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겨울 황혼>
2024. 7. 1. 18:20ㆍ시
<잿빛 겨울 황혼>
김홍섭
마른 나무가지에 바람이 머문다
모두 떠난 벌판에
내 홀로 서 있음은
어느 수인의 쾡한 눈이기에
이다지도 허망한가
내가 세상 끝에 있을 때
그대는 한아름의 로드리고(Rodrigo)를
안고 왔다
내가 눈물로 머리털을 적실 때
그대는 융단이 되어
나를 감싼다
겨울이 익어가면 봄을 낳듯
그대는 익어갈수록
슬픔을 낳는 아이였다
얼어붙은 산천에 어쩌면 그대는
따스한 봄비로 내게 오는가
새벽별이 떨어지는 겨울밤에
우리가 서로를 안고 있음은
어느 전설의 한 모퉁이기에
이리도 쓸쓸할까
기침을 콜록이며 스카프를 안고
겨울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