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니 당초 저녁 6시경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7시에 도착하니 주인 내외는 다른집 돌잔치에 가서 안계셨다.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있었다. 배가 고프니까 우선 식탁에 차려진 밥과 쓰레기국을 맛있게 먹었다. 얼마 후 주인 내외가 오셨다. 반갑게 대해 주셨다.
김사윤씨 처남은 머리가 하얗다. 한 50대로 보였다. 김사윤씨 처남의 아버지가 극동에서 오셨다고 한다. 군대도 갔다 왔고 구 소련시절에는 수박농장에서 수박을 재배하여 트럭으로 팔러 다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 등 많은 곳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 한국말은 조금하는 정도에 불과 했다.
집은 얼마 전 손수 목수 대리고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방이 4칸인 단층집이었는데 거실, 식당, 안방, 학생방, 화장실 겸 세탁실, 사우나실 등이 있었으며 차고도 마련되어 있었다. 식당과 거실은 공간이 넓었다. 여기에는 TV가 각 1대씩 있었으며 사우나실은 오후에 사용해서 열기가 있었다. 집은 팔기 위해 내놓은 상태인데 안 팔리고 있다고 했다. 팔고 새로 집을 지어 살 계획이라고 한다. 차는 차고에도 있고 마당에도 헌차가 하나 더 있었다. 차고에는 차를 수리할 수 있는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웬만한 것은 집에서 고친다고 한다. 엔진도 수 없이 분해와 조립을 했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련시간이나 군대에서 M16 분해 및 조립 하듯이 한 것 같다.
나는 포도주를 마시고 김사윤씨 처남과 김사윤씨는 보드카를 밤 12시 반 정도 까지 마셨는데 자기집에서 자라고 하신다. 이미 호텔비는 지급한 상태이고 다음날 탈라스로 바로 떠나야 하므로 그렇게 할 수 는 없었다. 내 호텔까지 같이 택시로 오셨다가 헤어졌다.
우리 고려인들이 잘 살아야 될 터인데 지금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키르기스탄은 우리 고려인들의 박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고 하니 안심은 되나 머지 않아 다른 나라와 똑 같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그러기 전에 기반들을 축적해 놓아야 될 터인데.
그제에 이어 오늘도 김사윤씨는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술을 안 마셨는데 나 만나고 부터는 술발이 받는지 많이 마셔서 새벽에 집에 들어가곤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