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전직
국방장관을 위시로 한 군 원로들, 그리고 이 땅의 보수 세력들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어쩌면 이들은 머지않아 반미 운동에 나설지도 모를 지경이다.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와 관련해 일관되게 ‘한·미 동맹의 붕괴’를 이유로 조기 환수에 반대해온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좀처럼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미국 때문에 요즘 죽을 지경일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를
들고 나올 때마다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면서 국내 안보 문제에 흠결을 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또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과 발언이 그의 반미 의식에서 기인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성토해 왔다.
군 출신인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은 비공식이라고는 했지만 한국 정부의 전시 작통권 환수 움직임과 관련해 미 국방성이 한국을 내버리려고 한다는 말을 했고,
한나라당 내 미국통이며 국방통임을 자처하는 박진 의원은 지난 달 미국을 방문하고 온 후 “미국 의회는 한·미간 전시작전권 환수가 이뤄지고 나면
지상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고 말해 전시 작통권 환수가 미국의 반대 또는 화를 자초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한나라당의 의원들과 보수 진영의 인사들은 말끝마다 “미국의 입장을 확인도 안하고” 또는 “미국의 의사를
거스르면서까지”라는 말을 하며 전시 작통권 환수가 한·미간의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노무현 정권의 의도라는 식으로 매도해왔다.
이들이
한결같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 작통권 환수 논의가 미국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있고, 그래서 미국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화를 냄으로써 홧김에 주한미군을 철수 또는 감축하면 남북 대치 관계의 한반도는 심각한 안보불안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그 같은 ‘어쭙잖은’ 자주 논리를 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공격 포인트를 잘못잡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에 있어 어쨌든 미국은 결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바웰 B.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의 전시 작통권 환수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보이더니 딕 체니 미국 부통령도 “전시 작통권 환수로 인해 미군이 철수 하는
일은 없고 한·미 동맹도 때지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다시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방문한 자리에서 “전시 작통권이 한국
정부로 이양되면 한·미 동맹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라고 했고, 결국 부시 미국 대통령조차도 공식적으로 “전시 작통권이 환수돼도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한·미 동맹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러더니 미군의 최고 실무자라고 할 수 있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마저도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전시 작통권 환수에 찬성하고 이로 인해 한국과 미국 간의 동맹이 약화되거나 주한 미군이 철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러니 한나라당과 전시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고 있는 보수 진영에서 맥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버시바우가 여야 정당을 찾은 이후 한나라당은 한·미 동맹이 약화될 것이라는 부분을 작통권 환수 반대의 이유에서
슬그머니 뺐다. 미국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든 안믿든 그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미국의 핵심 정책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노 대통령을 거들어 주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한·미 동맹 약화를 반대 이유의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이들의 목소리가 바뀌고
있다. 27일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현안에 관한 브리핑을 한 것을 보면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정부가 원하는 대로 지원하라’고 발언한
것은 자국의 이익 증대 가능성이 높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던 차에 노무현 정권이 자주 국방이라는 허울 아래 국내 선동정치용 ‘자존심 장사’를
해대니”라고 했다.
즉, 미국은 한국의 안보상황이나 한·미 동맹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 엄청난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래부터 반대하고 싶지 않던 차에 그 빌미를 한국 정부 스스로가 제공해다는 것이다.
드디어 이들이 미국을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의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한나라당 스스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안보는 아랑곳 않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본격적인 반미 운동을 펼쳐야만 한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반도에 있어서의 안보 공백으로 인한 불안 심리를 국민들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이제까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에서의 안보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힘은 우리 정부도, 또 대한민국 국군도 아니었다. 바로 미국 정부요, 미군이었다.
오히려 현 참여정부는 물론 지난 국민의 정부까지도 미국이 공고히 해 놓은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원만한 대북관계, 통일지향의
햇볕정책으로 약화 시키고 있다고 성토해 왔다. 게다가 자주 국방의 문제나 동북아 균형자론 같은 논리를 정부 측이 펼 때마다 이는 한·미 동맹의
약화를 통해 안보 공백을 부추긴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나경원 대변인의 브리핑대로라면 한국에서의 안보 공백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 본인이고, 또 과다한 국방비 지출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미국 무기상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부시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반미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이 버젓이 참석하는 보수 인사들의 장외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미국은
영원한 우리의 우방”이니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는 노무현 정권 타도”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한반도 위기 상황 조장하는 부시 정권 타도”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고집하는 미군은 물러가라”고 시위를 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은 수천 명이 모인 군중집회에서 공공연하게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은인인데……”를 운운하며 “그런 미국이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데 노무현 정권은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라고 욕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공식적인 브리핑에서 더 이상 ‘미국은 한국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는 고마운 은인’이 아니라 한국 전쟁 때 주었다는 도움을 지금에 와서 ‘고리 이자까지 받아내려는 뻔뻔한 제국주의’로 인식하게 된
것 아닌가?
사실 나경원 대변인의 그와 같은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일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이 2009년
전시 작통권을 가져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자주권을 회복 시켜주려는 ‘숭고한’ 생각이 아니다. 결국 자기 나라 무기상들의 배를 불리면서
동시에 한 곳에 붙박이로 있는 것 보다 언제고 쉽게 움직일 수 있는 해외 주둔 미군을 만들려는 생각에서 부시고, 럼스펠트고 적극 나서서 한국의
전시 작통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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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원 정치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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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쉽고 당연한 진리를 왜 한나라당은 이제야
깨달은 것인가? 진작부터 전시 작통권 환수 반대의 이유를 이렇게 내세웠더라면 지금에 와서의 군색함은 훨씬 덜지 않았겠나? 실컷 한·미 동맹
약화, 안보 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안 정도로 이유를 들고 전시 작통권 반대를 외쳤더라면 슬그머니 당의 입장을 바꾸는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어쨌든 대한민국 의회 정치의 제2당이며 제1야당인 공당 한나라당은 이제 미국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 분명히
해야 한다. 스스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시 작통권을 넘겨주고 싶었는데 빌미를 못찾다가 노무현 정부가 요구하자 ‘얼씨구나 어서
가져가라’는 자세를 취한다면 맹방임을 자처했던, 또 세계 경찰국가임을 자부했던(물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준 적은 없지만)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고 성토해야 할 것이다.
안보를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나라당과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서울광장에서, 또
서울역에서, 그리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우고 부시의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이용해 자국의 뱃속을 채우려는 파렴치한
미국에게 뜨거운 화염병을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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