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인어가 다리를 가린 까닭은

2008. 4. 4. 12:03경영과 경제

스타벅스 인어가 다리를 가린 까닭은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8.04.03 14:48 | 최종수정 2008.04.03 16:03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 강인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이 있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라 불리는 이 저택은 현재 프레슬리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설이 된 그 가수가 한 때 살았고, 또 묻혀있는 그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과 팬들이 모여든다.

저택에 들어서면 그가 입었던 옷이며, 그가 연주했던 악기, 그리고 그의 음반과 사진들이 벽에 빼곡히 걸려 있다. 그를 아꼈던 사람들은 마치 성물을 들여다보듯 숙연한 표정으로 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살핀다. 집의 벽 한쪽 귀퉁이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조그맣게 적혀있다.

"그는 위험했으나, 너무 위험하지는 않았다(He was dangerous, but not too dangerous)."

이 짧은 글은 대중가수로서 프레슬리가 얻은 인기의 원인을 함축적으로 요약한다. '위험하되 너무 위험하지 않은 것.' 이는 모든 대중문화의 핵심조건이기도 하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뻔한 것을 답습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위험하면 반발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지나치게 위험한 것'은 전위예술의 영역이지 결코 대중문화의 몫이 아니다.

다수의 주목을 받는 대중문화는 언제나 '위험수위'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음악,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문화상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법칙은 현대 상업문화의 정수인 로고와 상표 이미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았던 맴피스의 '그레이스랜드.'
ⓒ 강인규
상표와 로고 : 자본주의 사회의 마법

상업이미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마법이다. 기업들이 회사와 상품을 알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는 것은 납득할만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자기 돈을 내고 상표를 달고 다니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도 아주 즐겁게, 심지어 뽐내면서까지.

미국의 역사학자인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를 현대사회에서 '이미지'가 갖는 특성과 결부시킨다.

오늘날 사람들이 갈망하는 자아 '이미지'와 상표의 '이미지'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부어스틴은 미디어·연예인·상표 이미지들이 허구적 현실로서 개인들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과거에는 삶에 원동력을 제공하던 '가치'가 윤리나 종교의 문제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이 '가치'는 오직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이미지를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에 상표를 주렁주렁 달고 거들먹거리는 행동도 이해가 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부어스틴은 치밀한 기획에 의해 생산되는 기업 이미지를 미국적인 현상으로 파악한다. 사진은 그의 저서 < 이미지 : 미국의 허구적 사건에 관한 안내서 > .

ⓒ Vintage Books
부어스틴은 이러한 상업적 이미지를 20세기를 규정짓는 미국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물론 상표는 교환경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대의 상표나 로고는 단순히 상업의 부산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기업이나 상품의 가치를 규정한다. 이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빈 자아를 채워줄 '기성품 가치관'이다.

과거에 상표는 장인의 서명이나 도장, 또는 가문의 상징처럼 생산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상업이미지들은 홍보 전문가들의 치밀한 기획 속에서 탄생한다. 이들은 '위험한, 그러나 너무 위험하지는 않은'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비자들은 음료 하나를 사면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서 세계가 환호하는 승리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상업 이미지는 현대인의 삶에 신화적 의미를 부여한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현대의 신화'를 발견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가 참여하는 '열린 이미지'

기획적 상업이미지가 '미국적 현상'인 만큼, 수많은 상표와 로고가 미국을 대표한다. 붉은 글씨로 휘갈겨 쓴 '코카콜라' 일곱 개의 줄이 하늘색 글씨를 가로지르는 '아이비엠(IBM),' '황금아치'로 대표되는 맥도널드, 한 입 베어 먹은 '애플'의 사과, 녹색 원 안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웃음 짓는 '스타벅스'의 인어 등.

미국의 기업이미지)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이 과정을 추적해 보는 것은 해당 기업과 상품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상표를 살필 수는 없으므로, 몇 개만 골라보기로 하자.

부어스틴은 < 이미지 : 미국의 허구적 사건에 대한 안내서 > 에서 이상적인 기업 이미지의 조건으로 '중립성'을 말한다. 맨송맨송한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 끝이 열려있어 대중이 의미생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 이미지'라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최근 들어 형태를 바꿈으로써 이미지 변신을 꾀한 상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맥도널드·애플·스타벅스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맥도널드-황금아치] 애정 호소하며 눈웃음치는 M
맥도널드의 로고는 초기 식당의 구조물에서 따온 것이다. 맥도널드는 1950년대에 체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식당의 양끝에 노란색 아치를 세우는 표준화 전략을 택했다. 이 두 개의 아치는 비스듬히 보면 회사의 이름인 'M'처럼 보였다. 이후 식당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이 '황금아치'는 현대적 로고 속에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맥도널드는 세계 최대의 식당체인으로 승승장구했으나, 1990년대 이후 위기를 맞는다. 맥도널드는 전 세계로 매장 수를 늘리며 '미국적 생활양식'과 '세계화'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과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은 이 식당체인을 '공공의 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맥도날드는 안에서도 위기를 맞았다. 2002년에는 이 회사의 햄버거가 비만을 유발한다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2004년과 2006년에는 이 문제점들을 직접적으로 다룬 < 슈퍼사이즈 미 > 와 < 패스트푸드 네이션 > 등의 다큐멘터리·영화·책이 쏟아져 나왔다.



2000년대 초반에 채택된 맥도널드의 로고와 표어.
ⓒ McDonald's


일리노이주 데스 플레인즈에 있는 맥도널드 박물관. 초기 체인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Wikimedia Commons
맥도널드 측은 이웃돕기, 수익의 지역 환원, 건강메뉴 개발 등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애썼다.

이 때 나온 맥도널드의 표어가 "당신의 미소짓는 모습이 좋습니다(We love to see you smile)"였다. 말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회사는 로고 밑에 웃는 입을 그려넣기까지 했다. 이로써 맥도널드의 황금아치는 웃는 눈으로 바뀌었다.

이후 슬로건이 "너무 좋아요(I'm lovin' it)"로 대체되었고, '눈' 밑에서 웃고 있던 입도 사라졌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속에서 맥도널드는 여전히 눈웃음치고 있다. 황금아치의 웃음이 회사도 웃게 할 만큼 경영실적을 올려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애플-베어먹은 사과] 무지개는 왜 사라졌을까
애플 컴퓨터는 '사과'와 깊은 관련이 있다. 회사 이름과 로고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제품명인 '매킨토시(Macitosh)' 역시 사과의 종류다. 비록 상표권 문제로 철자를 조금 바꾸어야 했지만 말이다.

< 뉴욕타임스 > 2005년 2월 28일자 부고 기사에 따르면, '맥'은 애플의 기술개발자였던 제프 래스킨이 즐겨먹던 사과였다고 한다. 래스킨은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에 가장 좋아하는 사과 이름을 붙인다.

애플의 로고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지개로 만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다는 것은 '열린 이미지'로 이미 성공한 셈이었다. 프랑스 기호학자인 장-마리 플로슈는 곡선으로 된 회사의 애플의 로고와 직선의 '아이비엠(IBM)' 로고를 비교해서 분석했다.

베어먹은 사과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연상시킨다. 이 금단의 열매는 '선과 악을 깨닫게 하는 지식의 과실'이다. '유혹'과 '지혜'라는 두 의미가 하나의 로고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직선의 아이비엠 로고가 권위적인 미국 동부 대도시의 느낌을 준다면, 매끄러운 곡선의 애플은 자유롭고 분방한 서부의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무지개는 1960년대 서부에서 시작되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히피문화의 상징으로 반전·평화, 동성애자의 권리 인정, 반인종주의 등을 나타낸다.

자세히 보면 무지개색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순서를 무시한 배열은 통념의 파괴와 탈권위를 상징한다. 이는 수평적이고 탈위계적인 애플사의 조직구조와 잘 어울린다. '위원회'와 '관료주의'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이 회사에는 회장 전용 주차장도 없다.



애플과 아이비엠의 기업 이미지. 애플의 '무지개 사과'는 1998년 초반까지 사용되다가 현재의 반투명 플라스틱 혹은 금속성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곡선인 애플 로고와 비교되는 아이비엠의 상표는 도시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아이비엠의 로고도 처음에는 가로줄이 없었으나 이후 추가되면서 '속도감'을 얻었다.

ⓒ Apple/IBM
개인컴퓨터 시장의 선구자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던 애플 컴퓨터에도 위기가 닥쳐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낮아졌으며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몇 번의 경영실수와 신제품 출시 지연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을 더욱 어렵게 했으며, 회사는 돌이키기 어려운 적자의 수렁에 빠졌다.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고용한 사장에 의해 쫓겨났다가 1997년 '무보수 경영자'로 다시 회사에 복귀한다. 그러고는 1998년 회사의 사활을 건 제품 '아이맥(iMac)'을 내놓는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이 제품은 6개월 내에 100만 대 가까이 팔리며 회사를 만성적자의 늪에서 건져냈다.

흥미로운 것은 애플이 이 시기에 새로운 로고를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선구적 기술의 상징이 되었던 '무지개 사과'는 오랜 시련을 거치며 그 의미를 잃었던 터였다. 애플사는 과거의 인지도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로고를 생각해 냈다. 잘 알려진 사과의 윤곽선 위에 히트상품이 된 '아이맥' 디자인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무지개가 있던 자리에는 반투명한 플라스틱의 매끈한 이미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평면적 이미지는 입체감 있는 3차원의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과거에는 회사의 로고가 제품을 규정했으나, 이제 제품의 이미지가 회사 로고를 규정하게 된 것이다.



1998년 신상품 '아이맥(iMac)'과 더불어 도입된 입체감 있는 로고.
ⓒ Apple/Creative Commons
[스타벅스-인어] 그녀가 다리를 가린 이유

스타벅스의 녹색 원 안에 그려진 여인이 인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커피 회사가 인어를 기업의 이미지로 골랐을까? 그리고 이 회사는 기껏 고른 인어의 모습을 꼬리 끝만 남기고 감추는 선택을 했을까?

'스타벅스'라는 상호가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면 인어를 고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름의 출처인 '스타벅(Starbuck)'은 허먼 멜빌의 소설 < 모비딕 > 에 나오는 일등 항해사의 이름이다. 스타벅스의 젊은 창업자들이 커피를 매개로 고객들에게 팔고 싶었던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항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어는 두 번에 걸쳐 아름다운 자태를 감추어야 했다. 첫 번째는 가슴을 가려야 했고, 그 다음에는 다리를 감추어야 했다.

회사가 처음 채택했던 인어는 가슴과 다리를 모두 드러내 놓고 있었다. 창업자들이 첫 이미지를 치를로의 < 상징사전 > 에서 베껴왔다는 사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15세기에서 유래한 위 '두 꼬리 사이렌(split-tailed siren)'은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던 이미지였다. 하지만 가슴을 드러낸 채 꼬리를 치켜들고 있는 인어의 모습은 현대인의 미감에는 지나치게 '위험해' 보인다. 결국 인어는 굽이치는 머리칼로 가슴을 가려야 했으며, 그 다음에는 '흉하게' 벌리고 있는 다리를 조신하게 숨겨야 했다.



16세기 독일의 문헌에 등장하는 두 꼬리를 가진 인어.
ⓒ Wikimedia Commons


스타벅스는 오늘의 로고를 마련하기까지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쳐야 했다. 처음의 인어로고는 가슴과 하반신을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로고의 변화 과정에서 대중에게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제거되고 중립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 스타벅스
'야한 것'과 '성스러운 것'
2006년 스타벅스는 창립 35주년을 맞아 본래의 인어 이미지를 잠깐 사용한 적이 있다. 당시 고객들이 보인 태도는 현대인들의 세계관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이 '야한' 인어가 잠시 부활했을 때 워싱턴주의 학교에서는 '비상령'이 내려졌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 '누드 인어'를 가려달라"는 학교당국의 지시가 떨어졌다.

오늘날 이 민망한 포즈의 인어는 커피숍 간판에조차 쓰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과거에는 앞의 인어는 물론 그보다 더 '야한' 조각상들이 교회와 성소를 장식하고 있었다. 특히 악명 높은 '실라나히그(Sheela-na-gig)'상은 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성소에 설치되어 있었다. 현대인들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과거의 사람들은 성스러움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이든 여자가 다리를 벌린 조각상은 탄생과 기원을 의미했다. 이 곳은 성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유래한 곳이다. 교회 출입문 위에 주로 설치된 이 조각상들은 건물에 들어오고 나오는 행위에 숭고한 재탄생의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각상들은 도덕주의자들에 의해 깨어져 땅에 묻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표와 로고. 이들은 때로는 귀찮은, 그리고 때로는 과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을 볼 때 무관심과 찬탄 못지않게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것도 즐거울 때가 있다. 그러면 이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사회와 문화,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까지.



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인어와 '실라나히그' 조각상(오른쪽 위).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은 두 팔을 하늘로 뻗는 것과 같은 제의적 의미이며, 여성의 자궁은 '탄생'의 성스러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성소에 세워져 있던 조각상들은 훗날 도덕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조각상들도 대부분 손상된 상태다.

ⓒ GNU/Creative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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