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쿨 호수, 키르키즈스탄

2006. 10. 12. 19:55자연과 과학

중앙아시아 - 키르기스탄(비쉬케크 2, 이식쿨 호수)

                                                            (2-2)

오늘은 9월15일(금)이다.  촐폰아타에 있는 이식쿨 호수 구경과 함께 여기서 다소 떨어진 이식쿨 휴양소(Issyk-Kul Sanatorium)에 가서 수영을 잠깐 즐겼다.  그리고 비쉬케크로 돌아와서 고려인 집을 방문하였다.
이식쿨 호수   아침에 일어나 어제밤에 갔던 호텔 인근의 호수가에 가서 이식쿨 구경을 하였다.  어제밤과는 달리 파도가 치고 있다.  이 호수의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이룬 산맥이 있다.  지도에 보면 촐폰아타 인근에 4,770m 와 4,647m의 산(참고로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불랑은 4,807m 임)이 있어 눈으로 덮여 있는 설산을 볼 수 있다.  알마티시도 촐포아타 북쪽의 산맥을 넘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눈 덮인 산이 보인바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완전히 쾌청하지 않은 관계로 호수 남측의 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식쿨 호수에서 소망(?)을 풀고 있는 본인 - 오늘이 9월 15일 이지만 태양이 비칠 때는 춥지 않아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었다.>

호수 한 중간쯤에는 여러척이 연결된 바지선이 동에서 서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제 그 택시로 이식쿨 휴양소로 갔다.  여기는 김사윤씨가 호텔사업 할 때 관광책자 만드느라 키르기스탄 관광부 직원들과 함께 작업하던 곳이고 일부를 임대해서 호텔을 운영하려고 계약까지 했다가 노후된 폐수 정수기 수리 조건이 추가되어 포기했다는 곳이다.  호수가의 모래사장에 가니 몇몇 사람들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이식쿨로 나서는 바람에 수영복도 챙겨오지 못해서 구경만 하다가 반바지를 걸치고 물 속에 들어 갔다 나왔다.  물론 기념사진도 찍었다.  원래 한국에서 여행 떠나 올 때 이식쿨 호수에서 수영하려고 수영복을 가지고 왔었는데 정작 사용해 보지는 못하였다.  원래의 일정에서 1주일 정도 늦었으므로 올해는 수영을 못해보고  한해를 보내나 했는데 나의 작은 소망은 실현되었다.  8월 7일 중국의 청해호에서는 날씨가 쌀쌀하여 긴바지에 반팔을 입었더니 추었었다.  물론 어떤 한 사람이 청해호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사람을 목격하였지만.  해발 고도가 두 호수간에 1,400여m(?)나 나므로 8월 초순과 9월 중순이라는 차이에도 이식쿨 호수에서 수영이 가능 하였다.  아마 9월 15일 경에 동해안 해수욕장에 들어 갈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참고로 청호해는 계속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하고 이식쿨 호수는 수위가 거의 일정하다고 한다.  아마 이식쿨 호수는 고봉의 천산산맥 등의 눈이 녹아 형성된 호수이고 청해호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로서 나는 줄곳 세계에서 2등짜리만 구경하였다.  첫째가 중국 신강성의 투루판에 있는 소금 호수인 아이딩 호의 뻘에 발이 빠진바 있고 둘째가 이곳 이식쿨 호수에서 수영을 즐겼기 때문이다.  만약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 간다면 1등짜리인 사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인데 가게 될 수 있을 지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나의 일정에도 1등짜리가 들어 있다.  다름아닌 카스피해를 건너 코카서스 지방으로 갈 계획 이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배웠기 때문에 1등짜리인 사해나 카스피해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려인 집 방문   이식쿨 호수에서 비쉬케크로 오는 도중 김사윤씨의 처남집에 갔다.  원래 자기집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이사 준비 때문에 짐 보따리를 싸 놓아 집이 어수선 하여 자기 처남에게 부탁하여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여행자들의 책에 의하면 현지인집 방문시 줄 수 있는 한국적인 선물을 준비해서 가는 것이 좋다고 쓰여 있었으나 내가 고려인댁에 방문하게 될 줄을 예상 못해서 선물을 준비해가지 못했다.  대신 가게에서 초코렛, 포도주를 사서 가지고 갔다.  

<김사윤씨 처남 고려인 가족과 함께>

집에 도착하니 당초  저녁 6시경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7시에 도착하니 주인 내외는 다른집 돌잔치에 가서 안계셨다.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있었다.  배가 고프니까 우선 식탁에 차려진 밥과 쓰레기국을 맛있게 먹었다.  얼마 후 주인 내외가 오셨다.  반갑게 대해 주셨다. 

김사윤씨 처남은 머리가 하얗다.  한 50대로 보였다.  김사윤씨 처남의 아버지가 극동에서 오셨다고 한다.  군대도 갔다 왔고 구 소련시절에는 수박농장에서 수박을 재배하여 트럭으로 팔러 다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 등 많은 곳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  한국말은 조금하는 정도에 불과 했다. 

집은 얼마 전 손수 목수 대리고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방이 4칸인 단층집이었는데 거실, 식당, 안방, 학생방, 화장실 겸 세탁실, 사우나실 등이 있었으며 차고도 마련되어 있었다.  식당과 거실은 공간이 넓었다.  여기에는 TV가 각 1대씩 있었으며 사우나실은 오후에 사용해서 열기가 있었다.  집은 팔기 위해 내놓은 상태인데 안 팔리고 있다고 했다.  팔고 새로 집을 지어 살 계획이라고 한다.  차는 차고에도 있고 마당에도 헌차가 하나 더 있었다.  차고에는 차를 수리할 수 있는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웬만한 것은 집에서 고친다고 한다.  엔진도 수 없이 분해와 조립을 했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련시간이나 군대에서 M16 분해 및 조립 하듯이 한 것 같다.

나는 포도주를 마시고 김사윤씨 처남과 김사윤씨는 보드카를 밤 12시 반 정도 까지 마셨는데 자기집에서 자라고 하신다.  이미 호텔비는 지급한 상태이고 다음날 탈라스로 바로 떠나야 하므로 그렇게 할 수 는 없었다.  내 호텔까지 같이 택시로 오셨다가 헤어졌다. 

우리 고려인들이 잘 살아야 될 터인데 지금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키르기스탄은 우리 고려인들의 박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고 하니 안심은 되나 머지 않아 다른 나라와 똑 같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그러기 전에 기반들을 축적해 놓아야 될 터인데.     

그제에 이어 오늘도 김사윤씨는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술을 안 마셨는데 나 만나고 부터는 술발이 받는지 많이 마셔서 새벽에 집에 들어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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