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2022. 1. 10. 01:26정치와 사회

[유레카] ‘배신’ 당한 우크라이나 비핵화

등록 :2022-01-05 15:22수정 :2022-01-05 16:46

박민희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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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5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외교 장관들이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하는 ‘핵과 평화의 교환’이 핵심이었다.1991년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세번째 핵무기 보유국이었다. 소련이 미국과 서유럽을 겨냥해 우크라이나 땅에 176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1240개 핵탄두, 44대의 전략 폭격기와 700기 이상의 핵탑재 순항미사일, 최대 2000기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탄두를 모두 러시아에 반환하고,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미사일 등을 해체했다. 1996년 마지막 핵탄두가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2001년 핵무기 시설 해체도 완료됐다. 우크라이나 비핵화 사례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도 참고할 중요한 전례로 기대를 모아왔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차디찬 폭풍 같은 러시아의 위협 앞에 놓인 촛불 같은 신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대에 10만명의 병력을 배치해 놓고, 미국을 향해 우크라이나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군사적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보장하라는 최후통첩성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인질극’을 벌이는 중이다. 푸틴은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이 유럽에서 영향권을 분할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강대국끼리 경계선을 긋자는 제국주의적 행태로, ‘소련 제국의 부활’을 보여주려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과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국제질서를 결정한 것처럼, 21세기 유럽의 국제질서를 다시 짜자는 ‘얄타 2.0’ 구상을 내민 것이다.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핵을 포기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현실화하거나, 일부 지역 점령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북한이나 이란은 ‘비핵화는 정권 위기’라는 확신을 더 굳히게 될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뒤, 이미 우크라이나에선 핵 포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논쟁이 불붙었다. 물론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가 명목상 ‘핵 강대국’이었지만, 통제 시스템은 모두 러시아에 있었고, 핵무기 유지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상황도 아니었으며,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국제적 고립에 처했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다음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러시아, 러시아와 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의 담판이 잇따라 열린다. 주권국가의 운명이 제국들의 담판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돌아온다는 불안한 신호다. 강대국 세력이 경쟁하고 부딪히는 한반도에 대한 경고음이기도 하다.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6088.html#csidxd48859e6e872b1e807804b39b20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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