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스, 키르키즈스탄(2-2)

2006. 10. 12. 19:59자연과 과학

중앙아시아 - 키르기스탄(탈라스)                   (2-2)

 

오늘은 9월17일(일)이다.  오전에 호텔 인근 탈라스강에 가서 사진도 찍고 축구 및 육상 경기장의 관람석 높은 곳과 농구 및 테니스장 야간 점등하는 높은 탑에 올라가 탈라스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오후 늦게 탈라스 박물관(5 som) 견학을 하였다.   탈라스는 lonely planet에 소개되지 않은 지역이라 이곳을 가려면 다른 자료가 필요하나 자료가 없다. 
탈라스 강(Talas 江)   탈라스 계곡에 조그마한 하천이 있다.  폭은 50m도 되지 않는다.  수심은 다리가 있는 교각 주위를 제외 하고는 무릎도 차지 않는다.  탈라스의 북측의 산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물이 풍부 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하천을 따라 나무들이 있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탈라스 계곡을 따라 흐르는 탈라스 강>
탈라스 수박 가게주인 아저씨   오후에 내일 갈 잠불로 나가는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호털에서 나와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 까지 내려가다 길가에 늘어 놓은 수박을 사먹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사내는 1kg에 3 som 씩 한다고 한다.  그런데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사기가 어렵다.  여자 꼬마가 나와서 18 som 이라고 한다.  이 꼬마는 초등하교 4학년 이었는데 영어를 배우고 있어 숫자는 몇 마디 가능해서 나에게 가격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주인 아저씨가 나왔는데 여기서 먹겠다고 하니까 안에 들어가서 먹으란다.  거기에는 몇몇 청년들이 빵과 차를 들고 있었다.  

 

<탈라스 수박 파는 가게 가족과 함께-가운데 청년은 이웃 청년>

 

수박을 먹으면서 몇마디씩 러시아 말을 찾아가며 의사소통을 하였다.  이 아저씨는 나이가 47세 라는데 농촌에 사는 사람이라 늙어보였다.  가게를 하는지라 영어, 러시아어, 키르키스어로 간단한 인사말부터 숫자, 고향이 어디냐, 어디로 가느냐 등 기초 언어 소통용으로 노트에 작성되어 있는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프로정신이 대단하다.  이곳 탈라스에 얼마나 외국인이 온다고 이렇게 언어소통을 위해 노트에 기록까지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자기집 배나무에 열린 단꿀배도 따와서 준다.  

 

어떤 방에 들어 갔다 나오더니 을 하나 들고 온다.  나에게 선물로 준다고 해서 받아왔다.  아마 키르기스탄(?)의 유명한 시인 이라고 한다.  하여튼 러시아어로 되어 있는지 키르기스탄어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탈라스의 가게 주인이 정표로 준 것이라 지금도 가지고 다니고 있다.  우선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그 아저씨는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기에 무엇 때문에 데리고 가나 했더니 대우 TV와 대우 비디오를 켜 보여준다.  그래서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집은 자식들이 4명이라고 한다.  부엌에서 아주머니는 빵을 굽고 있었으며 아저씨가 부엌에 가서 빵을 조금 뜯어와서 주었다.  

 

마당에서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언제쯤 탈라스에 다시 갈 수 있을런지.  다시 가게 되면 디지탈카메라에 들어 있는 사진을 출력하여 주어야 할 터인데.  그집 기억이 잘 날런지 모르겠다.  바로 버스터미널 근처이고 도로 남측에 있다.  만약 가서 못 찾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찾으면 되니까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탈라스 박물관(Talas 博物館)   수박을 배부르게 먹고 난 다음 인근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데 가게에 있던 청년이 나를 따라 오면서 변전소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내가 엔지니어라고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높은 곳에 가서 탈라스 시내도 볼겸 택시를 타고 같이 갔다.  탈라스의 북측 다소 높은 황무지에 변전소가 있었다.  문을 흔드니까 한사람이 나온다.  아마 이 청년이 아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사람과 악수를 한 다음 이 주위에서 탈라스를 보겠다며 굳이 변전소 내에는 안 들어 갔다.
<지나가는 관광객과 함께 탈라스 박물관 앞에서>

이곳을 갔다 온 다음 또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다름아닌 어제 저녁에 비쉬케크에서 온 남녀 형제 학생이 나에게 이야기 한바 있는 박물관 이었다.  이 박물관은 왕릉 같은 조그마한 산 앞에 있었다.  그 속에는 탈라스와 관련하여 진열품이 있었는데 활, 칼, 말 안장 등과 옹기 조각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오다 보니 입출구 옆에 탈라스 부근의 지도가 붙어 있는데 화살표로 몇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 탈라스 전투시 당나라 군대와 아랍군대 등의 이동로를 그려 놓은 것 같다.  이 지도상으로 보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의 국경 부근에서 당나라 군대와 아랍연합군대가 조우하여 탈라스 계곡을 따라 당나라 군대는 퇴각하고 아랍군대는 추격한 것 같다. 그러나 영어로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잠시 보고 나왔다.  

 

박물관 옆 산에 가기 위해 가다 보니 결혼식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많이 간다.  이 청년과 함께 따라가서 참석하였는데 한 사람(교회 같으면 목사에 해당)이 노래를 부르더니 예식은 간단히 끝나고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산 정상에 올라 갔다.  거기 올라가 탈라스를 사진에 담았으나 때가 오후 늦은 시각이라 서쪽에 있는 탈라스 시내는 사진상태가 좋지 않다.    

다음날 탈라스에서 비쉬케크로 가는 도중 내 옆자리에 앉은 키르기스 국립대학 학생에게 탈라스 전투현장에 대해 물었을 때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 국경 근처 아만바에프라고 지도에 표시 해준바 있다. 

 

 
오늘은 9월 18일(월)이다.  탈라스에 가면 탈이 난다? 

 

탈라스에서 비쉬케크로 귀로   그렇다.  자랑스런 고구려의 후예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초청장이나 비자 없이 서기 751년 탈라스에 와서 아랍, 투르크, 티벳 연합군과 싸우다 탈이 난 곳이 바로 탈라스 계곡이다.  나도 역시 탈라스에서 비쉬케크로 되돌아 가기 위해 카자흐스탄의 잠불 국경 검문소에서 카자흐스탄 비자 없이 통과하려다 탈이 나 버렸다. 버스는 약40분 정도 기다리다가 떠났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약 2시간 정도 사복 입은 조사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다시 탈라스로 되돌아 갔다( 하마터면 불순분자(스파이)로 몰릴 뻔 했다.  비자는 관광의 경우 1회 입출국이나 비쉬케크와 탈라스를 오고 갈 경우 양쪽 국가의 비자가 서로 오버랩되어 있고 유효기간 내에 통과하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당초의 나의 비자는 두나라가 1주일 겹쳐 있었는데 중국에서의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카자흐스탄 비자가 만료되어 버려 3일간의 통과비자를 다시 받아 카자흐스탄을 갔었다). 

며칠전 비쉬케크에서 탈라스에 온 여학생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로 직접 가는 버스가 없으니 카자흐스탄의 잠불에서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고 했다.  오늘 오전에 탈라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는 타쉬켄트 가기 위해 잠불 간다고 하니까 비자 없이 갈아 타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비쉬케크로 간 다음 탈라스로 가라고 말했다.  이들도 영어를 몇 마디씩 하니까 그래도 의사 소통이 된다. 

 

잠불 카자흐스탄 국경검문소   그래서 비쉬케크행 오전 11시 20분발 버스를 탔다.  1시경 키질아디르 버스 정류장에 한참 정거했다가 출발해서 키르기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국경을 지나 잠불의 국경검문소에 오후 2시 10분경에 도착했다.  비쉬케크에서 탈라스 갈 때는 키르키스탄을 지나 카자흐스탄의 국경검문소에서 사복 입은 세관원이 차에 올라와 물건들을 둘러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자 검사를 하고 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키르기스탄 대학생도 카자흐스탄 비자는 없으나 나만 문제가 되어 나의 여권을 가지고 상부에 보고하러 군인들이 갔다 오더니 높은 사람이 온다고 했다.  사복 입은 새로운 사람 둘이 오더니 내 여권을 열심히 살펴 보았다.  또 얼마 후 영어 가능 통역관과 한국말 가능 통역관을 데리고 한사람이 왔다.  여행목적, 직업, 어느 곳을 갔는지와 내가 가지고 있는 키르기스탄 지도에 동그라미 표시나 밑줄 그어놓은 이유에 대해 세세히 질문을 하였다. 

비쉬케크 교외 알라아차 공원이 연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으니까 무슨 목적으로 갔냐고 묻길래 비쉬케크에 사는 한국인과 함께 눈 덮인 산 구경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중국 카쉬카르에서 키르기스탄으로 넘어가는 Torugart Pass에 밑줄이 그어져 있으니 그은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또한 오쉬에 동그라미가 있으니 여기 또한 목적을 묻는다.  그외에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는 내 배낭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다 꺼내어서 확인한다.  한글로 된 메모등이 나오면 한국말이 가능한 수행원에게 확인토록 한다.  걱정했던 것은 컴퓨터와 전화 연결용 커넥터 였는데 큰 무리 없이 통과되었다.

디지탈카메라에 들어 있는 사진을 확인했는데  오늘 아침에 비쉬케크나 이식쿨 호수에서 찍은 것은 다 지워 버렸고 사진기에 남겨둔 것은 오로지 탈라스에 와서 탈라스강 인근과 탈라스시 원경 및 탈라스에 있는 박물관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디지탈 카메라의 액정화면으로 일일이 확인을 하였다.  이들도 컴퓨터와 디지탈 카메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조사는 끝나고  두번 다시 비자 없이 카자흐스탄에 오면 13일 동안 감금된다고 말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탈라스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한다.  군인이 작성한 사건 경위에 대해 서명을 했다.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려면 통과비자를 받아서 오라고 한다.  처음 버스에 올라와 비자 검사 했던 군인은 미안했던지 탈라스에서 우즈베키스탄 가는 길(키질아디르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나만간)에 대해 가르쳐 주었으나 그길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가 불확실하다.  키질아디르는 탈라스에서 잠불로 가는 도중 버스가 정차한 곳 이기 때문에 낮에 거기서 내려서 화장실에 갔다 온 정류장이다.  그러나 말이 잘 안 통하니 알아보기가 어렵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다른 병사 하나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500 tennge(약 3.5 달러)와 20 달러를 우정으로 바꾸자고 한다.  20달러 짜리는  호텔값 이라고 하고 5 달러면 어떻겠느냐고 하니 20 달러와 바꾸자고 한다.  하는 수 없이 20 달러와 바꾸었다.  군인들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군인은 영어 단어 몇 마디 씩 늘어 놓는다.  배고프냐고 하면서 10분 기다리라고 하더니 차이(이들은 마시는 차를 차이라고 부른다.  중국인 들과는 달리 설탕을 타서 먹는다)를 끓여 주고  쌀도 씻는다.  밥을 먹느냐고 하니까 자기들도 밥을 먹는다고 한다.  어디에 선가 쌀을 재배하든가 또는 수입을 하는가 보다.  식당에서 차이를 다 마시기도 전에 탈라스로 가는 버스가 당도하여 쌀밥을 먹어보지 못하고 버스에 올라야 했다.  이 군인들은 나에게 "Good Luck! " 이라는 작별인사를 전했다.  

 

탈라스로 철수   이들 인사대로 별 문제 없이 3,000m 이상의 고개를 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어떻게 이들 군인들이 버스 운전사에게 이야기 했는지 운전사는 버스비 내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여행책에 보면 입국시 비자문제로 다시 되돌아 갈 경우 그 비용은 그 항공사에서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비쉬케크 가는 버스에서 내릴 때  이미 125 som 중 60 som 만 되돌려 받았으니 거리로 따진다면 탈라스 되돌아 가는 버스비 까지 받은 셈이다. 

소련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나라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지니 여행객이나 이곳  사람들 공히 불편하다.  이곳 키르기스탄 사람들도 여권을 가지고 다닌다.  이 얼마나 불편한가.  중국 우루무치에서 만난 한 조선족 청년은  자기 주민등록증(?)이 요녕성에 있어서 안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구 소련과 중국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다시 탈라스의 인투리스트 호텔로 되돌아 왔다.  내일 아침에 톡토굴에 택시로 35 달러(원래 2,000 som 달라고 했음 - 40 달러)에 가기로 택시기사와 예약을 하였다.  lonely planet에 의하면 비쉬케크에서 오쉬로 가려면 톡토굴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하루밤을 톡토굴에서 자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비쉬케크에서 탈라스 가는 길은 카자흐스탄을 거치지 않고 가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이 길은 3,000m가 넘는 산악 도로 이기 때문에 버스가 없다. 
<고선지 장군과 당나라 군사가 한탄하며 퇴각했을 탈라스 계곡>

하나의 방법은 키르기스탄의 페르가나 지역 오쉬로 가기 위해 일단 택시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톡토굴(Toktogul)로 가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톡코굴에서 오쉬가는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비쉬케크에서 만난 김사윤씨도 주말이었기 때문에 나와 함께 탈라스에 가고 싶어 했다.  알마티에서 물건을 찾기 위해 김사윤씨 여권을 가지고 자가용 기사가 가서 안왔기 때문에 여권 없이 같이 동행하지 못했는데 만약 같이 왔더라면 되돌아 갈 때 나처럼 문제가 발생할 뻔 했다.      

나는 탈라스를 빠져 나오는 것을 탈라스 탈출작전이라고 명명했다.  고선지 장군이 아랍군대 등과의 연합군과 조우하여 싸우다가 참패하여 퇴각할 때도 탈출작전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그때 포로가 된 사람중에 종이제조 기능공이 있었는지 이 전쟁이후 종이 제조술이 중앙아시아 및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고 하니 포로로 잡힌 사람이 상당한 것 같다.   중국 인구에 비하면 아주 미소 하겠지만. 

나처럼 이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행일정 및 여행노선을 비자와 연관하여 잘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탈라스 2-1로 가려면  PREVIOUS   

또는  중앙아시아/코카서스 메뉴로 가려면 MENU를 누르세요

'자연과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쉬겐트,으즈베키스탄  (0) 2006.10.12
톡토굴, 키르키즈스탄  (0) 2006.10.12
탈라스, 키르키즈스탄(2-1)  (0) 2006.10.12
이식쿨 호수, 키르키즈스탄1  (0) 2006.10.12
이식쿨 호수, 키르키즈스탄  (0) 2006.10.12