의 부로 가난한 사람에게 주택, 음식, 병원 등을 지원함으로 인해 삶의 질도 높아지고 불평등도 줄었으나,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은 지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석유가 영원하고 석유 가격이 영원히 높게 유지하면 가능하나 그렇지 않는 상황에는 언제든 문제가 생긴다. 부패와 잘못된 정책은 베네수엘라를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꾸었다.
1976년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석유를 ‘악마의 배설물(excrement of devil)’로 표현했다.
산유국들이 모두 이처럼 석유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쉽고 편한 것을 정치인들이 선택함으로써 베네수엘라는 정권이 바뀔 수록 석유의존도는 더 심화되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