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4. 12:01ㆍ쿠오바디스 행로난
ㆍ죽음에 맞서는 인간, 이야기로 문명을 만들다
■이야기, 문명을 만드는 힘
“이야기가 역사에 앞선다!” ‘쿠오바디스와 행로난’의 여정을 연 김월회 선생의 글에 대한 나의 답말이다. 짊어지기에는 무겁고 껴안기에는 큰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여느 여행이 그러듯이 이번 여정도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즐거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고, 특히 글벗이 되어준 김월회 선생에게 감사한다. 때로는 다툴 것이고 때로는 함께 갈 것이며 때로는 따로 갈 것이다.
김월회의 첫 글(경향신문 7월2일자 22면)에 따르면, 공자는 “명실상부한 사상 최초의 호모 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역사 쓰는 인간)”이다.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한 이해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공자가 <춘추>를 저술한 것을 “문명사적인 일대 사건”으로 보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시간도 인문화”시킨 저술이 <춘추>이기에.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야 할 것 같다. 역사 이전의 선사 시절로 올라가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소개하려는 것은 역사가 아닌 문학, 아니 더 정확히는 문자가 본격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가 문명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면, 허구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와 노래도 얼마든지 문명을 만드는 동력이다. 이 글에서는 문학(literatura)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겠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지어진 노래로 된 이야기를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가 문명을 만든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문명을 만드는 힘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문명이란 것은 생존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인 욕망의 총화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집단의 기본 단위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기억으로 전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두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자.
■머리를 쓰는 오디세우스
먼저 오디세우스를 부르겠다. “그는 소중한 마음에게 침통한 말을 던졌다. 아이고 죽겠네! 제우스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땅을 보게/ 해주셨건만! 심연의 대양을 건너 여행도 마쳤건만/ 검은 바다 밖으로 빠져나갈 곳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 바깥쪽에는 암초가 늘어서 있고 주변으로는 파도가/ 노호하며 부서지고 반질반질한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고/ 그 옆의 물속은 너무 깊어 두 발로 서서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네./ 땅으로 나가려다가 거센 파도가 나를 낚아채 뾰족한 바위에다/ 꽂아버릴지 몰라 무섭구나. 모든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겠지. (…) 내가 알기로 대지를 흔드는 신께서는 나를 미워하니까.”(<오디세이> 제5권 404~421행)
그야말로 이백이 읊은 ‘행로난(行路難)’이다. 베드로처럼 오디세우스는 신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쿠오바디스·quo vadis)를 묻지 않는다. 살길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야말로 인문학이 어떻게 시작했고,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임이 분명하다. 행로난에 처한 오디세우스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핌에 있어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를 두 발로 설 수 없는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육지와 달리 바다는 손이 발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손을 손으로 사용할 수 없는 곳, 달리 말하면 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수족을 다 묶어버리는 바다에서 오디세우스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까?
그것은 머리였다. 오디세우스는 살기 위해서 살피고 재며 따진다. 어디로 갈지를. 살피고 재며 따지는 일은 관찰이고 계산인데, 이것들이 실은 머리가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호메로스의 인간 이해에 대한 한 면모가 드러난다. 바로 인간이란 머리를 쓰는 존재라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를 바다의 한가운데에 던져놓은 이유이다. 머리 쓰는 인간을 드러내는 장소로 바다만큼 적당한 곳은 없다. 머리 쓰는 존재(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대한 관찰이 이야기꾼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이야기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가슴을 따르는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에 이어 두 번째 증인으로는 아킬레우스를 부른다.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전우를 생각하며 울었다. 모든 것을 정복하는 잠도/ 그를 제압하지는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소중한 파트로클레스의 당당함과 용맹함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 이런저런 생각에 바로 누어보기도 하고 모로 누어보기도 하고/ 엎드려보기도 했건만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 그러다가 그는 날랜 말들에게 멍에를 씌웠고/ 끌고 다닐 생각으로 헥토르를 전차 뒤에 매달았다./ 헥토르를 끌고 죽은 파트로클레스의 무덤을 세 번 돌고 나서 막사로 돌아 와 쉬었다.”(<일리아스> 제24권 3~15행)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파트로클레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복수했다. 시원하게 복수만 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복수에 눈이 멀었을 때보다 파트로클레스에 대한 더 큰 그리움, 더 무거운 슬픔이 아킬레우스를 덮쳤다고 호메로스는 노래한다.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고 파트로클레스의 무덤을 빙빙 돌았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연히 사람이 해서는 안될 짓, 신에 대한 불경죄(hybris)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시신과 죽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그것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경죄에 대한 처벌로 아킬레우스가 받아야 했던 것은 자신의 죽음이었다.
따져야 할 말이 많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킬레우스의 죽음이 단순한 불경죄에 대한 죗값만은 아니라고 본다. 아킬레우스의 불경스러운 짓이 신에 대한 도전인 점은 맞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에 대한 맞섬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어찌 보면, 광기(menis)로도 보일 수 있지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굴러오는 노령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아킬레우스의 저 불경스러운 행위에서 읽어낼 수 있다. 아킬레우스도 자신이 저지른 불경죄로 죽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시신을 무례하게 다루었다. 그렇다면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 무엇일까? 그러니까,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죽음에 맞서게 만든 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명예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된다면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킬레우스였다.
이 점에서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크게 대비된다. 오디세우스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면, 아킬레우스는 머리가 아닌 가슴을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 이해에 대한 호메로스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인간은 가슴을 따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머리 사용을 극대화했다. 살려는 욕망에서 나온 ‘머리 부림’이다. 그런데 죽음에 맞서는 것도 실은 살고자 하는 욕망의 또 다른 몸부림일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에.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아킬레우스의 ‘몸부림’과 오디세우스의 ‘머리 부림’은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죽음을 피하는 길이 머리에서 나오는 것인 반면, 죽음에 맞서는 힘은 가슴에서 나온다는 정도일 뿐이다.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인간은?
문제는 이 둘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는가 혹은 통합할 수 있는가이다. 실은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인문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이것들을 양립시키는 혹은 통합하는 힘이 기억이라고 한다. 이 기억은 과거의 무엇을 저장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호메로스 시절에 기억은 생각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개념이었다. 기억의 여러 기능 가운데에서 암기와 생각을 의식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는 이가 플라톤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호메로스에게 기억은 현재형이고 생각과 같은 무엇으로 사용되었다. 단적으로 파트로클레스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기억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생각으로, 살아 있는 힘으로 아킬레우스의 생각을 지배했다. 여기에서 생각이 단순하게 계산만 하는 도구가 아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생각에 해당하는 호메로스가 사용하는 원어는 ‘기억하다(mimneskein)’는 동사이다. 호메로스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애통해하며 생각하는 일을 기억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가슴이 하는 일을 기억과 생각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을 일게 만드는 출처가 여럿이 아닌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실제로 생각의 출처들이 여러 곳이라고 생각했다. 재고 따지는 일은 메티스(metis)라는 여신이 관장하는 일이지만 이는 머리의 소관이고, 느끼고 아파하는 일은 튀모스(thymos·쓸개)라는 기관이 관장하는 기능인데, 이는 가슴의 소관이다. 판단과 관련된 지혜 일반을 다루는 곳은 횡격막인데 그리스 말로 프렌(Phren)이라 부른다.
중요한 점은 그 출처가 가슴이든 머리든 생각이 하는 일에 대한 호메로스의 관찰이다. 살피고 재고 따지는 머리와 아파하고 슬퍼하며 분노하는 가슴이 합쳐져야 생각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머리를 사용하고 가슴을 따르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때에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호메로스의 온전한 생각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한마디로, 죽음을 피하려 하고 죽음에 맞서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 하고 가슴을 따라야 한다. 어쩌면, 머리 쓰는 인간과 가슴을 따르는 인간이 실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나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 이전부터다. 그러기에 이야기는 역사에 앞선다. 이야기가 인문학의 시작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야기 교육이 인문학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슴을 따르는 혹은 가슴에 끌려다녀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아무리 살길이 머리에서 나온다 할지라도, 가슴이 아프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문명이 어떻고 제국이 어떻고 하는 소리도 내 가슴이 아프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다. 그 증인이 아킬레우스였다. 죽음을 피해야 하지만 죽음을 맞서야 하는 존재,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면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죽음에 맞서는 길을 가르치는 학문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문학이라는 점 말이다. 죽음에 맞서는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가슴을 따를 수밖에 없기에 하는 말이다.
'쿠오바디스 행로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오바디스와 행로난](5) 목숨 바쳐 약속을 지키다…공동의 의로움이 곧 이로움이므로 (0) | 2017.07.04 |
---|---|
[쿠오바디스와 행로난](4) 약속과 맹세, 혼돈의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낳다 (0) | 2017.07.04 |
[쿠오바디스와 행로난](3) ‘가슴의 언어’ 노래, ‘공동체’를 만들다 (0) | 2017.07.04 |
[쿠오바디스와 행로난](1) 눈 앞의 권력 너머 진리를 바라본 ‘춘추’…현실을 돌파하다 (0) | 2017.07.04 |
경향신문 새 기획시리즈 ‘쿠오바디스와 행로난-김월회·안재원의 동서 고전 다시 읽기’ (0) | 2017.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